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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한복판, 누룽지를 긁는 시간 – ‘모랑’ 돌솥밥

by 무어

돌솥밥의 진짜 매력은 밥을 다 먹은 후, 바닥에 눌어붙은 누룽지를 긁어먹는 데 있다. 돌솥의 온도가 너무 뜨거우면 누룽지가 타버리고, 반대로 낮으면 아예 생기지도 않는다. 누룽지는 그 미묘한 온도 차이에서 탄생하는, 돌솥밥의 마지막 보너스 같은 존재다.


‘모랑’은 강남역 근처에 있는 돌솥밥 전문점이다. (주소: 강남대로 359, 2층)


이곳의 돌솥은 유난히 뜨겁다. 그래서 밥을 다 먹고 난 뒤, 누룽지를 긁어내려 해도 숟가락만으로는 잘 떼어지지 않는다. 물을 부으면 쉽게 떼어낼 수 있지만, 그러면 바삭한 식감은 포기해야 한다. 딜레마다. 물 없이 긁으면 안 나오고, 물을 붓자니 눅눅해진다.


어느 날, 누룽지를 박박 긁고 있는데 갑자기 '뚝' 소리가 났다. 솥 바닥에 미세하게 금이 가 있던 탓인지, 내 숟가락질이 마지막 자극이 되어 바닥이 깨져버렸다. 타버린 돌가루가 누룽지에 섞였고, 나는 당황한 채로 식사를 마무리했다. 퇴식구에 그릇을 놓으며 조심스럽게 사장님께 말씀드리니, 예전에 솥을 한번 떨어뜨린 적이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고 하셨다. 찝찝함을 안고 나왔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다시 이곳을 찾게 되었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밥이 내 입맛에 딱 맞기 때문이다. 된밥보다 약간 질게 지어진 밥은 부드럽고, 소화도 잘된다. 밥 자체에 별다른 조미료가 들어가지 않아 슴슴하고 담백한 맛이 살아 있다.


내가 가장 자주 먹는 메뉴는 곤드레솥밥이다. 잘 삶은 곤드레 나물이 밥 위에 얹어져 있고, 은행 한두 알이 고명처럼 올라가 있다. 사실 대단히 맛있는 건 아니다. 짜지도, 달지도 않다. 하지만 그 조용한 맛이 좋다. 양념장이 함께 나오지만 굳이 넣지 않고 그냥 비벼 먹는다. 이 집의 또 다른 장점은 김이 넉넉하게 제공된다는 점이다. 한 숟갈에 김 한 장씩 얹어 먹어도 부족함이 없고, 추가로 가져다 먹을 수도 있다.


곤드레밥 다음으로 자주 먹는 메뉴는 날치알김치솥밥이다. 날치알이 듬뿍 얹힌 밥을 뜨거운 솥에 비비면, 알들이 하얗게 부풀어 오르며 톡톡 터지는 식감을 선사한다. 양념 없이도 간이 딱 맞고, 날치알 특유의 짠맛이 밥과 잘 어우러진다. 특히 누룽지 상태는 곤드레보다 더 만족스럽다. 날치알과 밥알이 적당히 눌어붙어, 마지막까지도 맛있게 즐길 수 있다.


대표 메뉴인 해물솥밥에는 통새우, 오징어, 가리비, 굴이 조화롭게 들어 있다. 자극적이지 않고, 김과 함께 한입씩 먹으면 바삭한 김과 부드러운 해물이 어우러져 안정적인 맛을 낸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곳에서 밥을 먹고 배탈이 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는 점이다. 돌솥 안에서 지글지글 익은 재료들이 왠지 믿음을 준다. 자극적이지 않고, 위에도 부담이 없다.


가격대는 10,000원에서 14,000원 선. 강남에서 이 정도면 꽤 합리적인 편이다. 굳이 멀리서 찾아올 맛집은 아니지만, 강남에 거주하거나 직장 생활을 하며 매일 점심을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모랑’을 리스트에 넣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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