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6. 영원히 함께야

복병들

by 김먼지

숨겨진 복병들



널브러진 사료알갱이들

가득 뭉탱이진 속털

이불에 배인 땀냄새

출근하고 사실은 바깥구경하고싶어 긁어대던 베란다문

딱 그 큰 머리만 지나갈 듯한 열린 베란다문과 그 틈을 덮은 베이지색 암막커튼

프로출근러로 단 한번의 결근도 허용치 않던 너의 의지를 보여준 중문과 현관문에 긁힘자국들

부엌 냉장고앞에 엎드려져 고기자르는 소리를 듣고 졸던 모습

목마르면 그 큰 코로 스텐 물그릇을 떨궈서 기어이 땡그렁 소리로 알려주던 정확함

니가 물고 같이 통통 튀어다니던 삑삑이공

집 뒤 야구장만 가면 물어오던 야구공들,

퇴근 후 우리의 지상낙원이었던 자전거공원에서 천개의 구멍이 나도 바람이 그대로인 빨간 축구공.

업무중에 엄마랑 땡땡이쳐주던 논두렁길과

주말이면 어김없이 한번은 뛰뛰가던 도자공원과 건너편 아파트앞 상가의 길들까지.


어느 것 하나 녀석을 닮지 않은 것이 없어 목이 매인다.

덕구스럽다는 말이 너무 잘 어울리던 덕구.

덕구야. 하고,

남들 눈엔 그저 들개같던 애완견이지만

내게는 목숨만큼 소중한 아들이었음을

절절하게 느끼며 불러보게 된다.

그리고 그 부르는 이름만큼이나 심장을 후벼파는 복병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음을 다시금 느끼며 일상을 일궈나간다. 생각지도 않게 내가 잘 참고 있으니 이번에는 너 어디 견뎌봐라 하고 덕구를 연상시키는 복병들만이 끊임없이 내 머릿 속 봉기를 해댄다.




복병1 남편은 덕구가 떠난 후 세번이나 덕구 꿈을 꾸었다는 나를 너무 부러워했다.

여지없이 꿈을 꾼 날이면 남편에게 아침부터 울먹이며 말했었는데.

"여보 나 덕구 봤어. 덕구가 이러이러했어."

"여보가 맨날 우니까 엄마 걱정돼서 들렀나보네. 이새끼..아빠 꿈에도 좀 나와주지...."

그땐 그냥 나를 위로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주말에 내 동생부부가 와서 나보다 더 큰 소리로 목놓아 울며 우리를 흔들어놓던 날들에 무너진 남편은 같이 살며 한번도 본적없는 목소리로 울어대기 시작했다.

"아..나 덕구가 한번도 안보러와.... 나 덕구가 너무 보고 싶어.... 덕구 너무 그, 안았을 때 뜨겁고 그 손에 쏙 안기는 머리, 크흑...나도 덕구가 너무.. 너무 보고싶어......"

그런 남편에게 기적처럼 덕구가 다녀갔다고, 다음날 퉁퉁 부은 눈으로 남편이 신이 나서 말해주길,


한번은 덕구 영혼처럼 느껴지는 무언가를 잠결에 이불옆에서 느꼈다고 했다. 따뜻한 덩어리째 느껴진 무언가가 자기한테 훅 기대눕는 느낌을. 나는 그게 그가 덕구라고 착각했을 뿐 사실은 복구라고 말했지만 분명히 덕구였다고 말했다. 자기 허벅지 옆에 따뜻하게 착 기대듯 잠시 있다가 갔다고.

자기가 그 영혼같은 무언가를 느끼다가 없어진 후에 바로 남편에게 진짜로 기대 잠을 청한 복구의 사이즈와 그가 느낀 따뜻한 영혼은 분명히 복구가 아닌, 덕구였다고 확신했다.

그래서 그렇게 덕구를 기다렸던 남편이, 울먹이며 잠들때까지 덕구 사진을 보던 그 커다란 남자가, 아침에 눈을 뜨며 연신 눈물이 그렁한 웃는 얼굴로 덕구 꿈을 꿨다고 말하는 게, 사랑스럽고 애잔했다. 그리고 덕구 영혼이 머물렀던 그 새벽, 내 꿈이 아니라 그의 곁에 막내가 진짜 왔다 갔다는 게 참 다행이다 싶었다.

