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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rdin BsBsVs May 02. 2023

따뜻한 이야기 한 스푼 #7

분노의 눈물과 분노의 오줌 그리고 너의 땅과 나의 하늘.

오래전 어느 날 저녁,

밖에는 귀뚜라미가 울고 있다.

사실 밖에서 소리가 나는지, 방에서 나는지

구분하기가 어렵다,. 풀밭, 신나게 놀던 놈이,

어디 몰래 수시로 숨어 들어와  기숙하고

있으니, 알 수 없는 노릇.

얄밉게도 밤에만 요란히 운다.

온돌 방바닥에 누어, 풀숲에서나 들어야 할 듯한

소리를 듣고 있다.

그리고 그 소리에 젖어 멍하게 천정을 본다.

천정 모퉁이 주변 그리고 천정 중간중간,

오래된 지도에서나 볼법한 대륙의 형상 펼쳐져

있다.

하얀 도배지위 황토색 대륙의 형상 실감이 난다.

왜? 천정에 지도가 그려졌는가.

그 이야기를 나눠 보고 싶다.

저녁때 가족들이 밥상에 옹기종기 모여 식사를

나눌 때도, 그리고 조용히 형제들과 쉬고 있을 때도,

공부를 할 때도, 가리지 않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요란하게 천정에서

뛰는 놈들이 있었으니, 그 이름은 집쥐….

이따금씩 “후두두두~ 후두두두~”소리와 함께

천정이 북처럼 요란하게 흔들린다.

그러고 보면 귀뚜라미는 양반이라.

집쥐는 허가도 없이 몰래, 남의 집 천정에 고지도를 하나씩 그려놓곤 한다. 네가 뱅크시(유명 그라피티 예술가)라도 되느냐??

천정에서 “후두두두두” 소리가 날 때면 늘 형제 중

한 명은, 한 번씩 조용히 하라고 협박을 하듯이,

주먹으로 천정을 “쿵”하고 세게 한 번 친다.

그러면 이내 천장은 조용해지고

뭐가 그리 불안했는지

천정에 달린 백열등은 잘못이 없다 변명하듯,

손사래를 친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백열등에

나는 최면이라도 걸린 듯  멍하게

상념에 빠진다…….

백열등의 따스함이 좋다.그의 감정은 솔직하다.몸이 흔들리면, 빛도 흔들리니 얼마나 솔직한가?

세월이 지나, 기억 속에만 남은 천정에 지도모양의 얼룩들은 오래전 있었던, 쓸쓸한 기억을 불러드렸다.

무슨 관계가 있다는 말인가?


초등학교가 아닌 국민학교 시절.

남녀, 노소 가릴 것 없이 동네잔치와 같은, 큰 행사.

 어린 시절에 가을 운동회..


그때는 내가 유일하게 잘할 수 있은 게, 달리기였나 보다. 뭐 하나 잘하는 건 없지만, 달리기 만큼은 자신이 있었다. 유령과 같이 존재감 하나 없는 나에게,  친구들에게 나의 존재를 나타낼 수 있는 건, 오직 달리기 뿐이었다.

그러기에 달리기의 순위는 내게 중요하다.

나도 뭐 한 가지는 잘하는 게 있다고, 되뇌이듯.


나는 항상 달리기 하면, 1,2위 안에는 무조건 들었다.

요새 말로, 쫌 했다.

난 가을 운동회 단거리 달리기 대표 주자로 뽑혔다.

운동장 한 바퀴를 가장 빨리 돌아오는 사람이 승자.

운이 좋은 건지, 잘 달리던 한 친구가 경기에 참석을

하지 않았으니, 이번엔 무조건 1등이다.

어김없이. 친구들과 나는 출발선에 엄지와 검지를 대고 쪼그려 앉아 있다.

원형의 운동장 둘레에는, 수많은 학생 가족들이

운동장 안쪽을 감싸듯, 숨죽이고 지켜보고 있다.

선생님이 깃발을 올리며, 큰소리로 말씀하셨다.

“준비”

그 말씀에 반응하듯, 친구들과 나의 몸은 당장이라도 튀어 나갈 듯이, 엉덩이가 들리고, 두 개의 손가락에는 체중이 실린다.

이제 두 귀는, 출발 총소리만 기다리고 있다.

“탕!!!”

출발을 알리는 총소리가 울림과 동시에 선생님이

들고 있던 깃발도 아래로 빠르게 내려왔다.

친구들과 나는 앞뒤 가릴 것 없이 운동장을 내달렸다. 운동장 흙바닥, 위를 달리는 아이들,

 발아래에선 흙먼지가 자욱하게 오른다.

결승선으로 달리는 나는, 역시나 선두다.

멀찌감치 뒤에서 처진 채, 달려오는 친구들.

바로 앞, 선생님들이 서있는 결승선이 보인다.

“우승은 나의 것..”

그러나 결승점을 앞둔 15M 부근, 운동장 안을 둘러서서 구경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 중.

꼬마 아이가 달리는 내 앞으로 불쑥 나왔다.

찰나와도 같은 순간, 속도도 줄이지 못한 채

아이가 다칠까 봐 스치듯 비스듬하게 피하며

바닥에 굴렀다.

다행히 아이는 넘어졌을 뿐 다치지는 않았다.

뒤에 처져있던 다른 주자들은 넘어진 나를 지나,

1,2,3,4위로 결승선에 통과를 했고 , 나는 무릎이 까진 채 다시 일어나, 절뚝 거라며 5위로 들어왔다.

그리고 나는 울컥 눈물을 쏟았다.

그리고 부모님은 그런 나를 안아주셨다.

난 패배자, 존재감 없는 아이인 채로 서 있다.

사과도 받지 못했다.

꼬마아이와 그 부모님이 원망스럽고

분한 마음. 억울한 마음이 밀려온다.

내가 진짜 1등인데….

잘하고 싶었는데…. 여린 마음이 아프다.

눈물은 멈출지 않고 계속 흘렀다.


아파트 거실 천정을 보니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어린 시절 내가 몹쓸 짓을 했구나!

그래, 그때 집쥐들 또한 중요한 달리기 시합을 했던 게 아닌가?

그때마다 돌발 변수와 같은 천정의 주먹질에, 어떤 쥐는 승리를 놓친 채 슬퍼하지 않았을까?

원망도 많았으리라. 사과도 못 받고.

그게 눈물이든 오줌이었든 천정을 얼룩지게 할 정도로 슬프고 분했겠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눈물을 흘리며, 천정 모퉁이 한구석에서, 볼일을 보는 집쥐를 상상해 본다.

하지만 너는 알고 있니?

너에게는 땅이지만, 나에게는 하늘

아닌가? 난 늘 하얀 하늘을 보고 싶다.

너는 나의 하늘에 먹구름을 하나 둘 그려놓는구나,

난 얼룩진 하늘은 보기는 싫다고.


살다 보면 갑작스레, 고난과 장애물이 나타난다.

그래도 어찌하겠는가? 그 아픔과 눈물은

 나 하나로 족하다. 눈물을 닦고 마음에 아까징끼

(빨간 소독약)을 바르고 완주는 해야 한다.

그리고 또 뛸 준비를 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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