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부터 대학이야말로 한 나라의 지성을 상징하는 곳이고, 그러한 대학의 심장은 도서관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리하여 외국 여행을 할 때에도 가능하면, 아니 시간을 내어서라도 대학을 둘러보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내가 스쳐 지나갔던 독일의 모든 대학 도서관 이야기를 여기서 다 하기는 그렇고, 내가 비교적 오래 머물렀던 곳인 프라이부르크(Freiburg)와 만하임(Mannheim) 대학의 도서관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아, 가지고 있는 사진을 다시 한번 정리를 해보고, 그를 통해 소개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 대학 도서관이 있으면 추가적으로 더 소개해 보도록 하겠다.
## 둘째 마당: 오늘의 이야기, 프라이부르크대학 도서관
2015~2016년에 난 독일 남서부 바덴-뷔르템베르크주에 있는 프라이부르크대학에서 연구년을 보냈는데, 연구년을 나온 대학의 교수들의 대다수는 대학 또는 연구소에 매일매일 나가고 그곳의 교수들과 많은 교류를 하며 정말 연구년스럽게 보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난 독일에서의 연구년을 새삼스레 출석체크하듯이 그렇게 보내기는 싫었고, 해서 독일교수와 처음 만난 날에 "자유로이 도서관에서 책을 보며 지내겠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했다. 사정이 이러하니 연구년기간 동안 나의 독일생활은, (물론 강의도 들어보고, 연구소도 나가 보고, 독일 교수와 같이 식사도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지) 곧 대학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것과 동의어라고 할 수 있다. 오늘은 이처럼 연구년 기간 동안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던 프라이부르크대학 도서관 이야기를 해보기로 하겠다.
1. 외 관
내가 독일에 있던 2015년 여름, 프라이부르크대학에 실로 초 현대식 대학도서관이 들어섰다. 건물 전체가 유리로 뒤덮이고, 도대체 몇 각형 인지도 모를 기이한 형태를 갖춘 도서관이 말이다. 일단 외관은 이러하다.
이러한 초 현대식 도서관의 건립을 둘러싸고는 많은 비난이 쏟아지기도 했는데, 그 가장 커다란 이유 중의 하나는 이 새로운 도서관이 주변의 고풍스러운 대학건물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보기에도 이런 비판은 나름 이유가 있어 보이고, 무엇보다도 독일 사람들의 일반적인 정서와는 좀 안 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가 하면 대학 도서관 건립에 시의 재정이 흔들릴 정도로 너무 많은 재원이 투하되었다는 등의 비난도 쏟아졌다. 특히 이 건물의 옥상을 보면 알겠지만 건물 유지에 필요한 에너지의 상당 부분은 태양열 발전에 의존하도록 되어 있는데, 이것 또한 초기 투자비용이 많이 들어가게 된 이유가 될 수 있다.
아, 이 사진을 보니 확실히 주변의 건물과의 조화는 찾아보기 힘드네.
위에서 보여준 프라이부르크대학 도서관의 입구인데, 대학 도서관(Universitatsbibliothek)이란 글자가 선명하다. 대학도서관의 약자인 UB를 크게 키워 놓았는데, UB는 독일어발음으론 '우베'에 가깝다.
독일의 대학생들은 자전거를 통학의 주요 수단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대학도서관 앞은 늘 학생들이 몰고 온 자전거로 넘쳐나기 마련인데, 이상한 것은 독일의 대학생들은 비가 오는 날에도 태연히 자전거를 끌고 온다는 것이다.
프라이부르크 대학 도서관 앞에 기이한 돌구조물이 있는데, 대학생들은 저기에 저렇게 올라가 앉아 있기를 좋아한다. 그런데 저런 풍경을 보면서 드는 의문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저 돌구조물은 과연 설치할 때부터 저런 용도로 사용될 것을 염두에 두고 설치한 것일까? 아니면 예술작품(설치미술)인데 원작자의 의도에 반하여 대학생들이 저런 식으로 이용하는 것일까?라는 것이었다.
이 공간에 관하여는 궁금한 것이 또 하나 있는데... 맑은 날에는 이곳에 이렇게 많은 애들이 앉아 있는데, 저 많은 의자들은 도대체 어디서 들고 나온 것이지? 아, 아래 사진의 왼쪽 건물은 대학 본관이고, 오른쪽 건물이 대학도서관이다.
대학도서관의 열람실, 특히 자유열람실은 누구나 자유로이 이용할 수 있지만(일요일은 예외), 사물함을 이용한다거나 도서를 대출한다거나 하는 등의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카드가 필요하다. 아래 사진 속의 "UniCard Freiburg"가 바로 그것인데, Prof.로 시작하는 것을 보닌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의 내 신분은 객원교수 비슷한 것이었나 보다.
2. 내 부
(1) 1층
이제부터 프라이부르크 대학 도서관을 본격적으로 탐험해 보기로 하자. 1층(독일식으로 말하면 0층이지만, 여기서는 편의상 우리나라식으로 이야기하겠다)의 모습은 대충 이러하다. 원칙적으로 독일 대학도서관의 열람실에는 커다란 가방이나 외투 등은 못 들고 들어가게 되어 있다. 그 이유는 잘은 모르겠지만 추측건대 상당수의 도서가 개가실 형태로 비치되어 있어 도난 등의 문제가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때문에 1층에는 실로 많은 사물함이 마련되어 있고, 사진에는 안 보이지만 꽤 큰 플라스틱 바구니도 비치되어 있다(물론, 가방과 외투 등은 사물함에 두고, 필요한 책만 바구니에 넣어 열람실 안으로 갖고 들어가라는 뜻이다). 재미있는 것은 비 오는 날이면 사물함 위는 우산을 펼쳐 놓은 곳이 되어 버린다는 것...
