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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멋지기 Jul 30. 2024

꿈에 대하여

영화「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평론


모험, 미국

2013. 12. 31 개봉

벤 스틸러, 크리스틴 위그, 숀 펜, 셜리 맥클레인





꿈이란 무엇인가. 꿈이란 도대체 무엇이길래 마주치는 어른들마다 그렇게 꿈을 물었던 걸까. 어린아이의 꿈을 묻는 세태는 시대가 변해가는 흐름 속에서 바뀌지 않는 몇 가지 현상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꿈을 묻는 질문은 또한 어린아이에게서 끝나지 않는다. TV 프로그램에 출연한 장성한 출연자에게도 꿈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이 돌아가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고무적이면서 또한 안타까운 것은, TV 프로그램에서 묻는 꿈이 차후 어떤 사람 어떤 직업인이 되고자 하는지에 대한 형용사의 물음이라면 현실의 어린아이가 받는 꿈에 대한 질문은 미래의 직업을 골라야 하는 명사의 물음이라는 점이다. (윤태호 작가는 어느 방송에서 꿈에 대해 명사의 물음을 던질 거라면 적어도 직업을 수행하는 자세와 가치에 대해 물어야 한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꿈과 목표는 별개의 영역이다. 꿈은 되려 상상의 영역에 맞닿아 있거나 때로는 겹쳐져 있다. 다시 말해, 꿈은 명확하게 시각화할 수 없는 추상의 성질을 입고 있는 것이라고 해야겠다. 지난밤 생생했던 꿈이 다음 날 일어나는 순간부터 점차 흐려져 샤워만 하고 나와도 이미 색이 바래 서술할 수 없게 되는 것처럼. 어렴풋하게 가슴속 어딘가에 맺혀있는 이상향을 우리가 상상할 때 그 옆에 달려 있는 꿈 또한 상상의 색을 입게 된다. 따라서 꿈이라는 것은 꿈 자체로서의 본질보다 꿈을 가짐으로써, 꿈을 꿈으로써 우리의 가슴을 울리고 나아가 행동을 하게끔 만드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라고 정의해야 한다. 


혹자는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의 제목과 내용이 서로 맞지 않는 점을 지적하지만, 영화 속 주인공 월터가 상상하는 사건 자체가 그대로 발생하지 않을 뿐 그가 상상하고 꿈꾼 것으로 인해 실제 모험을 떠나게 되고 모험에서 얻은 깨달음으로 현실로 돌아와 계속해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는 점에서 영화 제목은 내용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듯 영화는 벤 스틸러가 연기한 월터라는, 지극히 평범한 현실에서 잡지사의 포토 에디터로서의 보통의 삶을 살아가는 소시민이 매일 머릿속에 펼쳐내는 상상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해,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상상으로만 생각했던 모험을 떠나게 되고 다시 현실의 삶으로 귀환하는 여정을 보여준다. 


꿈을 크게 꾸다(Dream Big)

영화 속에서 월터가 내내 상상하는 것은 관찰자의 입장에서 한 걸음 떨어져 관찰하는 어느 사건이 아니라 스스로가 주인공이 되어 겪는 일이다. 지극히 따분하고 소심한 성격으로 호감을 가진 직장 동료 셰릴에게 마음 하나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매달 책임져야 하는 가계비에 허덕이는 현실에 살지만, 상상 속에 들어간 그는 폭발하는 건물에서 셰릴의 애완견을 구출함으로써 매력을 보이던가 인격 모독을 하는 상사와 슈퍼 히어로처럼 도심 한가운데서 싸움을 벌인다던가 식으로 항상 사건의 중심에 서 있는 상상을 한다. 


단순히 주인공이 되는 상상만을 한다면, 상상을 하는 것에서 그친다면 고작 몽상가에 불과할 것이지만 이 부분은 영화 말미 용기를 가지고 뼈 있는 발언을 상사에게 논리 있게 던지는 장면과 연결되면서 월터의 성장을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또한, 영웅의 일대기를 그린 신화에서 묘사되는 때로 역경 앞에 머뭇거리는 주인공 영웅을 돕는 동료의 존재처럼, 실제 모험을 떠나야 하는 상황을 눈앞에 두고 고민을 하는 순간 셰릴이 등장해 (격려와 응원이 필요한 월터의 마음이 셰릴을 등장시켰다고 하는 것이 정확하겠다.) 용기를 북돋는 노래를 불러주는 상상을 한 끝에 머뭇대던 발걸음을 떼는데 힘을 얻는다. 


무엇보다 폐간을 앞둔 잡지사의 마지막 표지가 될 25번째 사진을 찾아 떠나는 여정은 월터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일이 비록 그 겉모습은 다르지만 더욱 뚜렷해진 질감으로 실제 월터 앞에 펼쳐지는 것으로 그려진다. 바닷속 상어와의 결투, 꾸불꾸불 길게 펼쳐진 내리막길을 스케이트보드와 손에 묶은 자갈에만 의존한 채 미끄러져 내려가는 일 (꿈을 꾼다는 것은 마치 이래야 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막힘없는 아이슬란드의 광활한 풍경을 수놓는 스케이트보드 활강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이기도 하다.), 화산 폭발을 피해 도망가는 와중 경비행기 위에 서 사진 촬영을 하는 숀을 발견하게 되는 일 등은 점차 상상에만 맺히던 주인공으로서의 꿈의 상이 월터의 실제 삶에도 비치기 시작한 것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근거라고 하겠다. 


