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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멋지기 Jun 24. 2024

친구에 대하여

영화「요노스케 이야기」평론



2001년 1월 26일 저녁, 일본 야마노테선 신오쿠보역 선로에 취객이 추락했고, 이를 목격한 두 명의 시민은 취객을 구하고자 선로로 뛰어내렸지만 결국 취객을 포함한 세 명이 전부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열차가 너무 빨리 온 것도 원인이지만 두 의인이 취객을 놔두고 각자 몸을 피했다면 충분히 피할 시간 여유가 있었음에도 취객을 포기하지 않고 열차 기관사에게 사고를 알리기 위해 자리를 지켰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의로운 일을 행한 두 명의 시민 중 한 명은 당시 일본에서 유학 생활을 이어가던 故 이수현 씨이고 다른 한 명은 사진작가라고 알려진 故 세키네 시로 씨이다. 20년이 훌쩍 지난 현재도 이수현 씨가 생전에 운영했던 홈페이지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고 고향인 부산과 일본에서 추모식이 거행된다고 한다. 반면 유족의 요청으로 인해 세키네 시로씨에 대해 알려진 바는 거의 전무하다.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요노스케 이야기」는 해당 사건을 모티브로 해 탄생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개인적으로 믿는 것은 이 이야기는 바로 세키네 시로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상기 서술했듯, 그에 대해서는 나이와 직업 정도를 제외하곤 알려진 내용이 없고 또한 유족이었던 그의 어머니도 몇 년 후 사망했기에 더욱 고인에 대해 알아볼 방법은 없다. 따라서 타인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 방식의 개인주의가 팽배한 일본에서 일면식도 없는 타인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한 이에 대한 지대한 관심과 의문은 상상에 의해서만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떤 삶을 살았기에 자신의 목숨을 남을 위해 희생할 결단을 내릴 수 있는지는 주변 인물들의 기억 속에 찍혀있는 무수히 많은 요노스케의 사진을 꺼내어 보면 그 속에 담겨있다고 믿는 것처럼.


길가에 핀 꽃향기


눈에 띄지는 않지만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을 비유할 때 흔히 공기 같다고 표현한다. 혹은 산소로 치환하기도. 식물원이나 수목원 안으로 첫 발을 떼는 순간부터 주변을 가득 채우는 특유의 향은 며칠이 지나도 코 끝에서 아른거리는 듯한 경험을 하기도 한다. 영화 속 요노스케가 바로 이런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대학 시절 요노스케와 인연을 맺었던 인물들의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그들이 가졌던 요노스케에 대한 추억을 풀어내는 방식을 영화는 택하고 있고 그중 요노스케의 첫 대학 친구 쿠라모치 잇페이가 가진 기억을 시작으로 요노스케에 대한 이야기가 풀려나온다. 입학식 때 친해진, 추후 쿠라모치와 결혼하는 아쿠츠 유이, 요노스케가 첫눈에 반한 연상의 파티걸 카타세 치하루, 같은 수업을 수강하며 친해진 카토 유스케, 카토를 통해 소개받고 추후 사랑을 나누게 되는 요사노 소코까지 영화는 다양한 서술자의 입장에서 요노스케를 그려낸다.


독특한 점은 주변 인물들이 가진 요노스케와의 추억이 강렬한 색감의 그림이 아니라는 것이다. 15년 후 어느 저녁, 저녁 식사를 함께 하기 위해 쿠라모치와 아쿠츠는 마주 앉아 있고, 그날 낮에 학교 쪽으로 걸어가다 요노스케가 떠올랐다는 아쿠츠의 말에 쿠라모치는 반가워하며 함께 그를 추억한다. 연인과 함께 술잔을 기울이는 또 다른 저녁, 카토는 불현듯 요노스케를 기억해 내고 한참을 웃으며 즐거워한다. 요노스케가 누구인지 모르고 오히려 질투를 하는 연인에게 카토는 이야기한다. ‘나만 요노스케를 안다고 생각하니 왠지 굉장히 득을 본 것 같은 기분이야’라고.


