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나 고양이같은 애완동물은 말 그대로 인간의 즐거움을 위한 장난감 정도이지 않나?' 쯤으로 느끼는 사람들에게는 뭔 소리냐 싶은 이야기.
그러나 내가 키운 개가 '애완'이 아닌 "반려"일 때를 느낄 수 있는. 온전히 교감이 가능한 사람이라면 안다.
그 동물이 주는 말도 안되는 사랑과 위대한 온기를.
현실 속에 부딪히는 수많은 사람들 중 사람에게 받은 상처를 동물을 통해 위안받아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사람보다 동물이 더 귀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서비스직에 오래 몸담았던 나는 수없이 겪은 [사람]에 의한 상처(거짓말과 시기심들로 얼룩진 인간답지 못한 모습들)를 구구와 살며 치유받았다. 동물이 전해주는 거짓없는"따뜻함"으로. 동물의 그 순수함과 따뜻함, 말이 아닌 행동과 눈빛으로 보여주는 사랑 자체를 사람의 그것보다 한 차원 높게 여기며 살아왔던 게 사실이다. 말을 할 수 없지만 그렇기 때문에 서로에게 더 집중하고, 때로는 나의 상담사가, 때로는 함께 놀아줄 친구가, 남편이 없는 무서운 밤에는 나만의 보디가드가 되어주던 든든한 막내.
묵묵히 내 손끝에 내 눈끝에 언제나 동그랗고 까만 눈을 부라리며 돌아다니는 검둥이. 무섭게 짖어대도 그 어느 하나 위협적이지 못해 동네 고양이들한테도 두들겨 맞던 우리집 덕구.
나에게 그런 맑은 영혼으로 다가와준 덕구가,
장마로 축축한 날들 속 흰구름이 파란 하늘에 떠다니는날,
딱 그 하루만을 골라서 우리를 떠났다.
가게앞의 4차도로로 목줄을 코로 넣고 빼버린 아이는 너무도 빠르게 뛰어나갔고, 2주전 시골집 지붕위를 뛰어다닐때처럼 해맑은 얼굴로 도로를 지나 야산에 올라가다가 내가 부르는 이름에 해맑게 돌아오려 했다.
원래는 늘 도망치는 덕구를 끝까지 따라가 창고에 빌라들 사이를 달리는 날엔 온 힘이 다 빠진다. 야산앞에 바스락거리는 녀석을 포위해 잡을 때마다 묘한 희열과 짜증이 밀려왔다.
"하 나 이 새끼 진짜 왜 이렇게 빠른거야.!"
1살 미만부터 묘하게 헐거워지거나 입질을 해 목줄 박음질이 가늘어져 목줄이 풀리면 스케일 큰 술래잡기를 하듯이 덕구는 그 목줄없는 순간을 너무도 행복하게 뛰어다녔다.
우리의 애가 타다 못해 재로 변하는 것도 모른채.
사람이 죽기 전에 안 하던 행동을 한다던데,
우리 덕구도 그랬었던 것 같다.
안 맡던 화장실냄새를 맡으러 욕실을 들어오고, 새벽까지 간식을 무한으로 먹어대거나, 시골집에서는 지붕위로 올라가 뛰어내리기까지(이 날이 사실 덕구가 죽는 날이 아니었을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멀쩡해서 의아했던 날)했던 녀석. 다른 강아지에게 늘 목청 높여 짖는 게 특기인데도 죽기 며칠 전에는 공원에서 어떤 개를 만나도 짖지 않았다.
구구와 산책을 나가던 그 즈음에는 대형트럭에도 치일 뻔했었고, 논길 옆에 똥을 싸고 신난 덕구의 뒷처리를 하는 도중 셋다 후진하는 모닝에 논두렁으로 떨어질 뻔도 했다.(대형차였다면 꼼짝없이 죽었을거다)
어쩌면 덕구는, 더 빨리 죽을 운명이었는데 일부러 시간을 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우리가 너무 슬퍼할까봐, 부디 자기가 떠난 뒤에도 조금은 빨리 일상으로 돌아가길 바래서, 그래서 기이한 행동들을 많이 보여주고 갔는지도 모르겠다.
지붕에서 뛰어내릴 때 긁힌 턱 및 상처. 반려견놀이터에서 미끄럼틀 밑으로 땅을 파고 들어가 기어이 몸이 끼어버린 사고뭉치.
"여보 어쩌면..덕구, 덕구는 우리가 싫었던 게 아닐까."
"그게 뭔 소리야..왜 그런 소릴 해."
"그냥.. 인간들 사이에서 목줄에 매여서 가게에 출근해서 날마다 똑같은 일상을 살았잖아. 얘는 하루종일 야산을 뛰고 동네 고양이랑만 놀고 싶은데, 우리가 얘를 데려와서 기껏 시켜줘봐야 두시간도 안된 산책, 고기는 오래 못산다고 조금만 주고, 수컷은 싸움이 본능인데 맨날 못하게 안아버리고, 만지는 것도 싫은데 사람하고 같이 살게 하고, 마음에 안드는 형에게도 양보하면서 살라고 해서.. 그래서 그 모든 걸 버리고 간 게 아닐까,하고 생각해봤어."
나중에 다시 만나면 그대로 안아주고 목줄 한번도 안차고 천국을 뛰어다니느라 내꿈에 나와주지도 않던 그 녀석을 추억하기위해 새벽 3시에도 녀석의 기억이 희미해지는 게 두려워 글을 마구 적어두었다.
