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상실감과 절망으로부터

by 노란콩



내가 다른 지역으로 떠나서 돈을 벌어야겠다고 그러니까 독립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시기가 남들보다 늦은 건 맞다. 늦었던 이유를 설명하자면 내가 가진 집에서의 역할이 있었다.



내가 가진 상황상 어릴 때부터 작건 크건 집안에 생기는 일을 결정, 처리해야 했고 동생들을 챙겨야 했다. 일찍부터 음식을 할 줄 알아야 했고 집안일을 할 줄 알아야 했다. 의도하지 않게 생활의 지혜? 음식솜씨? 가 늘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요리실력과 문제에 대한 해결능력이 좋다. 나이가 든 지금 이런 것들이 장점이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어릴 때는 어찌나 서러웠는지. 원치 않게 일찍 철드는 내가 너무 안쓰러웠다.(지금은 친구들보다 철이 많이 덜 든 것 같다....)



그러니까 무언가를 결정할 때 오롯이 나만 생각하기 힘든 환경이었다.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나이가 드니 다른 사람을 챙겨야 할 이유가 없어졌다. 모두 스스로 할 수 있는 독립적인 성인이 되었다.


그때쯤 나의 상황은 내가 나를 챙길 여력이 없을 때였다. 알 수 없는 상실감이 몰아쳤다. 내 인생이 나를 위해 살아온 것이 맞는가?



확신의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나를 지키기 위해 조금은 이기적이게 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가진 것의 모든 부분을 남을 위해 희생하지 말자. 내가 무언가를 하더라도 숨 쉴 수 있을 만큼의 힘은 남겨두자.



살다 보면 누군가를 위해 희생해야 할 때가 분명히 있다. 그것이 가족, 연인, 친구일 때 우리는 앞뒤 생각하지 않고 희생하게 된다. 나 또한 그랬다. 그러나 희생이라는 것은 자신이 감내할 수 있을 정도로만 하자.



그렇게 마음먹었던 이유 중 다른 하나는 나의 희생과 배려가 상대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희생과 배려가 희생인 줄 모르거나 그런 것들이 당연하다고 여길 수도 있다. 모두 그렇게 오래 살아왔으니까. 그 상황에 안주하게 되어 다른 생각을 하지 않게 된다. 각자 사는 게 바쁘니까. 이건 누구의 잘잘못이 아니다. 단지 그때의 상황은 그러했고 지금은 아니다.



감내할 수 없는 희생은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느낌이다. 현타가 왔다. 내가 처한 상황과 감정이 온전히 내 선택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생각. 눈치를 보며 차선을 선택한 것이 후에 억울함, 분노, 답답함, 슬픔, 막막함 등의 감정으로 다가왔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지?

'이제 힘이 부치는데.''

'상황이 나아질까?'

'나도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이 있는데.'



허무함과 절망감. 그래서 생각을 바꾸었다.



나를 좀 더 생각하기로. 희생을 하더라도 내가 살기 위해, 미래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최소한의 것들은 남겨두자로 바뀌었다.



미안하지만 약간의 배려와 희생만 두고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선택해 보기로 했다. 누군가 나를 생각했을 때 전에는 안 그랬는데 냉정하고 이기적이다고 느껴서 서운할 수 있지만 어쩌겠는가. 당장 내가 힘든데.



자신의 모든 것을 남을 위해 희생하면 오롯이 자신을 위한 미래를 그리기 힘들다. 그렇게 나만 생각하겠다는 마음을 먹고 결정을 했다.



그런데 내 결정에 아무도 서운하거나 이기적이다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여태껏 나 혼자 지레짐작으로 내 결정을 주저했고 상황을 크게 생각하며 지냈던 것이다.



진작 함께 이야기를 하거나, 좀 더 일찍 나를 위한 결정을 했었다면 알 수 있었을 것을 혼자 너무 크게 생각했고 오랜 시간 고민했다.



살다 보면 누구나 많은 고민과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생긴다. 처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혹은 자신의 상황을 누군가에게 이해시키기 위해서라도 조금씩 이야기하자.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고민과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니 본인을 놓을 정도로 힘이 드는 일이라면 다른 사람이 알 수 있게 말이라도 꺼냈으면 좋겠다.



'내가 이런 상황이라 너무 힘들어!!!!!!'

'고민해 봤는데 미안해. 내 결정은 이거야.'



이렇게. 눈치 보지 말자. 투정 좀 부리자.

당신이 조금 이기적이면 어떤가.

당신의 상황이 남들에게 조금 알려지면 어떤가.

당신이 조금 미움받으면 어떤가.

자존심이 약간 구겨지면 어떤가.



이야기하자. 세상에 나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지 몰라도 그냥 내편에서 내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다.


이전 05화5화. 그럼에도 나를 버티게 해 준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