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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멋지기 Aug 03. 2024

희망에 대하여

영화「쇼생크 탈출」평론



들어가며


그렇다. 인정하자면 태생부터 문과생이었다고 하겠다. 영어와 국어를 잘해서 문과를 택했다기보다는 수학과 과학이 너무 싫어 문과를 택했다고 해석하는 것이 옳다. 수학 포기자였고 과학 포기자였다. 그때보다 훌쩍 시간이 흐른 지금은 상황이 조금 다르다. 단순 암기보다 올바른 이해를 강조하는 전문가의 강연 영상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아졌고 접근성 또한 더할 나위 없이 좋아졌기에 이제는 수학과 과학이 참 흥미롭고 즐거운 과목이라는 것을 자주 느낀다.      


본업으로 토플(TOEFL)을 가르치기 때문에 이공계열 학문의 내용을 자주 다루지만 아직 찾아보기 힘든 영역이 존재한다. 그중 하나가 바로 양자물리학이다. 개인적으로 참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흥미진진하면서 동시에 지적 자극을 유발하는 영역을 가장 뇌 활동이 생생할 이십 대 학생들이 접하지 않는다니. 전공생이 아니므로 깊게 파고들 필요는 없을 테다. 굳이 전공 서적을 집어 들 필요도 없을 테다. 입문에 해당하는 내용으로도 충분히 즐거울 수 있으니 말이다.     


유독 이해하기 어려운 양자물리학에서도 일반인의 접근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 내용은 아마도 ‘슈뢰딩거의 고양이’실험으로 대표되는 양자물리학 관점에서 말하는 관측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고양이가 절반의 확률로 죽을 수 있는 환경을 불투명한 상자 안에 구성해 놓은 뒤, 1시간 뒤 상자를 열었을 때 고양이가 살아있는 상태인지 죽어있는 상태인지를 논하는 실험이다. 


양자물리학 관점에서 이 실험의 답은 ‘상자를 열어 관측하기 전까지는 고양이의 상태는 살아있음과 죽어있음이 공존한다는 것’이고, 실험을 토대로 요약하자면 양자물리학에서 말하는 바는 ‘관측해야만 비로소 실체가 존재하고, 관측하기 이전에는 알 수 없다’로 정리될 수 있다. 분명 저 하늘 위에 달이 떠 있음을 우리는 인지하고 있는데, 양자물리학자라는 사람들은 달을 관측하기 전까지는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다고 주장한다니 필자 같은 일반인의 입장에서 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주장이란 말인가. 하지만 영화 「쇼생크 탈출」을 45번째쯤 본 후 비로소 생쥐 눈물만큼은 해당 명제가 가슴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관점의 변화: 관찰자 시점     


불특정한 장면을 재생해도, 대사 한 구절만 들어도 장면과 인물과 구도와 표정까지 떠오를 만큼 여전히 유명세를 구가하는 영화 「쇼생크 탈출」은 스티븐 킹의 중편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능력 있는 은행원인 앤드류 듀프레인(애칭인 앤디로 불린다)은 아내와 아내의 불륜 상대를 죽였다는 누명으로 쇼생크 감옥에 수감되고 오랜 시간이 지나 우연히 무죄를 입증할 기회를 되지만 교도소장의 방해로 기회를 놓치자 결국 탈옥을 감행하여 아무도 찾지 못하는 곳에 정착하는 이야기로, 원작 소설의 핵심 내용을 충실히 옮긴 영화이면서 동시에 원작 소설과 다른 점이 여럿 존재한다.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화자의 시점이라 하겠다. 앤디의 시점에서 시작한 영화는 앤디와 깊은 우정을 나누는 엘리스 보이스 레딩(줄여서 레드로 불린다)의 독백과 회상으로 넘어가지만 다시 앤디에게로 초점이 옮겨가기 때문에 영화만 본 경우 앤디가 주인공인 이야기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레드의 독백과 회상이 주를 이루고 앤디가 탈옥한 이후에도 레드의 독백은 계속되는 점, 그리고 앤디를 찾아가는 레드의 결정을 보여주는 것으로 영화가 끝맺는 점을 고려하면 해당 영화는 앤디의 탈옥이 주가 되는, 앤디를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이기보다는 앤디의 시작과 끝을 관찰한 레드의 관찰자 시점에서 바라봐야 하는 영화인 것이다. 