사물함을 이용하려면 앞에서 말한 UniCard를 저 기기에 갖다 대어야 한다. 그럼 내가 사용할 사물함의 번호가 뜨게 되어 있다. 독일어로 쓰여 있는 것은 무슨 뜻이냐면... 우선 굵은 글씨는 옷장(사물함), 그리고 가는 글씨는 "(옷장을 사용하시려면) 이곳에서 당신의 카드를 활성화시켜 주세요".
화재 등 비상시에 요긴한 긴급대피도인데, 이것을 보니 도서관 건물 전체의 모습이 대충 감이 잡힌다. 작은 굴절까지 포함하면 17 각형쯤 되는 건가? (아, 워낙 많아서 잘못 헤아렸을지도 모른다).
고급스러움과는 거리가 멀지만, 상당히 넓은 카페테리아가 1층에 자리하고 있다. 내가 자주 이용하던 곳인데, 이곳에서는 천연 오렌지를 그대로 갈아주는 100% 오렌지주스를 2유로 정도면 마실 수 있다(1잔의 주스를 만들기 위해서는 오렌지 2개 반 정도가 필요하다).
도서관 1층에 한시적으로 설치되어 있던 공간인데, 글쎄 자그마한 음악감상실이라고나 할까.
턴테이블과 스피커에 완벽한 방음시설까지 되어 있는데, 문득 우리 대학의 Book Cafe에도 설치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설치에 큰돈이 들어갈 것 같지도 않고.
(2) 2-3층
2층과 3층은 거의 비슷한 구조를 취하고 있는데(4층 이상은 내가 거의 사용하지 않아서 사진이 없다), 크게 2개의 다른 성격을 가진 영역으로 되어 있다. 한 곳은 아래 사진에서 보듯이 우리네 대학 도서관의 일반열람실 같은 곳(일부 공간은 칸막이가 있기도 하다)인데, 이곳에서는 옆사람과 작은 소리의 대화를 나누는 것조차 조심스럽다.
그리고 다른 한 곳은 그보다 훨씬 자유로운 형태의 공간인데, 이곳에서는 옆사람과의 대화는 물론 꽤 큰소리의 토론도 가능하다. 이것은 이건 옆사람들이 하는 큰 소리의 대화도 감내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자리(의자)의 배치도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는데, 이렇게 바깥을 보며 앉을 수 있는 이곳이 내가 가장 좋아했던 공간이다. 바깥 경치를 보며 소설책을 읽거나, 음악을 들을 때 두말할 나위 없이 딱이다. 너무도 좋았기에 내가 도서관장이 되었을 때 우리 대학의 도서관에도 이런 식의 공간을 마련했고, 또 즐겨 사용하기도 했었다.
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에는 별로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굳이 바깥 경치를 바라보면서 공부를 하고 싶다면, 다른 곳에 있는 책상(원형/사각형)과 의자를 끌고 오면 된다. 이렇게 말이다.
이 공간을 차지하고 공부하기가 그리 쉽지만은 않아서, 조금만 늦게 가면 내 자리가 되기 어렵다. 문제는 날 닮아서 그런지 내 딸아이도 이 자리를 좋아하지만, 오전에 어학을 공부하러 학원을 가야 한다는 것. 그래서 사실 이러면 안 되는데, 내가 일찍 가서 딸아이를 위해 자리를 맡아 놓기도 했다. 허전해 보이는 오른쪽 책상이 그것이다.
친구와 경치를 즐기며 이야기하고 싶다고? 그럼 그렇게 하면 된다. 의자와 책상을 끌고 와서 펼쳐 놓아도 그 누구 한 사람 무어라 하지 않는다. 적어도 이 공간에는 행동의 제약이 없다.
바닥에 자료를 펼쳐놓고 쭈그리고 앉아도 상관없고, 뒤쪽에 보이는 애들처럼 널브러져 있거나 드러누워 있어도 그만이고.
뭣하면 드러누워서 친구를 불러 이야기를 해도 좋다.
아예 겉옷을 벗어젖히고, 배 깔고 드러눕는 건 어떠냐고? 그 또한 상관없다.
물론 모든 독일의 대학생들이 이런 식으로 도서관을 이용하지는 않는다. 사실 이렇게 전형적인 방식으로 앉아 공부하는 학생들이 대부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검은 머리의 여학생? 어학을 마치고 돌아와 공부에 열중하고 있는 내 딸아이다. 내가 자리를 못 잡아 준 날인가 보다...
아, 함께 모여 스터디를 하는 친구들을 위하여 Box로 둘러싸인 공간도 있고, 컴퓨터 화면을 띄워놓고 토론을 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다만 이런 자리에 앉으려면 아침 일찍 나와야 됨은 물론이다.
도서관에서의 내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놓고 싶었다. 어. 언젠가 또다시 이곳을 찾게 되었을 때 같은 포즈로 사진을 찍어서 이 시절의 내 모습과 비교해보고 싶어서... 그런데 그로부터 7년이 흘렀건만, 아직까지 이곳에 다시 서 본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