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분은 족히 병원이 무너질 만큼 소리를 지르며 울었다. 그 동안도 굳어가는 덕구 입에서 피가 조금씩 새어나오며 혀가 길게 빠져나오고 있었다.
"아이 모습 예쁘게, 안아서 가실 수 있게 안에서 닦아서 좀 데리고 나올게요.. 뒷쪽으로 차 문 열어서 이렇게 해주세요."
"...선생님 죄송해요....다른 예약손님 다 있는데 민폐끼쳐서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원장님의 빨갛게 젖어드는 눈시울에 나는 감사했다.
이 아이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마취제와 산소호흡기로 생명을 붙들어매주려 해주심에, 늘 덕구야-하시며 그 심한 시바 엄살도 오구오구 받아줘가며 깎아주던 발톱 때문일까.
"아이한테 많이 사랑한다고 인사해주세요.. 저희는 아이 피묻은 것 좀 닦아주고....태워가실 수 있게 준비해드릴게요... 장례.. 어떻게 하시겠어요. 어디 알아놓으신 데 없으시면 도움되실만한 곳 알려드릴게요."
마스크 위로 보이는 원장님의 젖은 속눈썹이 말해주고 있었다. 청진기를 빼며 울컥하는 원장님도 천방지축 덕구의 처진 몸, 너무 조용한 덕구의 처음 보는 모습에 많이, 그리고 진심으로 슬프다는걸.
"네네. 기다리시는 분들 많았는데 저희가 민폐 끼쳐서 죄송해요...죄송합니다...."
"흑.. 흑....죄송해요 저희 빨리 나가야 하는데....진료실이 너무 더러워서 다른 환자들 어떡해요....."
피투성이 처치실을 닦으러 온 간호사 선생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녜요 아녜요 신경쓰지마세요 저희 괜찮아요."
간호사 선생님도 마스크 너머로 울고 있는 게 보였고, 우리는 최대한 빨리 병원에서 가게로, 덕구를 차에 태워 돌아왔다.
원장님도 간호사선생님도 덕구와 이별할 시간을 충분히 주시려 노력하는 모습이, 너무 죄송하면서 감사했다.
강아지는 사람과 다르게 죽을 때 눈을 감지 못한다고 한다. 보통 모든 동물들은 무지개다리를 건널 때 눈을 뜨고 건넌다는 걸 동물병원 원장님 덕분에 알았다.
죽음에 가까워질 수록 눈꺼풀 및 신경의 기능조절이 되지 않아 눈을 감기 전 세상을 떠난다고.
눈을 너무 감겨주고 싶었는데(사람은 한이 맺히면 눈을 못감고 죽는다고 해서 개도 그런건줄 알았는데 자연스러운 거라고 해서) 그냥 두었다. 우리 아가 조금 더 세상 보고 갔으면 해서.
"여보... 아직도 우리 덕구 따뜻한데. 어? 어떡해.? 어떻게 보내... 아 나는 .. 나는.....아 덕구야...!덕구야...
덕구야. 엄마가 정말 우리 아가 너무 사랑해. 사랑해 덕구야... 아 안돼 덕구 이렇게 .... 아 덕구야......!"
남편은 절규하는 내 머리를 자신에게 기댄 채 흐르는 피와 눈물을 같이 닦고 있었다.
"아, 여보 어떡해 여보 피가 안멈춰....허어.. 어떡해....여보어떡해... 덕구는... 아...!"
남편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휴지로 물린 자국을 틀어막고 숨죽이며 울었다.
막내놈이 끝까지 덕구스럽다며 애써 나를 진정시키려 웃긴 말을 해주던 남편과 함께, 초대형 배변패드에 싸인 덕구를 데리고 비틀대며 가게로 왔다.
자는 것처럼 누운 내 아가. 남편의 가게에서 장례식장 가기전 마지막 인사를 보내기로 했다.
"복구한테 보여줘. 덕구 소식 복구도 알아야지...."
슬퍼하며 다가올 줄 알았던 복구는, 냄새를 한번 맡더니 휑 하고 가서 다시는 옆에 오지 않았다.
그 모습이 너무 매정해서 나는 괜히 복구한테 소리를 지르며 울었다.
"니 동생이잖아!! 덕구 니 동생인데 왜! 왜 인사 안해줘.... 덕구 잘가라고 인사 왜 안해줘 복구야....!"
서러움이 복받쳤다. 왜 우리 덕구가 이런 일을 당해야 했는지, 아까 그 카니발 차를 잡아서 왜 속도를 그렇게 빨리 냈는지 물어보고 따지고 욕이라도 하고싶었다.
