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편한 강남역 주변 식당 8곳을 추천합니다
직장인의 점심시간.
매일 반복되는 이 선택의 시간은, 위가 약한 사람에게는 ‘생존’의 문제이기도 하다.
어릴 때부터 소화기관이 좋지 않았다. 라면을 먹으면 꼭 토하고 설사를 했다.
새벽에 허벅지에 쥐가 날 정도로 토한 적도 있었고, 그럴 땐 정말 죽음을 떠올리기도 했다.
나이가 들면서 나에게 맞지 않는 음식이 무엇인지, 어떤 음식을 먹으면 탈이 나는지를 조금씩 알게 됐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내가 원하는 음식만 먹을 수 없었다.
지금은 나이가 많이 들어 내가 메뉴를 정하는 경우가 많지만, 어릴 땐 윗사람의 기호에 따라 식당을 정해야 했고, 메뉴 주문조차 눈치를 봐야 했다.
서울 곳곳을 전전했다.
첫 직장은 서교동. 몸이 안 좋을 때면 설렁탕집을 찾아 혼자 자주 갔다.
두 번째 직장은 압구정, 윤당빌딩 근처엔 백반집과 국수집이 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 외에도 역삼동, 청량리, 회기동, 양재동, 을지로… 참 많은 곳을 거쳤다.
그리고 지금, 강남역. 이곳에서만 벌써 9년을 넘게 출퇴근 중이다.
강남에서도 위장 문제는 여전했다.
장염, 배탈로 수없이 토하고 설사했고, 심지어 업무시간에 구급차에 실려간 적도 있다.
그때를 돌이켜보면, 원인은 언제나 ‘고기’였다.
응급실에 실려갔던 그날을 잊지 못한다.
전날 ‘철판목장’이라는 지하 식당에서 스테이크를 먹었었다.
타 부서와의 협업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며, 그쪽에서 감사 인사로 점심을 샀고 대접의 의미로 고기집을 예약한 거였다. 그들의 성의를 생각해 질긴 소고기를 억지로 1/3쯤 먹었다.
배 속에 기름 덩어리가 들어가는 그 느낌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날 저녁부터 설사를 시작했고, 이튿날 출근해서는 제대로 걷지도 못한 채 쓰러졌다. 결국 119에 실려 응급실로 향했다.
물론 철판목장에서 상한 고기를 썼을 리는 없다.
같이 먹은 동료들은 모두 멀쩡했다.
문제는 그 조리 방식이 내 몸과는 ‘상극’이었다는 점이다.
기름진 수입산 소고기를 부드럽게 하려고 굽는 내내 기름을 덧바르고, 1인 철판 위에 올려진 고기에서는 쉴 새 없이 기름이 흘러나왔다.
포크로 고기를 누르자마자 압력에 의해 기름이 물총처럼 튀어 나올 정도였다.
생각해보면 애초에 그런 자리는 피했어야 했다.
정 안 되면 그냥 아무것도 먹지 않든가, 조심스럽게 다른 식당을 제안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땐 지금보다 어렸다. 그게 참 쉽지 않았다.
그렇게 9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나에게 맞는 — 아니, 나에게 ‘탈이 나지 않는’ — 식당들을 하나둘씩 찾아냈다.
소화기관이 약한 분들, 나와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는 강남역 주변 직장인들에게 이 리스트가 작게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맛도 중요하지만, ‘탈 안 나는 음식’이 먼저인 분들을 위해 정리해본다.
모랑솥밥 (강남대로 359, 2층) → 조미료 적고, 정갈한 솥밥. 밥이 질은 편이라 소화가 정말 편안하다.
원조원주추어탕 강남본점 (강남대로 110길 6) → 된장 베이스의 깔끔하고 묽은 스타일. 깊은 맛은 기본, 혼자 가기에도 좋음.
토봉추어탕 (강남대로 47길 14, 1층과 지하1층) → 진하고 걸죽한 스타일이지만 속이 부담스럽지 않다. 고추튀김이 별미
미분당 강남점 (강남대로 110길 16) →한국인 입맛에 맞는 퓨전식 쌀국수. 가볍고 깔끔한 국물, 면 무제한 리필.
신북집 (서초구 사임당로 143) → 깔끔한 칼국수, 회덮밥 등 다양한 메뉴지만 재료가 신선함.
서초정 (강남대로 53길 12, 지하1층) → 양은 적지만 재료가 신선함, 세련된 인테리어. 연어장 덮밥이 일품.
청담돈가스 (테헤란로 4길 46) → 바삭한 튀김옷에 부드러운 고기, 나는 치킨가스만 주문, 점심시간엔 항상 줄서는 맛집.
아트스시 (테헤란로 4길 46) → 초밥 전문. 조미가 약하고 생선 상태 신선한 편, 바삭한 튀김이 의외로 퀄리티가 높음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으로 뽑은 리스트지만,
첫 번째 기준은 먹은 뒤 탈이 나지 않았는가,
두 번째 기준이 맛이다.
대부분 혼자 가서 먹기에도 무리가 없는 곳들이다.
다음 글부터는 각 식당의 특징과 장단점을 하나씩 소개해보려 한다.
돼지, 소고기 없이도 충분히 행복했던 점심의 기록.
이제 그 이야기를 하나씩 꺼내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