크게 실패하고, 일곱 번 넘어지면 여덟번째에 일어서다(Fail Big, Fall Down Seven Times and Get up Eight)


월터의 현실은 실패와 좌절의 연속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아버지의 사망으로 유년 시절의 자신과 작별하고 (동네 스케이트보드 대회에서 우승한 경력이 있는 것과 당시의 패션, 어릴 때 녹음한 노래 테이프와 아버지가 선물한 여행 노트를 감안하면 아버지의 부재가 아니었다면 지금과는 다른 방향의 삶을 살았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해진다.) 가족의 뒷바라지를 위해 평범한 아르바이트를 거쳐 평범한 현재의 직장인이 된 것이 첫 번째이고, 십수 년간 몸담은 잡지사가 온라인 잡지사로 규모를 줄이면서 해고 대상이 되는 것, 돈 문제 때문에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남겨준 피아노를 처분하게 되는 것, 인터넷 만남 사이트에 등록되어 있는 셰릴에게 어렵사리 용기 내어 관심 표현을 시도하지만 제대로 되지 않는 것과 이후에도 계속해서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는 것, 사진작가 숀이 마지막 잡지의 표지로 해줄 것을 언급한 필름의 25번째 사진이 월터에게 원본 필름을 보내며 같이 선물한 지갑 속에 들어 있었지만 숀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찾지 못한 채 죽을 위기를 거쳐야 했던 것까지 현실의 인물에게 실제로 벌어진다고 가정하면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공포와 두려움이 밀려올 만큼 개별 사건은 각자의 부담감을 지닌다. 


그렇다면 질문 혹은 비판이 자연스럽게 떠오를 수 있다. 현실의 문제를 단 하나라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서 상상만 하는 월터의 행동은 잘못된 것이 아닌가. 현실에서 이루지 못할 일만을 꿈꾸는 것은 미련한 것이 아닌가. 앞서 언급했듯, 꿈은 이룰 수 있는 것을 상상해야 하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이룰 수 있는 것을 생각하는 것은 목표 설정이며 미래 계획의 영역에 있다. 햇빛을 향해 자라는 해바라기처럼 태양을 향해 날아갔던 이카로스의 날개처럼 꿈은 가장 높은 곳에 달아두고 상상의 대상으로 삼아 무한히 광활한 심상 속에서 펼침으로써 오히려 매일 걸어가야 하는 발걸음의 이정표로 삼아야 하는 것이다. (유재석 씨는 꿈을 가지지 않지만 매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에 온 힘을 다한다고 했으며 이동진 평론가는 '하루는 성실하게 인생은 되는대로'를 인생의 좌우명으로 삼는다는 점을 여러 채널에서 밝힌 바 있다.)


월터는 가입한 인터넷 만남 사이트에 또한 등록되어 있는 셰릴에게 용기를 내어 호감의 표시인 윙크를 보내려고 하지만 제대로 되지 않는다. 이유는 월터의 프로필 소개가 기입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해본 것, 가본 곳'을 공란으로 비워뒀기 때문에 윙크를 보낼 수 없다는 답을 듣게 되지만 월터는 실제로 특별한 곳을 가 본 적이 없어서 채울 수가 없었던 것. 이에 반해 셰릴이 자신의 프로필에 밝힌 이상형은 모험심 있는(Adventurous), 용감한(Brave), 창의적인(Creative) 사람이다. 월터의 상상이 전부 모험으로 채워지는 것은 어린 시절의 꿈과도 연관이 있겠지만 상상 속 월터의 모습이 셰릴이 원하는 모습인 것과 셰릴이 자주 등장하는 점을 감안하면 셰릴의 이상형과도 연관이 있다고 봐야 한다. 


이점에서, 만약 월터의 상상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그저 현실만을 바라보는 사람이었다면,  월터는 실제로 겪게 된 여정을 무사히 헤쳐나갈 수 있었을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다시 말해 관점에 따라 유치하게 보일 수도 있는 제약 없는 상상을 통해 이미 월터는 모험심 있고(Adventurous), 창의적인(Creative) 방식으로 용감하게(Brave) 세상을 살아갈 능력을 점진적으로 개발해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월터가 겪은 중요한 모험에 여러 근거를 대며 현실적이지 않다고 비판하는 것이 되려 현실만을 바라보기 때문에 스스로의 상상에 한계를 지어버린 사람들의 주장일 뿐이라고 일축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잡지사 사진 현상실의 벽에 붙은 사진 속 숀이 손짓하는 상상에서 촉발된 모험을 겪는 과정 속에서 월터는 달라진다. 아이슬란드에서의 거친 여정에서 돌아온 월터의 면전에서 해고 통지를 하는 상사에게 전문가로서의 자부심을 드러내며 부당함을 지적하는 말을 뱉는 모습은 안쓰럽지만 뿌듯하기도 하다. 셰릴의 집에 방문해 셰릴의 아들에게 선물할, 자신이 타고 활강했던 스케이트보드를 놓고 오거나 (셰릴의 전 남편이 냉장고를 고치러 온 모습에 자신감을 잃고 다시 상상으로 빠지긴 하지만) 마침내 숀을 찾아 25번째 사진의 행방을 알아내는데 성공하고 돌아오는 모습까지. 