이 부분은 원작 소설에서 더욱더 명확하게 입증된다. 원작 소설의 경우 레드의 독백으로 이야기가 시작해서 철저하게 그의 관점에서만 진행되고 특히 레드가 앤디를 만나기 전에 이야기가 종결되기 때문이다.      


앤디를 둘러싼 다양한 모습의 희망     


첫째, 차후 긴밀한 사이가 되지만 아직은 어색한 관계인 앤디와, 레드를 포함한 동료 수감자가 건물 지붕에서 타르 방수 작업을 하는 어느 더운 날이 나오는 장면. 악명 높은 악질 간수 바이런 해들 리가 씹어 삼키는 세금 문제와 관련된 불평을 들은 앤디는 겁 없이 그에게 다가가 위험을 무릅쓰고 전직 경험을 살린 조언을 건네는 모험을 시도한다. 다행히 바이런은 앤디의 조언을 받아들이고 앤디는 그에 대한 대가로 시원한 맥주를 요구한다. 타르 작업이 끝난 건물 지붕에 편하게 앉아 차갑게 식힌 맥주를 즐기는 동료 수감자와 그런 이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앤디의 모습을 기억하자.       


둘째, 교도소로 기부된 책 뭉치를 정리하던 앤디는 그 안에서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LP 음반을 발견한다. 앤디는 발견한 LP 판을 들고 교도소 전체에 방송을 하는 시스템이 마련된 방에 들어가 음반을 재생한다. 분노한 소장과 간수들이 앤디를 막기 위해 달려오지만 앤디는 되려 방문을 잠그고 ‘어쩔 거냐’는 눈빛으로 그들을 쳐다보며 더욱더 크게 음악을 재생한다. 스피커를 타고 교도소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평화로운 산들바람 같은 음악이 울려 퍼지고 그 아래 회색 벽 안에 갇혀 옹기종기 모여있는 수감자들의 모습은 이질적이면서 한 편의 수채화처럼 보인다.     


셋째, 명목상 운영되는 허름하고 중구난방인 교도소 내 도서관으로 배치된 앤디는 이후 도서관을 확장할 계획을 세우고 지속적으로 주 정부에 보조금을 요청하는 편지를 보낸다. 시간이 흐르고 앤디의 고집에 항복한 주 정부는 도서관을 새로 단장할 만큼의 큰 액수의 보조금을 보내주고 앤디는 계획했던 대로 도서관을 짓는다. 다양한 범주 아래 수많은 책을 마련하고 마음껏 음악을 들을 수 있는 LP 음반과 플레이어 그리고 헤드셋까지 구비했을 뿐 아니라 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작은 상영관까지 마련하는 앤디의 노력이란. 동네 작은 공공 도서관에서 안온한 여가 생활을 보내는 수감자들의 모습은 믿기 힘들 만큼 평화롭다.      


넷째, 시간이 흘러 희끗희끗 해진 귀밑머리와 원숙한 여유를 품은 앤디의 일상에 가장 밝은 희망 하나가 너무나 아픈 순간으로 찾아온다. 껄렁거리는 양아치 토미 윌리엄스는 좀도둑질 중 경찰에 붙잡혀 쇼생크 감옥으로 수감되고 이윽고 앤디와 동료 수감자들과 특유의 활발한 성격으로 친해진다. 사회에 있는 아내와 어린 자식을 위해 마음을 다잡고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준비하려는 토미와 옆에서 끝까지 도와주려는 앤디는 특히 가까운 사이가 된다.      


쇼생크의 일상에서 이전 교도소의 경험을 자랑스레 늘어놓던 중 토미는 과거에 앤디의 부인과 불륜 상대를 실제로 죽인 진범과 같은 방을 썼음을 깨닫게 되고 이 이야기를 들은 앤디는 교도소장에게 자신의 사건에 대해 재심 신청을 해 줄 것을 요청한다. 교도소장이 축적한 뒷돈을 세탁하는 일을 오랜 시간 처리한 앤디이기에 교도소장은 앤디의 요청을 거절하고 앤디는 흥분한 나머지 돈 세탁을 언급하며 말실수를 하게 된다. 그에 대한 대가로 앤디는 독방에 수감되고 앤디가 베푼 도움에 보답하기 위해 확고하게 증언하겠다고 결심한 토미마저 교도소장에 의해 살해된다. 이 사건으로 인해 앤디는 결국 탈옥할 결심을 하게 된다. 


