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rdin BsBsVs Apr 14. 2023

따뜻한 이야기 한 스푼 #1

가난이 추억이 되려면, 아픔이 추억이 되려면.

어린 시절, 우리 집에 수도가 언제 들어왔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요즘에는 실내에 있는 주방, 화장실 곳곳에 수도가 있어 불편함이 없지만, 예전엔 대부분 수도가 야외에 하나밖에 없어 씻는 일이든, 설거지든, 빨래든 , 모두 밖에서 할 수밖에 없었다.

23년 4월 꽃비 내린 어느 수돗가에는 추억과 쓸쓸함의 향기가 짙다.

물론, 그 시절 수도에서 온수가 나오는 것은  꿈도 못 꿀일이다.

수도가 들어오기 전, 우리 집은 지하수를 수동으로 퍼야 하는 주물로 된 물주전자 모양의 수동 물펌프, 일명 작두펌프를 사용해야 했다.

 물론 정식 명칭은 재래식 수동 물펌프로 요즘에는 골동품점에 볼만한 제품이다.

그 펌프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한 바가지 이상의 마중물이 필요하며 약간의 작두질, 노동이 필요하다.

물, 한 바가지 펌프에 채워 놓고 땀나게 작두질을 해야, 비로소 지하에 있는 물이 지상으로 나오게 되는 것이다.

이름하여

“세상에 공짜는 없다!  꼭! 기억하렴~”의 가르침을 내게 주셨던 인생의 첫 번째 선생님,

작두펌프 선생님이다.

샴푸라는 건 존재하지도 않고 비누로 세수와 머리를 감아야만 했던 시절, 초겨울, 실내가 아닌 바람이 부는  한데에서 머리를 감았었는데

헹굼 물이 부족할 때면 헹구다 말고, 머리와 얼굴에 비누거품을 매단 채, 눈에 들어간 비누의 따가움에도 실눈 뜨고, 펌프 앞에 서서 필사적으로 작두질을 하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때나, 지금이나 무언가를 이루려면 고통을 참아야 하며 아프더라도 현실을 직시하고 노력을 해야 하는 건 매한가지 아닌가??

우연이란 게 이런 걸까? 우연히, 얻게 된 이미지가 아련한 추억을 불러온다..

작두펌프로 물을 원활히 사용하기 위해서는 커다란 대야가 필요했다.

일본말로 다라라고 했던가? 시뻘건 고무다라.

시골에서만 볼법한 촌티 나는 고무다라.

마중물을 위해서 그 대야에는 항상 물이 있어야 했고. 한 번에 물을 많이 쓰기 위해서도 필요했다.

그  빨간 대야에는 꼭 약수터에만 있어야 할 것 같은 손잡이가 긴, 파란색 플라스틱 바가지가 항상 물

위에 있어, 바람 따라 이리저리 길 잃은 강아지처럼  꼬리를 흔들며 배회하고 있었다.

그래서 종종 세수와 머리를 감을 때면, 눈을 감은채  이리저리 도망 다니는 그놈을 더듬거리며 찼었더랬다.

부모님께서는 작두펌프 주변에 뚜껑이 있는 커다란 고무대야 2통을 두고 물을 항상 담아 놓으셨었다.

특히, 비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처마밑에 뚜껑을

열어둔 대야를 놓아, 요란한 소리를 내며, 양철 지붕을 타고 물받이에 모여 떨어지는 빗방울들을 곤히 재워 두시고, 허드렛물로 사용하셨었다.

지금도 비 오는 날이면, 그 옛적 방 안에서 듣던

양철 두드리는 빗소리가 음악처럼, 어디선가 들려오는 듯하다.

지금도 누군가는 여전히 살뜰히 빗물을 받아 놓습니다.

이후 수도가 들어오면서 많이 편해졌다.

하지만 겨울이 되어도 씻어야 되는 법

물을 끓여 씻지 않으면 온수를 쓸 수 없기에 급할 땐, 물 데울 겨를 없이 차가운 수돗물에 머리를 감을 수밖에 없다.

추운 겨울 수돗물을 틀어 놓고, 수도꼭지 아래 머리를 내민 채 머리를 감을 때면, 그야말로  비명을 동반한 머리가 쪼개지는 듯한 고통을 느끼게 된다.

또한 머리를 감기 위해서는 헹굼까지 해야 하기에 적어도 2번 이상의 비명과 머리 깨지는 고통을 참아야 하는 것이다. 항상 씻고 나면, 욱신거리는 머리통을 수건으로 감싸보지만, 차가운 바람에 손도 얼굴도 새빨갛게 얼어 버리고. 수건사이 삐져나온 젖은 머리카락 끝에는 금세 고드름이 피었다.

차가워진 손을 감싼 채. 본능처럼 따뜻한 안방 바닥 아랫목 이불 밑을 찾아 손을 넣으면, 어느새 이불밑에 녹아든 손은 간지럽고 또한 퉁퉁 부어있었다.

