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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rdin BsBsVs Jun 05. 2023

따뜻한 이야기 한 스푼 #9

잔꾀 부리는 레코드, 졸린 카세트테이프, 춤주는 진공관. by 아날로그

레코드판, 카세트테이프, md, cd, mp3

연주자에서 mp3까지.

지금은 누구나 음악을 보다 쉽게 접할 수 있다.

휴대폰 하나만으로도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건

엄청난 혁신이다.

하지만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어가며 퇴보하는 게 있다면 따듯한 감성이라.

그래서 난 이런저런 이유로

고심과 갈등 속에서 선택된 레코드판과 카세트테이프에서 나오는 음악이 더 좋다.

물론 진공관 앰프와 함께한다면,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다.

레코드판이 회전하는 소리,바늘 닿는 소리 자체도 내겐 음악이다.

턴테이블 위

어둔 밤바다와도 같은 레코드판이 돌아가면

턴테이블 구석에 바늘은 쉼을 찾아

그 바다에 발을 담근다.

검은 바다가 출렁이고 파동과도 같은 원을 따라

그 발 또한 장난스레 참방 댄다.

그리고 손가락을 하나 들어

어두운 밤하늘 검은 창호지에 이리저리 작은 구멍

이라도 내는 건지.

거실 벽에 놓인 두 개의 커다란 스피커에선

툭. 툭. 소리가 들려오고, 기다림과 같은 짧은 침묵이 지나고 나면

밤하늘 구멍 사이로 서서히 새어 들어오는, 세미한 별빛과도 같이  은은한 음악이 흐른다.

바늘이 흥얼거리는, 꾸밈이 없는 영혼이 담긴 소리,

음악소리에 섞여 그리 툭툭 튀는 음도

음률이 되어 정감 있게 들린다.

오랜 시간이 지나 밤이 깊어, 그가 감당할 수 없이

늙고 피곤해지면.

같은 구절만 반복하여 불러 주기도 하지만

이해할 수 있다.

귀찮을 만도 하겠지...


제목이 보이지 않는 버려진 레코드판을 얻었다.

낡은 바늘, 오래된 검은 레코드판이 돌아가면

틱틱소리가 유난히 심해진다.

그땐 레코드판은 레코드판이 아닌

프라이팬 되어 버린다.

(어쩌면 전자레인지가 돌아가는 듯 하기도..)

기름을 두르듯 프라이팬이 돈다.

중앙에 둥근 종이는

터지지 않은 영롱한 노른자라도 된다는 듯이

기름 튀는 소리에도 변함이 없다.

노래를 들으려 했을 뿐인데

자글거리는 프라이팬에 기름소리를 듣고 있다.

레코드판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한 번쯤 프라이는 해보지 않았을까??

기대 속에 요리하듯, 그 음악을 기대한다.



그래도 레코드와 카세트는 의리가 있다.

나름 근성도 제법 있고.

목이 터져라 밤새 부르는 카세트는

피곤에 지치면, 졸린 듯 노래가 느려지고

하품소리와 함께 얼버무린다.

그는 늘어난 카세트테이프처럼

처진 성대를 추슬러 비틀거리듯 침소로 향하고

결국 영원한 잠에 빠진다.

그는 영원히 그 노래를 부르지 못한다.

그래도 사람과 같이 느껴지는 구석하나

있는 것 같아 좋다.

무언가 허술하기도 빈틈이 있어 좋고

한평생 자신의 일을 오롯이 감당하고 황혼을 지나

생을 마감하는 인생의 여정을 보는 듯해서 좋다.

같이 늙어 가는 친구 같다고나 할까?



술에 취해 기분 좀 낸다며 밤새 틀어놓은 카세트.

그도 술에 취했는지 목이 쉬도록 함께 노래를 했다.

다음날 술이 깨어 함께 노래하자고 다시 틀어보니

그놈은 여전히 술에 취했는지 꼬여버린 혀는 풀리지가 않는다.



너무 똑똑해서일까?

mp3란 놈은 아예 목소리를 안 낸다.

불량이면 시작을 안 한다.

사리판단도 정확해, 아니면 아닌 것이다.

그놈의 융통성이라곤 찾아볼 수도 없다.

그리고 불량이 아니라면

그들은 밤새도록 지치지 않고 노래할 수 있다.

힘든 모습이라도 비춰 준다면.

애처로움으로 위로해 주기도 하련만.

레코드판처럼 같은 구절만 부르는 잔꾀도,

카세트테이프처럼 힘들다고 처지거나,

게으름을 부리는 경우도 없다.

또한 죽을 때도 카세트테이프처럼 신음하는

경우도 없다.

항상 음정 박자, 너무나 정확하다.


사람은 완전하지 못하고

누구나 빈틈이 있어 다가설 수 있는 것 아닌가?

빈틈이 없어 보이는 완벽주의자옆에 함께 하기보다는, 늘 편한 허당과 함께하는 게 더 편하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야무진 디지털 가운데 살아가지만

여전히 아날로그 레코드와 카세트의 향수에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나를 닮아 있고, 연주자처럼, 음악시작 전

악기를 조율하는 듯한 소리를 내는 그가 좋다.

트랜지스터가 아닌 진공관 앰프의 따듯한 조명과                               아름다운 음색이 좋다.

지금도 진공관 앰프를 지나, 스피커로 나오는 맑은 음색은 머릿속에 잊혀지지 않는다.

어두운 공간에 놓인 진공관 앰프.

아름다운 노래에 춤이라도 추는 듯,

앰프 위 진공관 안에는 따듯한 노란빛이

촛불처럼 흔들린다.

보는 것도, 듣는 것도 좋다.

나는 여전히 따듯한 아날로그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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