덕구가 아빠를 사랑한 시간들과 공간들을 추억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녀석이 온통 살고 헤집어 놓고 떠났다고 생각한 우리집과 우리가게에, 우리가 함께 다닌 길과 추억모퉁이 곳곳에 우리 막내도 영혼으로 자유롭게 함께 있을거라는 걸 아는데 한달이나 걸렸다.




갑자기 무수한 택배들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복병2 동생은 미친듯 덕구의 추모함을 꾸며줄 유리유골함, 명패, 장식용 노리개와 인식표까지 세트로 주문을 해 우리집 주소로 보내고 있었다. 크기별로 사진을 담을 수 있는 나무액자들과 함께.

늘 우리 건 라면 아니면 삼겹살을 사두는 그녀는 구구라면 간도 쓸개도 빼줄 수 있는 찐조카바보였다.

그래서 늘 구구의 고기가 떨어지지 않게 한우로 준비해두던 구구빠였다.

"언니.. 언니 나는... 나는 덕구 많이 못 놀아준 게 너무 미안해. 너무 보고 싶고.. 덕구가 진짜 엄청 막 뛰어다니고 복구 괴롭힐 때 막 복구만 예뻐했는데.. 우리 시골집에서 지붕 뛰어내려서 도망쳤을 때 나 진짜 미쳤다고 생각했거든? 근데 언니 그 때 덕구가 죽을 뻔한거 언니랑 히상이 더 보려고 참은 거 같애. 언니 나, 나도 이렇게 힘든데, 언니랑 히상이는 어떻게 견뎌? 힘들어서 어떡해...."

주말에 찾아온 동생부부와 친구부부 모임에서 통곡의 밤이 깊어갔다. 원래 울보인 내 동생. 그날은 몇 시간을 울다 지쳐 잠들었는지. 취하기까지 하니 재우기가 여간 쉽지 않다. 하. 덕구이모답군.

그리고 평소 멘탈이 센 줄 알았던 제부가 울 때, 내 남편은 한없이 무너져내렸다.

예상못한 울음으로 내 가슴을 후벼팠던 복병3은 남편보다도 제부였다. 그 참다가 터진 울음소리.

착한 우리 동생과 제부 덕분에, 덕구는 넷일 때와 또 다른 행복한 여생을 보낸 것 같다.


동생의 택배로 점점 덕구스럽게 채워지던 덕구의 추모함.


"덕구 없는 걸 제일 실감할 때가 집 안에서 뭘 볼 때야.?

"움... 아무래도 나는 베란다.."

"역시 그렇구나. 나도. 나도 베란다. 그리고 중문,현관문도."

베란다님.

복병대상 당첨. 베란다와 출근할 때 중문은 없앨래야 없앨 수 없는 최대 복병으로, 남편과 만장일치로 의견이 같았다.

세개의 문을 제외한 우리집의 모든 문은 구구가 집안 어디에서도 제약받지 않도록 안방, 작은방,옷방,주방,욕실 모두 문을 활짝 열어두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게으른 우리 부부는 보통은 아침 8시 알람이 울리면 덕구가 출근하자며 침대로 뛰어오르면서 아침부터 복구랑 부닥치며 인사를 하며 일어나곤 했었다.

눈뜨자마자 베란다가 열려있으면 어김없이 녀석이 있었다. 그리고 출근준비가 끝난 녀석은 중문 앞에 딱 버티고 서있었다.

베란다가 한뼘쯤 열려 있으면 온 새벽에도 지나가는 밖의 고양이와 개를 사람을 구경하던 덕구.

베란다가 닫혀 있으면 두 앞발을 열심히 뻗어 알아서도 씩씩하게 그 큰 문을 열어젖히던 강철앞발 김덕구.

꼭 집개같은 복구와는 다르게 들개같던 내 아이.


화장실을 가려고 새벽에 깨서 거실에 나가면 덕구는 이미 그 새벽을 열고 베란다에 붙어있다가 옆으로 누워 잠이 들곤 했다.

