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5. 가짜 위안

살아있는 모든 게 너를 가리켜

by 김먼지


두 마리 이상의 반려동물을 함께 키우는 견주들은 한번은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먼저 떠나보낸 반려동물을 슬퍼하다가, 남겨진 반려동물마저 먼저 떠난 동물을 그리워하다가 앓다가, 얼마 살지 못하고 먼저 떠난 아이를 뒤따라간다는 말을.

그 말이 너무 무서웠다.




떠돌이 개가 사라진 다음날, 공원에 나와 산책을 하던 오젇, 그렇게 덕구가 없는 일상을 견디기 위한 생각에 잠긴 사이, 우리 앞을 지나간 커플이 전단지를 전봇대마다 붙이고 있었다.

"어?저 전단지 속 개 어제 그 개같은데?"

사진을 들여다보니 어제 저녁의 그 노란 개와 닮아있다.

조심스레 그들에게 어제 개의 향방을 일러주고 돌아와서도 마음이 이상하게 불편했다.


"덕구가 저 개 주인 찾아주라고 나온건가 꿈에..?"

괜히 더 신경이 쓰였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차라리 덕구가 죽은 것이, 생사도 모르는 실종보다는 나을지도 모른다 생각하는 나의 위안은 너무도 가식적이다.

건강할 때 세상을 떠나서,

자기가 죽을줄도 모른채로 도로위에서 차를 겁내지 않다 죽어서

이런저런 추억을 영상으로 사진으로 조금이라도 남겨놓아서

죽기 전날까지도 산책을 해줄 수 있어서.

다행이라며.


더 큰 도로에 뛰어들었다면,

영원히 찾지 못할 곳으로 사라져버렸다면,

대형 화물차에 치여 흔적이 보지도 못할만큼 처참했다면,

생명은 붙어있지만 평생을 다리를 못 움직여서 좋아하는 산책도 할 수 없었다면.

괜히 세상의 모든 불행을 덕지덕지 붙여놓고 덕구가 그걸 만나지 않고 가서 다행이야, 라며 억지로 위안하는 내 어깨가 들썩인다. 그런 내 울음에는 아랑곳없이 남편은 남겨진 강아지 복구를 항상 예의주시한다.


덕구를 홀로 보낸 마음은 너무 미안하지만, 그 와중에 이 슬픔을 조금은 나눠 견딜 복구와 남편, 그리고 가족들과 친구들이 있다는 사실에 감히 안도했다.


"어구 우리애기 인제 아빠 병원 근처가서 공원산책 하까?"

산책가방을 들면 귀가 쫑긋 서서 덕구와 함께 소리를 지르고 앞발를 들어버리던 복구.

이제는 그냥 얌전하게 말없이 따라나선다. 다행히 몸 기지개를 켜고 함께 나서주니 마음이 조금 놓인다.

복구가 눈치보지않고 밥을 먹어서 살이 오르고, 덕구와 6년간 살면서 덕구에게 빼앗겨 누리지 못하던 걸 하나둘씩 다시 찾아가는 듯 보인다.

"살이 1키로 쪘네요."

웃으며 우리에게 복구가 정말 얼굴이 좋아졌다는 사람들에게 같이 웃으며 다행이라고.


그렇게 가짜위안을 핑계삼아, 일상 속에서 덕구의 부재를 다행이라 생각하는 나는 도대체 뭐하는 인간일까.

덕구가 없는데,

덕구가 주던 따스한 온기가, 젖은 털 냄새가, 그 그윽한 눈빛이 나를 바라봐줄 수 없는데.

내 생은 마치 덕구가 있을 때와 없을 때로 나뉜 것처럼

지금 개 한마리 집에 없을 뿐인 이 집안이 너무 고요하고 허전하다.

사실은 세마리가 누워있으면서 네마리가 언제나 함께라고 억지로 가스라이팅하고 있는 우리가 마치 연극배우같다.


우리의 그 연극을 얼굴도 이름도 모르던 떠돌이 개가,

막을 내리게 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덕구의 부재를 다시금 철저하게 깨닫고 울어버렸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 걸어갔다.

초록불이 들어왔어.

갈 길을 가야만 해. 라는 생각으로만 가득찬 머리를 들고.





사고가 난 이후, 남편의 깨진 손톱과 얼굴 때문에 외과와 성형외과를 2주동안 밥먹듯 드나들었다.

깊어보이지 않던 얼굴의 상처가 근육층까지 손상되어 수술은 불가피했다.

