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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에서 만난 원주추어탕

원조원주추어탕 강남본점 (강남대로 110길 6)

by 무어

부서에 새로 부임한 파트장과 점심을 함께한 날이었다. 부서원들에 대한 분위기를 파악하고, 내가 진행 중인 프로젝트에 대해 이런저런 피드백을 주고받기 위한 자리였다. 말투는 퉁명스러웠지만 장난기 있고, 권위적인 스타일도 아니라 식사 자리는 의외로 편안했다.


그가 안내한 곳은 회사에서 꽤 거리가 있었다. 강남역 8번 출구와 연결된 사무실에서 신논현역 5번 출구 인근 골목까지, 지하철 한 정거장쯤은 걸어간 셈이다. 그 끝자락에 다소 허름한 외관의 식당 하나가 나타났다. 간판엔 ‘원주추어탕’이라는 글자가 선명했다.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식당 앞에는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주로 와이셔츠 차림의 직장인들과 노년층 어르신들. 이 정도면 이미 맛집 인증이다. 나는 줄에 섰고, 파트장은 멀찍이 떨어져 담배 한 대를 피우고 돌아왔다.


순서가 되어 식당 안으로 들어서자 2층으로 안내받았다. 1층과 비슷한 규모의 홀이 위층에도 마련돼 있었다. 외관에서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넓은 공간이었다.


우리는 갈아서 2인분을 주문했다. 하나의 커다란 솥에 담겨 나온 추어탕은 팔팔 끓인 뒤, 각자 개인 뚝배기에 덜어 먹는 방식이다. 추어탕이 나오고 2~3분쯤 지나자 묽지도 되직하지도 않은, 적당히 걸쭉한 국물이 완성됐다. 추어는 곱게 갈려 있었고, 마늘, 생강, 대파, 된장, 들깻가루 등으로 진하게 양념되어 있었다.


원주식 추어탕의 특징이라면 된장을 베이스로 부추, 시래기, 고사리 등 산채류가 풍성하게 들어간다는 점이다. 강원도라는 지역 특성이 반영된 구성이라 할 수 있겠다. 미꾸라지 살을 으깬 뒤 채반에 걸러내 까끌거림 없이 부드러운 식감도 인상적이다. 국물은 진하지만 담백하고 깔끔하다.


반찬으로는 파김치, 배추김치, 물김치, 멸치볶음이 나온다. 파김치는 일품이지만 많이 먹으면 오후 내내 입 안에서 파 향기가 은근히 지배한다. 한 번의 양치질로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물김치는 조금 지저분해 보여 손이 가지 않았고, 배추김치는 간이 세지 않고 적당히 매콤해서 만족스러웠다.


내 뚝배기에 추어탕을 한가득 담고, 밥 한 숟갈에 국물을 두세 번 떠먹었다. 감칠맛이 강하고 건더기가 많아 밥을 많이 먹지 않아도 씹는 재미가 충분하다.


식사 내내 넥타이를 맨 직장인들, 노타이의 아저씨들, 70대 노인들까지 끊임없이 들어왔다. 아무래도 20~30대 젊은 층, 특히 여성들에게는 낯설거나 선호도가 낮은 메뉴일 수 있다. 미꾸라지 자체에 거부감을 갖는 이들도 많고. 하지만 이곳의 추어탕을 한번 맛본다면, 그런 편견은 충분히 넘어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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