희망을 관측한 결과     


영화는 앤디의 감옥 생활과 탈옥 이후의 모습까지를 주로 다루기 때문에 자칫하면 레드에게 생긴 감옥 생활의 변화를 놓치기 쉽다. 바로 가석방 심사 장면으로 총 세 번의 중요한 장면이 영화 전체에 걸쳐 묘사된다. 


십 년 주기로 세 번에 걸쳐 진행되는 레드의 가석방 심사는 단절된 시간의 흐름이 있음이 먼저 눈에 띈다. 심사위원의 면면과 복장이 바뀌며 여성이 포함되고 마지막으로 점점 더 젊어지지만 반면 레드는 점차 흰머리와 주름이 늘어난다. 시간의 흐름 측면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레드 역을 맡은 모건 프리먼이 대사와 표정 연기와 그를 통한 감정 표현으로 시간이 흘렀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점이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심사에서 레드는 심사위원의 ‘교화가 됐다고 생각합니까?’라는 질문에 충분히 교화가 됐으며 사회에 합류할 준비가 됐고 더 이상 사회에 해를 끼치는 위험한 인물이 아니라고 강변한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서 느껴지는 애처로움과 형식적이라는 감정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그의 눈빛에는 자신감이 없고 심사위원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며 마치 필요한 답을 주는 것처럼 보인다.   


그에 반해 마지막 가석방 심사에서 같은 질문을 받은 레드는 오히려 심사위원을 비꼬며 퉁명스러운 태도를 보인다. 교도소장부터 뒷돈을 받아 챙겨 돈 세탁으로 부를 축적하고 수감자를 사람 취급하지 않는 대다수의 간수가 일하는 곳에 수십 년 동안 갇힌 이에게 교화라니. 하지만 다른 감수들보다 특히 레드는 앤디와 친했던 인물이고 따라서 앤디가 풍기는 희망의 기운에 가장 많이 노출된 인물이기도 하다.      


즉, 부인에게 잘 대해주지 못했음을 후회하는 동시에 스스로가 무죄임을 알기 때문에 희망을 안고 과거보다 미래를 꿈꿨던 앤디로 인해 레드는 비로소 스스로가 저지른 과거의 잘못을 인식하고 후회를 하며 받아들이는, 과거에 머물러 있지 않고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이다. 모건 프리먼은 이토록 깊은 내면의 상태를 대사의 강약과 속도 조절, 오랜 시간의 후회와 깨달음을 담은 눈빛으로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게 보여준다.     


앤디를 향한 레드의 첫 관측은 앤디가 처음 쇼생크 감옥에 수감되는 날 시작된다. 신규 수감자 중 첫날밤에 누가 먼저 버티지 못하고 소란을 피울지를 두고 담배 내기를 하는 수감자들 사이에서 레드는 이유 모를 느낌으로 유일하게 앤디에게 자신의 담배를 건다. 관측의 시작이다.      


시계를 되감아 다시 그날로 돌아간다. 레드는 가장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새 수감자에게 담배를 건다. 영화 초반부에 보인 것처럼 그 수감자가 당첨되고 영화와 똑같이 간수에게 본보기로 두들겨 맞고 결국 싸늘하게 식은 채 사망할 것이다. 그리고 곧 그를 잊은 채 레드와 동료 수감자들은 다시 일상을 살아갈 것이다. 


도서관은 여전히 허름하고 주먹구구식으로 운영이 될 것이다. 한여름 옥상 방수 공사 중에 시원한 맥주를 마실 일도 없을 것이고 전체 스피커로 평화롭고 아름다운 클래식 음악을 들을 일도 없을 것이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가고 레드는 계속해서 가석방 심사에서 탈락을 반복하다 다 늙어서야 사회에 발을 들이게 될 것이다.   


레드로 인해 희망과 절망이 불확실하게 섞여 있던 상자의 문이 열렸고 그 안에서 희망이 흘러나왔다. 오랜 시간 쇼생크 곳곳에 자취를 남긴 희망 또한 레드를 바라보았다. 그로 인해 레드의 가슴속에 오랜 시간 숨죽이고 있던 희망 또한 피어나기 시작했다. 포기하지 않고 바라보았기에 그들에게 변화가 찾아온 것이다. 끝까지 레드를 잊지 않은 앤디와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앤디를 찾아 지와타네호(Zihuatanejo)로 향한 레드의 재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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