녀석이 남기고 간 처음이자 마지막 입질.

흉터가 평생 남더라도 그것 또한 남편의 훈장이라며. 잊고 싶지 않아하는 그를 보며, 덕구의 존재감이 얼마나 큰지를 알았다.


집에 돌아와서도 복구의 산책을 일부러 더 해줬다. 행여 이것조차 떠난 덕구가 보면 질투할까. 마음이 무겁고 속상했다. 왜 덕구가 살아있는 동안 더 많이 해주지 못했을까. 나란 인간이 덕구의 엄마였던 게 너무 한심하고 무능해보였다. 이런 하찮고 죄많은 인간의 목숨을 가져가고 덕구를 다시 살려준다면 기꺼이 지옥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덕구의 엄마기도 하지만 먼저 우리 가족이 된 복구의 엄마이기도 하니까. 복구가 있는 앞에선 울지 않았다.


"나 복구까지 보내면... 일어나지 못할 것 같아. 덕구 생각나면 울어도 되는데 복구한테는 일상이 흔들리지 않게 해주자."

남편은 내가 힘든 걸 알지만 남아있는 복구를 위해서도 신경써줄 것을 당부했다.

"언제까지 그렇게 울거야!? 노랭이 혼자잖아. 걔도 그러다 보내면 너 그땐 어떻게 살려고 그래! 정신차려! 니 눈치보느라 히상이도 노랭이도 힘들거 아니야..적당히 울어. 그렇게 슬퍼하면 떠난 강아지도 좋은 데 못가..."

개한테 어린 시절 두번이나 물려서 개를 만지지도 못하는 친정엄마마저 남아있는 아이를 걱정했다. 떠난 아이의 눈빛이 너무 사랑스럽지만 떠난 녀석은 보내줘야 맞는거라며. (엄마는 나와 반대인 T인 것 같다.)

그렇게 억지로 마음을 다잡고 나면 내가 할 일들과 해야 할 생각들이 뇌안을 가득 채운다.

당장 설거지하고 애들 밥부터 해야지.






"추모함이 빨리 와야하는데, 그래야 우리 애기 새로운 방을 예쁘게 꾸며줄텐데."


덕구의 유골로 만든 스톤


덕구를 닮아 푸르고 얼기설기 덩치 큰 이 돌들을 보고 있자니

스톤마저 덕구스럽다는 남편의 말에 웃음이 신기하게도 지어진다.


화장하고 나온 유골을 보고는 따라죽고 싶던 내가, 너무도 뻔뻔하게 스톤을 보며 덕구를 추억하고 웃음도 짓는다. 이런 엄마가 스스로를 죽이고싶고 아이를 만질 수 없는 세상으로 흘러간 시간을 또 멈추고 되돌릴 수만 있다면 내 수명쯤은 가져가도 된다고 생각하다가도 복구와 남편을 보며 정신을 차리곤 한다.

앞으로도 하루에 몇번을, 정신나간 사람처럼 웃다가 울다가를 반복하겠지.

이 모든 것 자체가 너로 인해 얻는 것이라면, 나는 그래 너의 죽음까지도 사랑하지 않으면 안되겠구나.




너를 엄마만큼, 어쩌면 엄마보다 더 많이 사랑한 아빠 얼굴이,

그리고 너의 그 엄청난 빈자리를 혼자서 열심히 메우려 이리 저리 뛰어다니는 너의 형 복구의 숨소리가 ,

엄마에게 살아있어야 할 명분을 줘.

우리 덕구 추모함 빨리 받아서 꾸며줄게.

그러니 원없이 달려나가다가 피곤하면 언제든지 와, 잠시 들어와 쉬다가렴.

"그리고 덕구 이놈아. 적당히 놀고 들어와라. 형 심심하니까 꿈에도 좀 나오고."





"딸랑."

유리병 안 스톤이 딸랑거린다. 아마 내 움직임에 의해 가방안에서 소리가 난 걸테지만, 한번밖에 안 난 그 소리를 덕구의 대답처럼 여겨져 울컥했다.


평소에 5천보만 걷는 내가 만보를 넘기고도 복구를 데리고 집에서 나오는 길.

그 길들을 하염없이 걸을 때 흐르는 눈물이 주최할 수 없이 내 목을 적시고 티셔츠를 적셨다. 덕구의 진상산책에 끌려다니며 늘 져주던 복구가, 이제 덕구 없이 여유롭게 냄새를 맡는 모습이 평화롭다는 사실을 알았다.