그런데 목줄을 뺀 건 덕구 자신이고, 뛰어든 것도 덕구, 그걸 관리 못 한 내가 제일 문제였기 때문에 더이상 차주에 대한 원망은 깊어지지 않았다.
"덕구.. 집에 데려가서 하루 재우면 안돼...?내일 장례 치러주면 안돼? 우리 덕구 집에 갔다가 보내주고 싶은데..."
남편은 나의 그 애원은 단호히 거절했다. 내가 덕구를 데리고 집에 가면 그 뒤를 감당할 자신이 없다며. (그는 내가 덕구와 집에 있는동안 덕구를 집에서 안 내보낼 거라는걸, 어쩌면 덕구 뒤를 따라갈 수도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힘들어도, 덕구 잘 보내줘야해. 우리 덕구 더운 여름에 너무 힘들어지기 전에, 몸 더 상하기 전에, 예쁠 때 하늘나라 보내줘야 거기서 자유롭게 뛰어놀지.."
덕구가 제일 좋아하던, 목줄없이 뛰놀면서 축구하던 자전거공원 반려견놀이터에서.
불법업체에서는 화장 후 아이 유골을 데려가지 못한다는 이야길 어디서 주워들었다. 반려동물 장례업체를 열심히 뒤졌다. 장례식장을 일부러 더 빨리 잡으려 했다. 뭔가 후다닥 빨리 진행해버리고 나면, 나는 모자란 인간이니 시간이 지나면 좀 덜 힘들지 않을까.
그런데 바로 자신이 없어졌다. 이 사랑스러운 아이를 보낼 자신이, 아직은 없었다.
"여보 24시 하는 데로 가자... 덕구 오늘 공원 못 갔어.... 집은 안갈테니까, 공원은 갈래. 덕구 공원에서 복구랑 마지막으로 놀고가게 해주고 싶다..."
"그래. 그러자. 여기 카시트에 덕구 태워서 자전거공원 가자. 알았어 울지마 너무 울면 눈 부어서 덕구 못봐. 얼른 정신차리고 덕구랑 복구랑 공원가자. 처제네도 공원 같이 간대."
얼마나 참고 있을까. 거의 3시간 내내 울고 있는 나에게 남편은 눈물을 애써 보이지 않으려 시뻘개진 눈을 돌리며 말했다.
"근데 여보 병원 먼저 가자."
"아니, 아니. 나 괜찮아. 덕구 먼저.. 덕구가 먼저야."
동네에 있는 포포즈장례식장으로 덕구를 보내주러 갔다. 아이를 데리고 장례 준비를 하기 전, 차에서 남편이 덕구를 안고 울고 있었다.
덕구의 사진 몇 장을 미리 받아간 업체에서, 추모실 영상으로 사진슬라이드를 보내줘서 덜 썰렁하게 보낼 수 있었다.
작년 고성으로 여행을 떠났을 때, 덕구의 모습이 너무 예뻐서 찍어두었던 사진. 이 사진을 남길 수 있어서 다행이다.
장례식장 로비에는 덕구가 너무 사랑할 것 같은 넓은 들판이 걸려있었다.
"아이구 우리아가 너무 예쁘네.!"
"덕구야!!!덕구야아!!눈 한번만 떠봐...엄마 한번만 보고가....."
병원에서 한참을 울다가 장례식장에까지 와서 몇번을 자지러졌다.
염수해주러 차에서 데려와 눕힌 그 녀석의 온기가 아직도 따뜻했다. 이미 동공이 풀린 눈이지만 늘 우리를 바라봐주던 따뜻했던 그 눈이 너무 아름다워서.
눈만 마주치면 미칠것만 같았다.
염수를 마치고 말끔한 모습으로 나왔을 때가 육신으로 있는 마지막 덕구의 몸을 만질 수 있는 순간.
우리는 하염없이 울며 아이를 쓰다듬으며 연신 사랑한다고, 다시 만나자고, 기다려달라고 외쳤다.
지금 생각해보니 추모실에 덕구가 좋아하던 걸 다 가지고 갈걸 그랬다. 썰렁하게 보낸 게 또 속이 상했지만, 장례업체에서 제공해준 슬라이드사진 덕분에 남편과 둘이, 그리고 뒤에 덕구 소식을 듣고 달려와 준 동생부부와, 친구 부부와 여럿이 함께 울며 덕구의 육신을, 그렇게 우리 아가가 외롭지 않게 태워 하늘나라로 보낼 준비를 마쳤다.