영화는 이렇듯 등장인물의 입과 얼굴 표정과 기억을 통해 각자 기억하고 있는 요노스케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처럼 각자의 현재를 살아가던 중 불현듯 그때 그 친구를 떠올리게 되고, 그를 회상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띄우는 입가의 미소는 결국 요노스케가 남긴 체취이며 길가를 걸어가다 우연히 코 끝에 맺히는 은은한 꽃향기의 그것과 많은 부분이 닿아 있다.


주인공이 될 필요는 없을지도


쿠라모치가 풀어놓은 요노스케의 모습은 순수하고 넉넉하다. 입학식 첫 대면부터 계속해 말을 거는 쿠라모치에게 싫은 소리 하나 하지 않는 모습을 보자. ‘나라면’ 상상 속의 나는 곧바로 자리를 박차고 다른 곳으로 갔을지도 모르겠다. 쿠라모치로 인해 분위기에 휩쓸려 생각지도 않은 삼바춤 동아리에 가입해도 최선을 다해 즐기는 그의 행동에는 미소가 절로 맺힌다. 게다가 쿠라모치가 계획에 없이 여자친구 아쿠츠에게 임신을 시키고 그로 인해 학교를 관둔 뒤 급하게 집을 구해야 했을 때 그에게 선뜻 돈을 보태고 이사까지 도와주는 요노스케의 마음이라니. 열심히 살 것이라 다짐하는 쿠라모치의 눈물을 참는 어깨에 요노스케의 마음과 쿠라모치의 감사하는 마음이 전부 담겨있다.


요노스케가 눈앞에 있다면 묻고 싶은 질문이 하나 있다. 사람을 착각해 일면식 없는 카토에게 말을 걸고, 잘못 알았음에도 굳이 친근하게 밥을 같이 먹자며 살갑게 군 이유가 무엇인지. 아마도 ‘그냥’이라고 답할 것 같다. 그러니 성 소수자임을 감추고 있던 카토가 더는 감추기 어려워 어렵게 털어놓았을 때 되려 자기가 챙겨온 수박을 먹는 것에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을까. ‘그게 뭐?’라는 표정으로 말이다.


카토로 인해 알게 된 부잣집 딸 요사노는 요노스케의 소탈함에 반해 적극적인 구애를 보내지만 요노스케는 시큰둥하다. 이미 첫눈에 반한 카타세가 마음속에 가득하기 때문이다. 카타세의 직업과 연상이라는 나이도 그에게는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 그저 그녀 자체를 사랑하는 순수함에 빛이 난다. 비록 어린 대학생의 철없는 사랑이라 할지라도.


그러나 요사노의 끊임없는 애정에 요노스케도 공감하게 되고 둘은 사랑을 시작한다. 요노스케에게 보여준 적극성과는 대조적으로 연인 관계에서 꽤 보수적인 가치를 고수하는 요사노이지만 요노스케는 별다른 불만을 표하지 않는다. 요사노가 원하는 관계를 이해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그녀가 가진 부에 기대어 이득을 얻으려는 세속적인 모습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 되라는 말이 흔하다. 전부 주인공이 되려는 군상이 모인 세상이라면, 그곳에서 맺는 관계에서 모두 주인공의 역할만 원한다면 그곳이야말로 혼돈의 세상이리라. 요노스케는 달랐다. 그저 자기 자신으로서 그곳에 있었고 자기의 이익만을 좇지 않았고 의도된 모습으로 자신을 꾸미지 않았지만, 15년이 지난 후에도 그의 친구들은 그를 추억하고 그린다.


할머니의 장례를 치른 후 찾아온 친구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 요노스케는 자신의 장례식에서도 친구들이 울어줄지에 대해 궁금해하고, 이 의문에 친구는 덤덤하게 답해준다. 웃어줄 것이라고. 요노스케는 모두에게 웃음을 주는 사람이니까. 15년이 지나고 친구들은 요노스케의 죽음을 알지 못하지만 그를 떠올리며 전부 웃음을 짓는다. 그 친구가 말한 것처럼.


진흙탕에서도 꽃은 핀다


영화의 배경은 크게 두 가지 시대로 나뉜다. 친구들이 요노스케를 떠올리는 현재와 요노스케가 대학에 입학한 과거로, 특히 과거는 1980년대 중·후반인 것으로 추론된다. 세키네 시로가 생존했다면 30대 중후반이 되었을 시기이기 때문에 극 중 요노스케와 세키네 시로의 나이가 일치하지는 않는다.