덕구한테 뺏길까 봐 간식을 허겁지겁먹다가 사래걸려 늘 토하던 복구가 이제 혼자 편하게 간식을 여기저기 흘리고 다니며 남겨뒀다 먹기를 반복하는 모습.

덕구가 죽고나서 눈에 띄는 복구의 편해진 모습들. 그 자연스러운 복구의 모습이, 덕구를 사무치게 한다.


언제나 킁킁거리며 냄새를 찾아다니고, 자유로운 배변 후에는 힘찬 뒷발차기로 내 운동화와 옷을 엉망으로 만들던 두 녀석의 콜라보를 이젠 다시 볼 수 없다.

그 무게감 넘치던 덕구의 부재가 다시금 심장을 찢는 것만 같다.

공원에 나왔다가 덕구와 셋이 늘 다니던 소나무숲길에서 울음이 터졌다.


더는 걸을 수가 없을 것 같아 붕대를 교체하고 잠든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남편은 적잖이 놀라다가

"어디야..?데리러갈게."

"아아.. 아니야 복구가 자꾸 눈치없이 어디로 막 가.. 나 우는데도 막 막 가...여기 덕구가 도자공원에서 제일 좋아하던 덴데..나 걸을 수가 없는데.. 복구가 자꾸만 가.."




야속하게 아무일 없다는듯 산책하는 너.

그리고 우리를 어디선가 지켜볼지 아닐지,

고양이별인지 이 동네 저 동네 야산인지 너의 호기심탐사에 바빠 도무지 요새 꿈에도 안 나와주는 니 동생.

둘다 진짜 꼴통이구나.

어휴 정말 못말려 둘다.

그래도 사랑해 큰아들.




일부러 중앙광장 분수대에서 아이들이 물놀이 하는 곳을 지나왔다.

평소라면 복구덕구 투샷에 덩치 큰 막내때문에 으레 아이엄마들이 견제를 하며 자기 아이를 안거나 뒤로 빼기 바쁜데 이제 그 큰 덩치가 없이 복구만 데리고 다니니 아무도 겁을 내지 않는 듯 하다.




"나 덕구한테 꽤 많이 의지하고 있던 게, 여보랑 복구만 있을 때는 뭔가 불안해. 덕구가 있을 땐 도둑이 들어도 함부로 집 안에 못들어올 것 같았거든. 그만큼 우리 덕구, 막내였지만 진짜 든든했나 봐."

남편이 안쓰러운 얼굴로 이야기한다.

쓴 웃음을 지으며 담배를 물어 불을 붙이는 남편의 얼굴에 남은 흉터는 이제 특급훈장이라며 성형수술도 하지 않는다는데, 나는 왜 이게 안심이 되는건지.

사실 남편도 어디 가서 약해 보이는 비주얼은 아니었는데, 거기에 덕구가 함께 했던 우리 넷은 가히 천하무적도 무섭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덕구의 육신은 하늘로 올라갔겠지만, 덕구 목걸이를 챙겨와 가방에 넣어 같이 다니니 몸은 여기 없어도 같이 있는거라고 생각해도 될까? 그런 가짜위안으로라도 덕구가 옆에 있다고 믿고 싶다.





니네 형은 솜주먹이라 니가 맞고도 하나도 안 아팠지?욘석아.

니 두꺼운 펀치에 니네 형은 맨날 맥없이 발라당 뒤집어졌잖아. 꿈에 형 만나면 그러지 마. 앞발로 툭툭. 잘하고 있다고 꼭 응원해줘.

덕구야, 니가 없는 집 안은 어딘가 많이 허전해. 앞으로도 쭉 그럴 것 같아. 너의 털냄새, 땀냄새, 너의 그 목청큰 하울링과 베란다유리문과 중문을 긁긁하던 소리, 물그릇 코로 떨궈서 땡그렁 거리며 물달라고 시위하던 니 모습이 이제 사진과 영상으로밖에 볼 수 없다는 게 너무 아프고 서럽다.


그런데 이 모습들 엄마아빠가 평생 잊지 않고 가져갈 수 있는 추억을 담을 수 있어서, 한편으로 너에게 너무 감사해. 시간이 지나면 너의 죽음에 눈물 흘리기보다, 너와 함께 한 이 추억을 영원히 나누면서 살 수 있을거라고, 그렇게 위안을 해볼게. 오늘도 사랑해 아들.

덕구의 자리를 빈자리로 남기고 싶지 않아, 작은 촛불과 산책하며 만난 꽃과 강아지풀을 챙겨 사진과 함께 놓아본다.