숀과 조우한 곳이 여행금지 국가였고 이곳을 방문했다는 사실로부터 촉발된 몸싸움으로 공항에 구금된 월터는 자신을 증명해 줄 사람으로 가입되어 있는 인터넷 만남 사이트의 관리자 토드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풀려난 이후 토드와 월터의 대화에서 월터의 성장을 전적으로 보여주는 세 가지 내용을 눈여겨보자. 첫째, 월터는 여정 틈틈이 토드와의 통화에서 자신의 모험담을 알려줬고 토드는 월터의 이야기로 만남 사이트 내 월터의 프로필을 채웠는데, 그로 인해 월터가 윙크를 300개나 받았다고 알려준다. 둘째, 월터는 예전에 비해 상상을 덜하게 됐다고(lately less) 이야기한다.  셋째, 토드는 월터를 고리타분한 회사원으로 생각했으나 막상 만나보니 "인디아나 존스가 록밴드의 리드 싱어가 되기로 결정한 것 같다."고 평한다. 


꾸준함(Consistency)

숀이 마지막 잡지의 표지로 써 주길 부탁한 25번째 사진의 행방을 알아내기 위해 마침내 숀을 찾아낸 월터. 숀은 눈 덮인 히말라야산맥 깊은 곳에 앉아 카메라를 통해 무언가를 찾고 있다. 마침내 숀에게서 장난으로 사진을 선물한 지갑 안에 넣어뒀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고 월터는 허망함에 빠진다. 아이슬란드에서 현실로 복귀했을 때 어머니의 피아노를 옮긴 인부에게 팁을 줘야 했고, 그간의 모험으로 수중에 돈이 없던 월터는 얼마 남지 않은 현금을 전부 건네게 되면서 아직 감수하고 이겨내지 못한 현실의 짐으로 인한 좌절감과 홧김에 지갑을 버렸기 때문이다. 25번째 사진이 무엇이었는지 영원히 알 수 없게 된 사실의 중간에서 숀이 찾던 설표가 나타나고, 사진으로 남기는 대신 숀은 그저 바라만 본다. "어떤 순간이 마음에 들면, 카메라로 그 순간을 방해하기보다 그 안에 머문다"라고 한 뒤 사진의 정체에 대한 질문에 "유령 표범이라고 부르자"는 수수께끼 같은 말을 남긴 채 저 멀리 고원에서 축구를 하고 있는 지역 유목민에게 뛰어간다. 


히말라야에서 복귀한 월터의 손을 다시 찾게 된 버렸던 지갑은 혹시 몰라 챙겨둔 어머니의 기지. 덕분에 25번째 사진의 정체를 알게 된다. 바로 평상시 일에 집중하고 있는 월터의 모습을 숀이 찍어뒀던 사진이다. 왜 하필 월터인가. 앞서 숀이 월터 어머니와의 대화에서 월터를 표현한 말을 빌리면, "월터야말로 자신의 의도대로 사진을 실현하는 데 있어 가장 많은 노력을 하는 사람." (You were the person who worked the hardest to make sure his work was realized the way he wished.) 이기 때문에 마지막 잡지의 표지를 장식하기에는 제격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설표, 그리고 월터. 숀의 표현에 따르면 머물고 싶은 순간과 머물고 싶은 사람이 되겠다. 월터의 세계로 들어오면 그것은 월터가 꿈꾸는 상상 속 주인공이 된다. 설표를 마주한 순간에 충분히 머물렀던 숀은 설표가 사라진 후 축구를 하는 현실로 뛰어들어갔고, 회사에서 해고된 월터는 잡지사의 마지막 잡지 표지 모델로서 기록됨과 동시에 누구든 상상으로만 떠올려 볼 경험을 직접 겪어낸 현실을 가진, 이력서에 적을 내용이 풍부한 사람이 되었다. 스케이트보드 선물로 맺은 셰릴 아들과의 인연에 이어 셰릴과도 손을 잡고 걸어가는 마지막 장면을 통해 인연으로 이어졌음이 드러난다. 


꿈을 꾸는 것을 멈추지 않았던 월터. 상상 속 모험으로 떠나는 매일의 발걸음을 포기하지 않았던 월터. 결국 잡지의 마지막 호 발간 전에 책임지고 표지 사진을 가져오고야 만 월터는 마음속에 달아둔 꿈을 바라보며 계속해서 현실을 걷는다. 꿈이라는 것은 꿈을 꿈으로써 우리의 가슴을 울리고 나아가 행동을 하게끔 만드는 유일한 태양이다. 따라서 월터의 모습이 곧 우리 인간의 모습이어야 하고 그럴 수 있을 때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아름다워지면 사회도 아름다워지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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