늘 목줄도, 문이 닫혀있는 것도 너무 답답해하던 덕구이기에, 답답한 관을 짜서 화장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지도사는 울먹이며 말도 잘 못하는 내 마음을 너무 잘 알겠는지, 우리가 원하는대로 장례를 천천히, 따뜻하게 진행시켜 주었다. 아이가 답답해할 수의와 관은 하지 않아 곱게 한지 위에 놓인 아이에게 국화한송이와 우리의 머리카락,복구의 털을 모아 묶은 털을 엮어 함께 태워보냈다. 길을 잃어도 우리를 원할때면 찾을 수 있도록.
그리고 유골은 우리가 집에 두고 간직할 수 있도록 스톤으로 제작해달라고 했다. 울 시간도, 아이를 쓰다듬으며 인사를 건넬 시간도, 머리카락을 모아 아이와 연결된 실에 이어줄 시간도, 다 충분히 주고 말도 천천히, 행동도 천천히 울음터진 우리에게 전혀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심하며 장례를 진행해주었다.
그 사려깊음이, 말도 안되게 위안이 되고 편안했다.
"우리 덕구가 너무 좋아한 공이 있는데, 이 빨간 공 같이 태워주실 수 없나요...?"
"해드릴 수는 있는데, 그러면 아이 유골하고 화장중에 엉켜서 너무 지저분해질거에요.. 그 공 차라리 아이 추모함에 같이 놔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조심스럽게 낮은 목소리로 덕구의 축구공을 보며 이야기해주는 지도사의 말이 일리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때 태워버렸으면 더 속상했을 것 같다.
남편은 구멍난 얼굴을 대충 부여막은 밴드를 붙인채로 우는 나를 토닥이며 일부러 다시 로비로 나를 끌고 나왔다.
덕구의 육신을 보내고 8시간을 울어제치니 남편도 동생도 친구도 친정엄마도 모두 나를 보며 그러다 산사람도 죽어나가겠다며 필사적으로 나를 웃기기 위해 무리를 했다.
"그래도 언니 덕구 지금까지 6년 살면서 다른 집 애들보다 훨씬 원없이 사랑받다가 갔어."
"주연아. 자꾸 울면 덕구가 천국에서 마음껏 못놀아......"
장례식장에 함께 해준 동생부부와 친구부부가 눈이 안보일만큼 우는 나를 진정시키려 애쓰고 있었다.
덕구가 화장되는 동안 기다리던 2시간 반이 숨이 멎을만큼 길었다.
"언니, 물이라도 좀 마셔. 그러다 진짜 언니가 죽을 것 같아."
"그럼 어때. 덕구 따라갈 수 있어.."
"이상한 소리 좀 하지마. 히상이랑 복구 생각도 좀 해. 복구 계속 눈치보잖아..."
복구는 장례식장에 온 순간부터 많이 불안해보였다. 그랬을거다. 내가 너무 자지러지게 울고, 아빠도 평소와 너무 다른 모습뿐이고, 늘 같이 있던 덕구의 냄새는 이제 없으니까.
그런 복구가 또 안쓰러워 안고 울다가, 화장이 끝나 유골을 확인하러 가서 한참을 얼마간 또 자지러지게 울었다.
그래도 덕구야
거긴 목줄없이 훠이훠이 날아다니고 있어.?
널 옭아매는 어떤 실오라기 하나도 없이
우리와의 인연도 소용없이
너무도 홀가분하게 엄마아빠 생각따위는 안날만큼
아픔없고 이별없는 세상에서
들판을 혓바닥 달랑달랑거리면서 두 귀를 쫑긋 세우면서 달려나가고 있니
엄마가 너무 미안해
너를 보내주는 마지막 인사를 기억하고 싶어서, 일부러 사진도 남겼어. 이렇게 언젠가 너를 다시 만나면 우리가 이렇게 너를 사랑했고, 슬퍼하다가, 사랑하다가, 그렇게 너를 만나러 왔다고 당당하게 말하려고.
그러니 덕구야.
그 몸 그대로 타서 그대로 하늘로 올라가주길.
그 곳에서는 너가 친하게 지내고 싶던 고양이들하고 손도 잡고 어깨동무도 하고다녀.
목줄없이, 그 어떤 제약도 없이 날개달린 천사로 뛰어가줘.
"이제 절차는 다 끝났구요, 저희가 아이 스톤 예쁘게 간직하실 수 있게 깔끔하게 만들어놓을게요. 내일 연락드리면 가지러 와주시면 될것같고..."
울음이 터져나오지만 감사합니다를 연발하며 고개를 숙여 인사를 드리고 나왔다.