베란다를 사랑했던 고양이바라기 김덕구

추모함을 살피다가 반틈 열어놓은 베란다에 덕구가 찾아와주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그리고 그 기대가 실현되어도 우리는 덕구의 영혼을 볼 수 없을거라는 실망감에 눈시울이 젖어도, 그 베란다에 덕구가 오길 바라며 그 녀석의 침대를 치우지 않고 있다.


녀석들이 뽑은 우리집 최고의 멍수지리 명당인 듯하다.
싸움이 시작되는 자리, 서로를 애타게 찾는 자리도 베란다였지

퇴근한 저녁에는 스톤을 들고 가방에 넣은 채 덕구가 좋아하던 공들을 채워서 복구와 나왔다.


집 뒤 야구장의 풍경은 변한 게 없는데, 20kg를 끌던 무게가 8kg로 줄어들고 나는

덕구가 스톤으로 변해서 가벼워졌네?라고 웃으며 이야기하며 센척해보다가 울음이 터졌다.

"덕구야 아아흑.. 너무 만지고 싶어... 우리아가 엄마가 너무, 너무 보고싶다......이 야구공 다 덕구가 좋아하던 거잖아..엄청 놀아줄 수 있는데....울애기만 없네...."

복구가 눈치를 보는 게 보였다. 얼른 뒤돌아 눈물을 훔치고는 복구와 비를 맞으며 산책했다.

비를 너무 싫어하던 복구가, 이제는 덕구없는 산책에 비를 밟고 나와 걸어준다.


집으로 돌아오니 남편의 눈가가 젖어있다.

자꾸 울어서 얼굴 곪겠네.

저녁을 먹이고 항생제가 많이 들어간 약을 먹여서 상처가 좀 덜 곪는 듯 하다.

체기가 있던 나는 남편이 건넨 빵조각과 죽을 먹는 척이라도 하려다가 소화제만 들이붓다 잠이 든 모양이다.


그리고 지금은 동이 튼 5시 10분.

온 집안은 숨을 죽였고, 거실은 너무 조용하다.




덕구야, 너의 빈자리가 너무나 크다.

알고는 있을까.

거실 소파위에서도, 소파 밑에서도, 베란다에서도, 부엌에서도 너를 볼 수가 없는 게, 만질 수가 없다는 게 얼마나 우리를 미치고 무력하게 하는지를.


엄만 오늘 욕실에서 물을 틀어놓고 아무도 모르게 울었어. 늘 내 힘을 주체하기 힘들만큼 냄새를 찾아 앞장서 가던 너에게 천천히 좀 가자며 짜증을 냈던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그 큰 머리를 엄마아빠 몸쪽에 갖다대며 마사지를 받고나서 졸리면 항상 멀찌감치 떨어진 공간으로 가서 혼자 잠이 들던 너.

오늘은 복구형에게 매일 밤 잠들기 전 너에게 해주던 마사지를 해줬는데, 질투하는 거 아니지?

우리 머리큰 왕자님.

덕구야.

아빠 오늘도 널 기다리다 잠이 들었는데,

엄마꿈에 나오는 거 오늘은 양보할테니까 오늘도 한번 더 아빠꿈에 다녀가줄래.?

엄마가 저녁에 군만두 구워서 추모함 축구공 옆에 올려놨거든.?노릇하게 잘 구워졌어. 놀다 지치면 한입먹고 푹 자고 가.

이번 주말에 소고기 구워줄테니까, 나오자 아빠꿈에.

사랑해 아들.




복구야, 복구도 힘들지..?

엄마가,아빠가 약한모습 보여서 미안.

덕구는 잘 있을거야. 언제 너에게 말을 걸어올 지 모르니 그 땐 꼭 말해줄래.?

짖어도 좋고 하울링을 해도 좋아. 미친듯이 무언갈 물고 늘어져도 혼내지 않을게.

우리는 덕구랑 같이 있어. 항상 넷이야. 다만 마법으로 변한 동생이 멀리 여행을 다니느라 본체만 스톤으로 변신시켜서 놓고 간거야. 그러니까 외로워말고, 힘들어하지도 마.

아빠,엄마,복구,덕구. 우리 넷은 언제나, 영원히 함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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