"복구야 (울컥)..인제 맘대로 냄새 맡으러 갈래.?여기 안와본 데도 가고.?덕구가 고양이 탐사 떠나서 복구가 산책 신나게 하네?"

복구가 산책을 나오기 전에 자꾸 덕구가 생전에 잘 걸고 다녔던 꽃목걸이 냄새를 자꾸 맡는다. 스톤이 든 유리병을 놓아둔 방석에는 덕구를 위해 놓은 간식(사실은 덕구자리에 놓고, 늘 뺏기던 복구가 뺏어먹는지 보려고 했던)을 먹다가 자꾸 덕구의 냄새를 찾는 게 마음이 찢어져서 덕구가 없다는 사실이 떠오를 때마다 하염없이 밖으로 뛰쳐나왔다.

"이제 네 발달린 동물로는 너 혼자 씩씩하게 걸어가야 해 복구야."

아빠 병원가는 날이면 어김없이 병원 건너편의 공원에서 1시간을 직진남이 되어 걸어가는 김복구.




친구들과 동생부부는 부지런히 돌아가면서 나와 남편을 위로하러 가게로 집으로 와주었다.

밥을 못 먹고 있을거란 확신으로 갑자기 저녁에 고기를 사주겠다며 찾아온 친구들과 억지로 술자리를 가졌고, 남편이 손을 다쳐 일이 더디자 일을 도우러 친구부부가 와서 며칠을 지내주었다. 지나는 길에 들렀다는 동기는 빵과 커피를 전해주며 손을 꼭 잡고 힘내라는 말과 함께 떠났다.

생전 덕구의 모습을 사진과 영상으로 넘겨보며 웃다가 울다가 거실에 놓인 덕구가 가지고 놀던 공을 보자마자 울컥했다.

우리 막내가 가장 좋아한 공은 연두색 테니스공. 삑삑 소리가 나면 신이 나서 집 안에서도 50번은 던져줘야 할만큼 날아다니곤 했다.

그 다음으로 좋아한 공은 빨간 미니축구공. 재작년 어린이날에 사준 그 공에는 천개가 될까말까 한 덕구의 송곳니 흔적이 있다. 아직까지도 바람이 빠지지 않은 건강한 공이라니.

그리고 세번째 공은 집 뒤 야구장으로 산책을 나가기만 하면 미친듯이 탐지견처럼 찾아서 기가 막히게 하나씩 물고 집까지 가져오던 연습용 야구공들.(덕구는 항상 야구공을 물고 집으로 온 후에는 테니스공에 꽂혀서 야구공은 물지 않았다)

늘 입에 무는 건 테니스공 야구공 축구공 뿐이던 김덕구

그 공들이 자신이 덕구의 흔적을 제일 많이 가지고 있다며 연신 울어대는 듯 했다.

그대로 방바닥에 엎드려져 울었다.

덕구가 남긴 흔적에. 복구가 뛰면 덕구도 펄쩍 뛰어 같이 놀던 그 순간들이 떠올라 북받치는 슬픔을 어쩔 길이 없어서. 눈물은 흘려도 흘려도 끝도 없이 내 눈에서 터져 나온다.

"덕구 공이 왜 이렇게 많지...?여보 나 주말에 한 게 애들하고 공원 돌아다니고 와서 거실에 널부러진 게 다여서, 그래서 뭘 해야 할지를 모르겠어서 미칠 것 같아."

다가오는 다음 주말에 볼 시험공부도 해야하는데. 여기 공들이, 이 멈춘 공들이 여기저기 덕구가 떠난 걸 실감시켜주니까 힘없이 무너졌다.


아침까지 점심까지 잘 견뎠다. 그리고 조용한 밤.

이제 조금 아문 것 같지만 여전히.

나는 덕구가 너무 보고 싶다.

쿰쿰한 녀석의 살짝 습한 발냄새도,

만족한 산책 후에 배를 벌렁 내놓고 옆으로 누워자던 배.

아기 때부터 사람손길을 받는걸 너무 싫어하던 성질빼기 지랄같던 흑시바가, 다섯살이 넘으면서 사람이 만져도 가만히 있어주었다.



복구를 씻겨야 하는데 욕실에 아직 남아있는 군데군데 덕구의 검정 털들을 보며 엄두가 나지않는다.

내일 씻기기로 하고, 오늘도 꿈속에 덕구를 기다리며 잠을 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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