강한 척 복구를 데리고 집으로 가자던 내 다리가 꺾여서 또 다시 울기를 반복.
"아.. 너무 힘들어보이시는데.. 어머니 꼭 마음 추스르시고.. 너무 마음아프실텐데 오늘, 조심히 들어가세요.."
끝까지 예의바르고 따뜻한 지도사의 표정과 인사에, 나는 맥없이 또 눈물을 흘리며 집으로 왔다.
덕구가 집에서 가장 사랑한 공간인 베란다 앞 거실에 덕구의 침대와 그간 아껴놓은 간식,장난감들을 놓고 새벽까지 울었다.
덕구가 없는 우리집이 너무 싫었다.
아니 덕구가 없다는 사실을, 장례식에서 화장까지 하고 유골까지 확인한 후에도 인정하지 못하는 내가 정신병자같았다.
죽었다,라는 말을 속으로도 생각하지 않으려 미친듯이 다른 말들을 머릿속에 끊임없이 떠올렸다. 무지개다리, 아니 아직 안 갔어 덕구는. 덕구는 일단 집 앞 산책을 미친듯이 하고 있을거고, 이제 집앞 야구장 안에 못들어가던 펜스 안으로도 들어갔을거고, 그 뒤로 넘어 도자공원을 휘젓고 다닐거야. 거기 야산도 정말 많아. 그래 덕구는, 우리가 못해주던 자유를 열심히 누리다가 갈거야. 그러니까 아직 너무 슬프지 말자.
펫로스 증후군이라고 하지만 나는 이걸 펫,애완이라는 장난감같은 아이를 잃은 슬픔으로 만들고 싶지 않다.
장난감처럼 없어지면 새로 사고 다른 걸로 대체할 수 있는 애완동물이 아니었다.
덕구는 나에게 두 아들 중 아픈 손가락, 천덕꾸러기였으니까.
그래서 컴패니멀(companimal, companion animal)로스라고 부르기로 했다.
내 삶의 일부가 떨어져 나간 것 같은 이 기분을 펫로스라고 부르고 싶지 않았다. 누구에게는 그저 흔한 펫로스일지 모르나, 나 자신만은 덕구의 죽음이 그냥 흔한 펫로스로 기억되고 싶지 않기에, 컴패니멀로스, 반려동물상실증후군으로 꿋꿋하게 부르기로 했다.
장례를 치른 다음날 우리는 출근을 하지 않고 새벽 6시에 덕구의 스톤이 나왔다는 연락을 받자마자 바로 일어나 덕구를 만나러 갔다.
덕구야
엄마랑 아빠 지금 너 만나러 가.
새벽에는 자다 깨서 꿈에 나오지 않는 널 원망도 했다가
너의 외할머니에게 전화해서
고기 간식 돈없다고 아껴서 숨겨서 조금만 준거 너무 후회된다고
니가 최근 안하던 짓을 했는데 그게 정떼려고 그런것같다고
아빠물고
지붕에서 뛰어내리고
강아지를 봐도 짖지않고
갑자기 화장실을 들어오려고 하고.
어쩌면 아빠말대로
우리와 함께여서 그나마 6년을 산 거라고
그렇게 믿어도 돼?
아침에 아빠가 많이 울었어.
니가 물어놓은 얼굴이 퉁퉁 부었는데도 아빠 눈물이 안멈춘다.
어제 새벽에 잠을 많이 못 잔것 같아.
엄만 아침 해가 뜨고 나서야 복구형이 물 마시러 일어나서 형에게 인사하고 니 사진에 뽀뽀하고 출근하려고, 일어났어.
덕구야 지금 어디야?
엄마아빠가 스톤 찾아서 집으로 가면
혹시 다시 돌아와줄 수 있을까.
조심히 스톤을 받아서 집으로 와도 덕구는 조용하다.
"아아... 너무, 너무 예쁘다 우리 덕구... 여기 있어 덕구 우리 아가 여기 있어...."
장례식장 직원이 너무 안타까워하며 국화 한송이를 사겠다는 내게 기꺼이 제일 싱싱한 국화 한송이를 뽑아서 선물로 주었다.
우리는 그렇게 덕구의 영혼이 머무를 스톤과 함께 돌아와, 집에 사흘을 꼼짝없이 머물렀다.
복구의 산책을 제외하고는, 그 무엇도 지금 우리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마음의 문을 닫았다.
꿈에 나오지 않는 덕구를 부르며, 덕구가 늘 있던 자리에 집에 있는 모든 간식과 장난감을 담아놓고, 베란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울고 또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