늘 나를 따라다니는 무거운 죄책감은 일상을 잿빛으로 만들어가고 있었다.
"에이. 우리랑 살아서 행복했을텐데, 왜 자꾸 그런 삐딱한 말만 해.?"
"그냥.. 복구는 파양된 다음 우리한테 와서 전 주인을 잊고 우리한테 마음 열어주고 목줄이 행여 빠져도 아빠 껌딱지라 멀리 가지도 못하고 맴맴 돌잖아. 덕구는 그런 적이 없어. 목줄없이 달릴 때가 제일 행복해보였어. 그래서 공원 축구 다닌 뒤로부터는 싸움도 잘 안하고 침대에서 곯아 떨어지고 그랬잖아.
"그건 그랬지... 그래도. 덕구 우리 아들이야. 우리랑 살아서 안 행복했을 리가 없어."
내가 목줄을 무리하게 당기지만 않았다면
아이와 그냥 평소처럼 조금만 일을 미루고 산책을 해주었다면
밀린 수금에 연연해서 돈돈거리느라
밀려든 작업에 집중한다고
그 사랑스러운 아이를 억지로 가게 안으로 들어오게 하려고 하지만 않았더라면
덕구는 우리를 떠나서라도 행복하게 조금 더 오래 살았을 것만 같다.
살아있는 나 자신이 너무 원망스럽고
덕구가 없는 거실이 너무 춥다.
그리고 덕구의 빈자리를 못느끼고 잠들고 여지없이 산책을 신나게 하는 복구가 너무 야속했다.
뺑소니차에 치인 덕구가 숨을 헐떡거리다가 남편의 품에서 병원에서 마지막 심폐소생술을 받다가 숨을 거두었을 때,
처음에는 선생님이 주사를 좀 놓겠다고 해서 다시 일어날 거라 생각해서 응원을 힘차게 했다.
드라마에서 보면 혼수상태인 주인공이 사랑하는 가족이나 연인의 목소리에 견디기도 하잖아.
그런 기적은 우리에게 일어나지 않았다.
그 다음은 일사천리.
덕구의 죽음을 확인했고, 아니 얘는 그냥 자는거야 조금 있으면 일어난다는 확신에 차있다가 까맣게 풀린 눈을 보며 몇번이나 자지러졌다.
빈집에 우리 셋만 들어왔다는 걸 알았을 때
나는 그때에도 덕구의 죽음을 인정할 수가 없었다.
끝까지 사고치고가네
빨리 가서 목줄없이 날아다니고 싶었냐..
나쁜놈. 이렇게 많은 사람들 사랑을 받고 그냥 가버리다니..
그런데 이 녀석을 억지로 미워하는 일은 늘 실패다.
오죽하면 아빨 물었을까.
얼마나 살고싶었을까.
그럴 때마다 가슴을 짓누르는 죄책감에 숨이 멎어버리고 싶었다.
꿈을 꾸다가 복구의 목줄이 빠지는 장면에 놀라 벌떡 깨어 잠자는 복구를 봤다.
어제는 산책을 오래해서 피곤한 기색의 복구가 또 덕구생각에 눈물짓는 나를 보면 눈치챌까, 늘 덕구가 온 뒤로 눈치만 보고 산 녀석인데 하며, 조용히 욕실 세면대 물을 제일 세게 틀어놓고 울었다.
가게에 출근한 채 일을 미뤄두고 급한 남편 얼굴을 꿰매러 병원에 가기 전에도, 덕구를 병원으로 데려가던 그 차안에서 그동안 돈아낀다고, 애 살찐다고 조금씩만 줘서 넉넉히 남은 간식봉지들을 보며 끌어안고 한참을 또 울었다. 나 자신이 너무 한심하고, 못된 엄마같아서.
출근은 4일째부터 정상적으로 하고, 남편의 얼굴 상처가 생각보다 심해서 수술을 해야 한다기에 항생제를 먹이며 병원도 주기적으로 갔다.
"잠깐 차키 좀. 나 이거 간식 택배온 거 차에 두고 올게요."
덕구가 가장 좋아하던 꼬치꼬치간식. 언제나 간식에 진심인 녀석.
차 안. 내 울음소리를 듣는 이도 없고, 나의 눈물에 맘아프고 눈치볼 남편과 복구도 없다.
밀려오는 설움과 이름모를 감정들이 사납게 휘몰아쳐 나 자신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이 꼬치꼬치 니가 그렇게 좋아하던거....엄마가 맨날 살찐다고 반만 주고..너무 미안해.... 엄마가 많이 미안해....이 간식 여기 이렇게 많은데... 덕구 어딨어... 덕구야 간식먹으러 돌아와......"
신나게 고양이별 탐사를 갔을지 모르는 덕구지만, 그런 덕구가 옆에 없어서 미안하고 속상한 마음을 남편과 복구앞에서는 보일 수가 없어 차안에 숨어 우는 걸, 남편이 낌새를 알아차리고 간식 넣어놓고 온다던 나를 찾아 차 문을 열고 나를 안아준다.
남편이 있어 다행인 하루였다.
"아니야... 여보 할만큼 한거야.. 덕구 복구 살찔까봐 조금씩 준거 내가 알아..울지마 복구 또 눈치본다....나 이제 병원 가야 해. 같이 가서 복구 공원산책 해주고 기다려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