갑자기 혈액순환이 빨라지는 후유증이라고나 할까?

정신을 차리고 거울을 보면, 내 젖은 머리에선 하얀 김이 피어오른다.

그런데 놀부 같은 심술이 많은 걸까? 형이나 동생이 겨울 한데에서 비명을 지르며 씻을 땐 왜 그리 재미있고, 웃기는지. 한겨울, 머리를 감는 작은형의 뒤 허리춤엔 새하얀 수건이 매달려 있었다.

 작은형이 머리를 감을 때면 차력이라도 보여주겠다는 듯이 언제나 기합을 한번 크게 지르고, 머리를 감았었다.  

그렇게라도 두려운 마음을 환기하고 싶었던 걸까? 그 모습 자체만 봐도 엉뚱해 보이기도 하고

우스꽝스러운데, 끝없이 찬물이 쏟아지는 수도 물엔 당해낼 재간이 없으며, 머리 쪼개지는 듯한 고통은 절대 피할 수 없다고 하소연이라도 하는 듯, 작은형의 입에서 “으~으흐 억~~” 비명 소리가 나면

개그 공연을 감상하는 듯 동생과 나는 웃음이 터지고 만다.

위와 같이 머리 감을 때 절규에 가까운 비명을 질러본 경험이 있으시다면. 신세대는 절대 아닐 것이다.

혹 신세대로서 그 느낌을 경험하고 싶은 분들은 겨울에 가까운 계곡 얼음 깨고 머리를 담가보시면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절규에 가까운 비명과 함께 머리 쪼개지는 경험을 하고 싶다면 말이다.

사실 그보다 더 끔찍한 건 재래식 화장실인데, 그 이야기는 생략을 하도록 하겠다.

지금은 추억이라 하지만 추억치곤 좀 더럽다.


어린 시절?

그 시절 거의 너나 별 다를 것 없이 어렵게 지냈기에 창피한지도 힘든지도 몰랐다.

모든 게 당연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과거의 사람과, 과거의 삶에서  겪어야 했던 쓰라린 상처와 아픔들 또한 따듯한 가족이란 울타리 안에 추억이 되고, 그 삶은 가난이 아니고 아픔도 아닌 , 추억으로 남았다.

 가늘어 보이는 희망이란 줄을 절대 놓지 않고, 어제보다 나아져가는 작은 삶의 변화에 감사하며 꿈을 꾸는 것이다. 그럴 때 삶은 비로소 변화가 시작되는 것이다.

작은 것부터 시작해서 성취감을 가지고, 감사하며 자존감을 가지는 것. 도전해 보는 것.

그리고 가난한 마음과 불우함이 남긴 초심(낮음의 교훈)을 잃지 않는 것.

첫사랑의 실연이든 , 가난이든 , 고난이든 상처가 아물었을 때 비로소 추억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때가 되면, 가슴 아팠던 삶의 이야기가 말 그대로 추억이 될 수 있다.

소박한 술자리에서 안줏거리처럼 웃으며 되씹게 될 추억 말이다.

여전히 나의 삶의 무게는 버거울 정도로 무겁다.

많은 사건이 앞으로도 내 마음을 무너뜨리려 할 수도 있고, 잠시 마음이 무너진 채 주저앉아

시간을 낭비할 수도 있겠지.

그래도 주어진 삶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 내야 한다. 하나하나의 아픔들이 추억으로 쌓일 수 있도록,

인내를 가지고 포기하지 않는다면 추억이 될 테니 말이다.


여전히 나의 인생의 여정에선 새로운 시련과 해후하고  또 그가 내게 원한이라도 있는 듯, 잔인하게 찌르는 아픔에 신음한다.

그래도 살아내리라.

그래도 꼭 살아내고 추억으로 남기리라.


한 가지 제안을 해본다.

혹독한 시련의 때가 찾아오기 전, 사랑하는 가족과 단란한 사랑 가운데 거하길 바란다.

혹, 홀로 외로이 있다면, 꼭 사랑하는 누군가를 만나고 사랑가운데 함께하길 바란다.

그리고 서로 사랑하자.

미디어를 줄이고 사랑하는 사람과 대화하는 시간, 사랑의 시간을 보내자.

그것은 중요한 것이다.

풍요로워진 현대, 삶을 포기하는 가장 큰 원인은 가족의 해체, 그리고 세상에 나 홀로 던졌다고 느끼는

외로운 고독 때문이 아닐까?

사랑을 한다면 그 자체로도 행복하리라.

지지해 주는 가족, 사랑으로 지켜야 하는 가족과 본인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이다.

그로써 늘 무너지려는 마음을 다시 세우고, 꿋꿋이 살아내야 한다.

삶은 산다가 아니라 살아 내는 것이다.

그리고 모두들 꼭 살아내길 바란다.


저는 글은 읽는 모든 분들이 희망을 가졌으면 한다.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