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도심에서 만나는 전원 카페 커피 템플에서 "탠저린 카푸치노"를...
제주의 카페, 더 정확히 말해 제주의 커피를 이야기할 때면 으레 첫손가락에 꼽히는 곳이 있는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바리스타라는 이름이 전혀 부끄럽지 않은 바리스타 김사홍이 운영하는 "커피 템플"이 그곳이다.
우선 커피 템플은 그 이름에서부터 좀 남다르다. 일단 커피를 파는 공간을 일컬을 때 보통 사용하는 단어인 '카페'를 버리고, '커피'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당신의 작명 의도야 내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다른 메뉴는 돌아보지 않고 오직 '커피'에만 천착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커피에 바로 붙어 나오는 '템플(Temple)' 또한 그러하다. 원래 템플은 약간은 종교적 의미가 담겨있는 단어로 사원, 신전... 등등을 의미하는 것을 생각하면, 결국 "커피 템플"은 커피라는 종교의 신전(神殿)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상호를 이렇게 붙인 것에서 자신의 커피에 대한 대단한 자부심을 엿볼 수 있다.
이런 자부심은 그대로 좋은 평가로도 이어져서, 커피 템플은 '블루리본 서베이'에도 당당히 그 이름을 올리고 있다. 아, 블루리본 서베이는 프랑스의 미슐랭 가이드와 미국의 자갓 서베이의 장점을 조합하여 만든 대한민국의 레스토랑 가이드북이다.
"커피 템플"을 떠올릴 때, 내 머릿속을 지배하는 이미지는 아래 사진과 같은 것이다. "커피 템플"을 다녀오신 분들의 사진 첩에서 예외 없이 이 사진을 볼 수 있는 것을 보면, 사람들의 느낌은 정말 비슷한 구석이 많은 것 같다. 커피가 맛있다니 가보자...라는 생각으로 "커피 템플"을 찾았는데, 막연히 생각했던 답답한(?) 실내공간과는 완연히 다른 느낌의 운치 있는 풍경과 마주하면서 일순 행복감에 빠졌던 기억이 또렷하다. 가끔 커다란 나무 밑에 짙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고, 그 그늘 속에서 아름다운 여인이 책 한 권을 펼쳐놓고 세월을 낚고 있는 그림을 꿈꾸고 했었는데, 그런 꿈이 현실에서 펼쳐지는 순간이었지.
이런 분위기가 연출될 수 있었던 것은 역설적으로 "커피 템플"이 들어선 이곳이 처음부터 카페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곳은 원래는 '중선농원'이란 이름을 가진 감귤 농원이었는데, 그 감귤 농원이 갤러리와 도서관 그리고 카페가 공존하는 공간으로 탈바꿈한 것인거지. 이렇게...
중선농원의 이러한 변신을 가능케 했던 것은 선친의 땀이 배어있는 농원을 보존하고 싶어 한 문정인/김재옥 부부, 그리고 그들의 꿈의 실현을 위해 발 벗고 나선 건축가 김원 선생과 그의 제자 최원석 소장, 갤러리 2 중선농원을 운영하는 정재호 대표의 고심과 노력이다. 아래 사진은 그들이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공간 앞에 서서 찍은 것으로 보인다.
아, 예전의 살림집에는 이렇게 현대식 게스트 하우스가 들어서 있다.
하늘에서 바라본 이곳의 지금 모습. 이 사진은 이곳에서 퍼왔는데(http://naver.me/xmr3izO0), 이 사이트는 중선농원 이외에도 제주의 옛 건물을 현대적으로 해석하여 멋진 공간으로 재창조해낸 건물들의 모습과 그에 얽힌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커피 템플의 위치? 지도를 찾아보니 커피템플 근처에는 3개의 학교가 약간 일그러진 3각형의 꼭지점을 형성하고 있을 뿐, 여행객이 거점으로 삼을 만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제주 사람이 아니라면, 지도에 의지해서 이곳을 찾아가기는 쉽지 않다. 그렇기는 해도 지도를 보여준 김에 좀 더 이야기해 보자면, 지도 중앙을 관통하는 옅은 노란색의 도로가 1136번 도로이고, 이 도로를 타고 왼쪽(서쪽)으로 주욱 가면 제주와 서귀포를 잇는 1131번 도로와 만나게 된다.
"커피 템플"은 이름만 들었을 뿐, 이번이 첫 방문이었고 따라서 나는 아무런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하여 그저 네비가 이끄는 대로 따라갔더니, 이렇게나 널찍한 주차공간이 나온다. 카페를 차리면서 이렇게나 버젓한 주차장을 만들어 놓기 쉽지 않은데, 아마도 이곳이 농원이었다는 것이 이를 가능케 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번듯한 주차장을 돌아 서면 주차장과는 너무도 대조적인, 마치 창고 같은 허름한 건물이 보인다. 음, 역시 이 건물은 옛날에는 감귤농원의 창고였다.
창고문(?)을 열고 들어서니, 왼쪽으로 오더와 픽업이 이루어지는 공간이 있다. 사진에서 보던 얼굴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오늘은 김사홍 씨는 가게에 모습을 나타내지는 않은 것 같다.
메뉴인데, 들여다보는 척은 했지만 사실 그런 행위는 필요 없었다. 이미 무엇을 마실지는 결정하고 왔으니까 말이다.
유명 바리스타가 운영의 주체이니 드립 커피가 빠질 수는 없는데, 가격이 만만하지는 않다. 특히 메뉴 맨 위에 보이는 '에티오피아'로 시작하는 긴 이름의 드립 커피는 가격이 좀...
마음속에 결정했던 '탠저린 카푸치노'를 주문했다. 홈페이지의 업체 사진 속에서 보았던, 이곳의 시그니처 메뉴라는 것 말이다.
주문을 한 다음, 빠르게 실내 공간을 스캔하고,
이어서 창밖으로 시선을 던져 어디에 앉을까를 바로 결정했다. 비록 8월의 햇살이 따갑긴 하더라도 나무아래의 정취를 느껴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바라보니, 내가 앉을 수 있는 곳은 단 한 곳뿐. 햇살이 조금 부담스러울 수 있는 공간인데, 적어도 나무 그림자가 햇살과 정면으로 마주치는 것을 조금은 막아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말이다. 어쩐 연유인지는 모르겠으나 유리창 앞쪽으로 그물이 처져 있어 답답했는데, 사진은 나름 괜찮다.
이곳에서는 참으로 다종다양한 커피 원두를 팔고 있는데,
커피 머쉰이 없는 딸아이를 위해 드립 백을 하나 샀다.
드디어 우리가 주문한 것이 나왔다. 음, 탠저린향이 너무나도 강하다. 향기만큼 맛도 강하고. 다만, 독특한 맛임에는 틀림없지만, 상대적으로 커피의 느낌이 약해서 조금 아쉽다. 주인공이어야 할 커피가 들러리가 된듯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사진 속에 보이는 케이크도 맛있었는데, 아쉽게도 그 이름은 기억이 안 난다.
어쨌거나 더운 여름날에 시원한 나무 그늘 밑에서 맛있는 커피와 함께 좋은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다만 상전처럼 떠받들고 있는 개가 손님들을 향해 계속 심하게 짖어대어 사람들이 눈치를 줌에도 불구하고 그야말로 오불관언으로 일관하는 사람들이(사진 왼쪽) 이런 좋은 분위기를 해치기는 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