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공기의 온도. 그럼에도 몸의 떨림과 살짝 오르는 열기는 내가 좀 긴장해서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오랜만에 서로 마주 앉았다. 기억해 보니 네 얼굴을 본 지가 2주 전이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되었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내가 커피를 한 두어 모금 마셨을 때, 그는 나에게 이별을 말했다.
그의 말이 진심이라는 것은 이미 알 수 있었다. 이별은 그의 시선 끝에 있었다. 항상 나를 따라오던 시선이 다른 것들을 향할 때 나는 이미 우리의 이별을 예상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겁이 나서 그 시선에 대한 이유를 판도라 상자처럼 열어보지 못하고 외면했다.
“너 진심이야?”
“응. 미안.”
고작 그 말이 다였다. 6년이라는 내 시간이. 그와 함께한 추억들이. 우리가 함께한 6년이라는 시간의 결말을 담기에는 말도 안 될 정도로 짧은 단어였다.
“왜? 내가 뭐 잘못했어?”
“아니. 이제 더는 너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 미안해.”
나도 알고 있다. 그의 명확하지 않은 저 대답이 우리의 관계가 끝나는 가장 정확한 이유라는 것도 그리고 내가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도.
“내가 더 노력해도 안 되겠지.”
“응. 미안.”
단호한 대답을 듣고서야 그의 시선을 볼 용기가 생긴다. 오늘 그의 시선 속에는 오직 커피만 머물러 있다. 이제 정말 인정하기 싫어도 인정해야 한다. 우리가 이별한다는 것을.
“그래. 잘 지내. 먼저 일어날게.”
“잘 지내 지혜야.”
그의 담백한 인사에 앞이 흐려진다. 나는 곧 무너지기 시작할 것이다. 한시라도 빨리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물론 그는 알아차릴 수 없도록 자연스럽게, 내 행동 하나하나가 어색하지 않게, 그의 머릿속에 마지막으로 남을 내 모습이 여유롭길 바라며.
그리고 내가 조금이라도 편히 쉴 수 있는 그곳으로 향한다.
“어서 오세... 너!! 무슨 일 있었어?”
“기정아. 나 헤어졌어.”
“뭐?! 이 새끼가. 그 새끼 전화번호 뭐야!”
“네가 전화해서 뭐라고 하게? 다시 나를 사랑하라고 할 거야?”
삐딱선을 타는 내 말에 기정이는 말과 행동을 멈췄다.
나는 벌을 받고 있는 것이다. 태준의 시선이 변했다는 것을 눈치챘을 때, 기정의 시선이 줄곧 내게 와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확실하게 행동하지 않았다. 나도 잘 모르겠다. 다른 사람들이 보는 내 시선의 끝은 누구를 따라가고 있는지.
“야. 그냥. 소주나 마시러 가자.”
“아주 자기 멋대로야. 기다려 가게 정리하고 가.”
그는 항상 이런 식이였다. 내가 시키면 군말 없이 자신의 것을 접고 들어주는 사람. 처음에는 그런 그가 친구라 너무 좋았다. 그는 언제든 돌아보면 있는 나무 같았고 나는 그 나무 아래서 쉬기도 외치기도 하였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괜찮아?”
“장난해? 괜찮겠냐고.”
“미안.”
“나 오늘 미안하다는 사과 진짜 많이 받네.”
“아. 미안.”
“뭐가 미안한데? 너나 걔나.”
“그 자식은 뭐가 미안하데? 자기가 차놓고 왜 미안하데?”
이상하다. 기정은 너무도 당연하게 헤어짐을 고한 사람이 내가 아닐 거라 생각한다. 묘하게 배알이 뒤틀린다.
“야. 근데 너는 왜 내가 찼을 거라고는 생각 안 해?”
그 말을 듣고 그는 내 눈을 빤히 바라봤다. 마치 내 시선을 읽으려는 듯이. 나는 그의 시선을 피했다. 이럴 때마다 내 마음이 모두 그에게 읽혀 버릴 것 같아 두렵다.
“이러니까.”
“뭐가?”
“내 눈을 피하잖아.”
쓸데없이 예리한 놈. 내 자존심을 위해서 모르는 척 수면 아래 둘 수도 있는 일을 그는 꼭 이렇게 수면위로 떠오르게 만들었다.
“예리한 놈. 무서운 놈. 나쁜 놈.”
“미안.”
“미안하면 술이나 사.”
그렇게 나는 끈덕지게 따라붙는 그의 시선을 느끼며 정신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