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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음인이 선택한 '강남 토봉추어탕'

전라도식 걸쭉하고 양념 강한 추어탕

by 무어

내가 추어탕을 좋아하게 된 건 꽤 의학적인 이유에서다.


평소 소화력이 약해 기름진 음식만 먹으면 어김없이 탈이 났다. 10년 전 어느 날, 장염으로 심하게 고생한 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집 근처 한의원을 찾았다. 옆집 이웃의 추천으로 간 곳이었다.


사상 의학 전문가인 한의사는 우리 부부와 두 시간 넘게 이야기를 나누며 소양인인지, 소음인인지, 태음인인지 꼼꼼히 살폈다. 나는 골격이 커서 태음인으로 보였지만, 진단 결과는 소음인. 아내는 소양인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체질에 맞는 음식 리스트를 손에 쥐게 됐다.


소음인에게 좋은 음식은 열을 내고 몸을 깨우는 재료들이다. 마늘, 고추, 닭, 그리고 미꾸라지가 대표적이었다. 반대로 돼지고기처럼 찬 성질의 음식은 피하라는 조언을 들었다. 그전에도 추어탕을 좋아했지만, 그 이후로는 ‘몸이 원하는 음식’으로 더 자주 찾게 됐다.


강남역에서 뱅뱅사거리 방향 골목에 있는 토봉추어탕을 처음 알게 된 건 10년 전, 그 이전에 부서 부장이셨던 분과의 점심 자리였다. 그분은 ‘성군’이라 부를 만한 리더였다. 파트원의 고민을 해결하려 애쓰고, 인간적으로 대해주며, 새로운 시도에는 믿음과 용기를 주었다. 연말이면 부부 동반으로 서울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대접했고, 소화력이 약한 나를 위해 자비로 배추즙 한 박스를 보내주기도 했다. (이분에 대한 일화는 별도의 글로 남겨도 될 정도다.)


그날, 식당에 들어서자 여사장님이 환하게 맞아주었다. 밝은 미소와 힘 있는 목소리, 손님 한 명 한 명을 진심으로 대하는 친절함이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추어탕 두 그릇과 고추튀김 하나를 주문했다.


이곳 추어탕은 전라도식에 가깝다. 통째로 간 미꾸라지가 국물에 녹아 진하고 걸쭉하다. 마늘, 들깻가루, 다진 고추를 취향껏 넣으면 국물은 한층 묵직해진다. 뼈까지 갈아 넣은 듯 깊은 맛이 퍼지고, 함께 나오는 배추김치와 마늘장아찌도 강렬한 양념의 전라도식이다.


걸쭉한 국물을 한 숟갈 떠 입에 넣으면 깊은 맛이 입안 가득 퍼진다. 손으로 찢은듯한 배추김치를 흰쌀밥 위에 올려 추어탕과 함께 먹으면 양념의 강렬함이 부드럽게 상쇄된다. 그리고 곧, 내 손은 다시 국물을 뜨고 있다. 맛있다. 다른 표현이 필요 없을 만큼 맛있다.


추어튀김과 고추튀김이 있는데, 꼭 고추튀김을 추천한다. 커다란 고추를 세로로 갈라 속을 채운 뒤 튀겨낸 것으로, 바삭한 튀김옷 안에 담긴 깊은 맛이 추어탕과 훌륭하게 어울린다.

이미지 2025. 8. 9. 오후 2.28.jpg


양이 푸짐해 둘이 가면 남길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다시 찾게 되는 집. 강남 한복판에서 잠시 남도의 맛과 정을 느끼고 싶을 때, 혼자라도 기꺼이 가고 싶은 식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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