다른 가능성이 있음에도 요노스케 이야기의 시작을 대학 입학으로 잡은 까닭은 1980년대 일본의 상황과 영화가 개봉한 2016년의 일본과 강한 연결고리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1980년대의 일본은 유례없는 호황과 활황을 겪으며 한국의 1990년대처럼 나라 전체가 경제 발전의 혜택으로 희망과 꿈을 노래하는 시기였다.


그러나 일본의 경제 거품은 영원하지 않았고 1990년대에 접어들며 경기 침체를 겪기 시작했다. 이후 2008년 가을 미국 발(發)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한 세계 경제 위기에서 일본 역시 피해 갈 수 없었다. 따라서 2008년이라 함은 이미 1990년대에 경기 침체를 겪기 시작한 일본이 ‘잃어버린 10년’을 뒤로하고 2000년대 초반 고강도 경제 개혁을 실시해 고질적인 경제 위기에서 벗어나려고 할 때 또다시 위기가 찾아왔다는 것이고, 더해서 2011년에 발생한 동일본 지진으로 인해 일본의 경기 침체는 회복의 동력을 잃고 ‘잃어버린 20년’으로 바뀌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즉, 영화가 개봉한 2016년은 되살아나는 듯했던 일본의 경제가 다시 처참하게 꺾이고 몇 년 지나지 않은 해이고, 이 시기에 일본의 경제가 가장 활기 넘쳤던 1980년대를 배경으로 타인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희생한 사람을 모티브로 한 영화를 개봉했다는 것은, 그 인물을 해당 배경에서 갓 대학에 입학한 청년으로 그려냈다는 것은, 특히 긍정적이고 이타적이며 미래에 대한 두려움 없이 매일을 웃으며 살아가는 인물인 점을 강조했다는 것은, 찬란했던 과거가 재현되기를 희구하는 마음과 지금의 어려움을 타파하고 이겨내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이 영화를 통해 표현한 것이라고 읽어야 할 것이다. 진흙탕 속에서 피어난 연꽃을 바라는 마음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요노스케가 있기를, 되기를 바랐다


불안과 격정으로 가득 찬 10대와 20대를 보내고 나면, 적당한 직업을 구해 자기 앞가림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눈에 띄는 변화가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중 가장 피부에 와닿는 것은 인간관계이리라. 배신감에 치를 떨기도 하고 깊은 덧없음의 구렁에 빠지기도 한다. 그렇게도 애지중지했던 반대편의 누군가가 하루아침에 남이 되기도 혹은 남으로 만들기도 한다. 시대가 변했는지 과거와는 다르게 친구를 놓아야 하는 중요성에 대해 논하는 전문가의 이야기도 많이 퍼져있다. 자기 자신의 행복에 집중할 수 있다면 연인이나 친구는 굳이 필요 없다고 설파하기도 한다.


그들에게 되묻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학교를 다니는가. 나만의 행복이 중요하다면 왜 사회화 훈련이 필요하고 왜 사회에 진입하여 타인과 어울려 사는 법을 배워야 하는가. 그저 옛 성인들의 말씀을 좇으며 명상과 탐구와 고찰의 시간을 가지면 될 것을. 현재도 행복과 관련해 무수히 많은 책이 서점에서 인연을 기다리고 있으니 말이다.


영화 속 요노스케의 친구들에게 요노스케를 떠올린 순간은 잠깐일지 모른다. 해가 지고 다음날이 되면 다시 잊고 살아갈지 모른다. 그렇게도 충분히 잘 지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잠깐의 순간에 요노스케의 기억과 함께 과거에 함께했던 시간을 꺼내 향을 맡고 한 모금 덜어 음미하는 것은 해가 뜨고 현관 앞까지 찾아온 봄처럼 따스하고 행복한 순간이 된다. 그 와중에 입가에 피어오른 미소는 옆에 있는 이에게도 또한 초콜릿보다 더 달콤하다.


값으로 매길 수 없는 시간을 선사하기 때문에 나는 오늘도 요노스케의 이야기를 본다. 요노스케가 있기를 바랐고, 내가 요노스케가 되기를 바랐고, 지금 이 순간 옛 인연 누군가의 입가에 나와 같은 미소가 떠오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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