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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밥, 어디까지 해봤니?

‘혼자 밥 먹기’ 마스터의 혼밥 기행

by 강프란

우리는 모두 다양한 이유로 혼밥을 한다. 좋든지 싫든지 간에 때로는 혼밥을 피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나는 이런 순간들을 하나의 모험이자 액티비티로 여기고 즐기는 편이다. 그래서 종종, 아니 꽤 자주 혼자 밥을 먹곤 한다.


내가 혼밥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지금 내 앞에 주어진 이 한 끼를 온전히 집중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음식의 맛과 냄새부터, 음식점 내부의 인테리어와 분위기까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었을 때는 보지 못하고 지나쳤을 요소들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그리고 음식뿐만 아니라 혼자만의 시간도 음미할 수 있다. 나를 충전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나와 맛있는 음식 단 둘의 데이트인데 뭐가 걱정이랴.


물론 혼자 밥을 먹는다는 게 그저 쉬운 일만은 아니다. 배달을 시키거나 직접 요리를 하는 상황이면 모르겠지만 식당에 들어가 주문을 하기까지, 내향인인 나로서는 용기를 내야 한다. 처음에는 식당에 혼자 들어가는 게 조금 두려웠다. 가고 싶은 식당이 있어 혼자 찾아갔는데 유리창 밖에서 식당을 바라보니 커플들만 앉아있을 때, 식당 앞에서 머뭇거리며 주위를 서성이기도 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나에 대해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머릿속에 상기한다.


생각해 보면 남자들은 사실 군대 훈련소에서 모두 혼밥을 경험한다고 할 수 있겠다. 모르는 얼굴들 사이에 앉아 말없이, 눈치 보며, 허겁지겁 밥을 먹는다. 그때는 단지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무슨 맛인지 느끼진 못했다.


이제는 자칭 '프로혼밥러'인 내가 기억에 남는 세 번의 혼밥 식사 경험을 적어본다.


1. 독일 뮌헨 '호프브로이하우스'

나에게는 가장 난이도 높았던 혼밥으로 아직까지도 남아있는 이곳, 호프브로이하우스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양조장이자 가장 큰 술집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에 나는 입대 전 마지막으로 친구와 유럽여행을 가기로 했었는데, 친구와 합류하기 전 뮌헨에 이틀간 혼자 머무르게 되었다.


1500년에 지어져 독일의 역사와 함께한 이 유서 깊은 장소에 꼭 가보고 싶은 마음에 나는 혼자였지만 용기를 내어 입장했다. 하지만 처음 식당에 들어가자마자 왁자지껄 축제 같은 분위기에 압도당했다. 게다가 자리를 안내하는 직원도 없어 빈자리를 알아서 찾아 앉아야 했다. 당황했지만 심호흡을 두 번 정도 하고, 나는 3000명을 수용할 수 있다는 이 어마어마한 호프집을 한 바퀴 돈 후에 겨우 자리를 잡았다.


자리에 앉은 후에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는데, 다행히 나의 존재를 인지한 직원분께서 메뉴판을 가져다주셨다. 우선 조금 취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에 곧바로 호프브로이하우스 오리지널 맥주를 주문했다.

맥주 10.4 유로

한국에선 볼 수 없는 1L 사이즈의 잔에 웅장한 자태를 뽐내며 오늘의 주인공이 도착했다. 맥주맛은 아직 잘 모르지만 뭔가 ‘원조’, ‘정석’과 같은 수식어가 떠오르는 맛이었다. 시원하고 달콤 쌉쌀했다.


그렇게 무거운 맥주잔을 들고 혼자 조금씩 홀짝이던 와중, 누군가 내게 말을 건넸다. 그는 30대 초중반처럼 보였는데, 10분 전 딱 나와 같은 처지였다. 자연스럽게 합석을 했고 우리는 대화를 나누었다. LA에서 독일 여행을 온 미국인이었다.

슈바인학센 15.9 유로

곧 슈바인학센이 나왔다. 독일식 족발로 유명한 음식이지만 돼지의 발 끝부분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겉바속촉’ 그 자체였는데, 그래서 그런지 맥주와 너무 잘 어울렀다. 바닥엔 짭짤한 그레이비소스가 깔려있고 곁들여먹기 좋은 감자가 함께 나온다.


음식의 맛 자체가 엄청났다기보단 호프브로이하우스의 분위기에 휩쓸려 식사를 한 것 같다. 흥겨운 음악 연주와 사람들의 웃음소리를 배경으로.


미국인 아저씨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밥을 다 먹고 자연스레 함께 님펜부르크 궁전에 가보기로 했다. 여름이라 그런지 저녁 9시가 다 될 무렵이었는데도 해가 저물지 않았다.

님펜부르크 궁전 호수의 오리

생각해 보니 혼밥이 아니네. 처음엔 혼자였지만 뜻밖의 즐거운 만남이 있었다. 언제 새로운 동행을 만나게 될지 모르는 것도 홀로 보내는 시간이 주는 묘미인 것 같다.



2. 제주도 ‘춘미향식당’


두 번째는 제주도다. 나는 당시 자전거로 2박 3일간 제주도 종주를 하고 있었고, 첫날 라이딩을 마무리하고 저녁 식사를 할 곳을 찾고 있었다. 장장 5시간의 질주로 인해 극도로 허기진 상태였다.

사계리라는 작은 마을에서 하루를 머물게 되었는데, 자전거를 두고 길을 조금 걷다 춘미향 식당을 발견했다. 정확히 무슨 메뉴를 파는 곳인지도 몰랐지만 나는 이름과 간판에서부터 맛집의 기운을 감지했다.


들어가 메뉴판을 보니 고기도 있고 생선 조림도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 옆에 춘미향 정식이 눈에 들어왔다. 다행히 1인도 주문이 가능했다.

춘미향정식 23000원

춘미향정식에는 목살 100g과 전복성게미역국 그리고 옥돔튀김이 밑반찬과 함께 모두 나왔다. 상다리가 부러질 것 같은 푸짐한 한상이었다. 평소였으면 혼자 다 먹기 어려울 정도의 양이었겠지만 허겁지겁 남김없이 먹었다.

무엇보다 음식들이 훌륭했다. 목살은 고기니까 당연히 맛있었고 뜨끈한 전복성게미역국은 속을 잘 달래주었다. 제주도여서 기분 탓인가 해산물들이 더 신선하게 느껴졌다.


옥돔튀김은 처음 먹어보는 음식이었는데 가장 기억에 남았다. 바삭한 식감이 살짝 달큰한 양념과 잘 어우러져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딱새우장과 전까지 나오는 밑반찬 구성도 너무 알찼다.


맛있는 첫날 저녁 덕분에 남은 이틀도 기운 내서 234km의 제주도 자전거 종주 코스를 무사히 완주할 수 있었다. 어느새 3년 전 봄의 일이다.



3. 볼리비아 라파즈 ‘더 스테이크하우스’


혼자서 스테이크집에 들어가 고기를 썰어본 적이 있는가?


라파즈는 볼리비아의 수도로, 평균고도가 3600m에 달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도로 불린다. 내가 지금까지 여행을 디니면서 가장 기억에 강렬하게 남는 도시인데, 대중교통이 케이블카일 정도로 지형이 험난했다.

라파즈를 떠나기 전, 마지막 점심. 블로그에서 사람들이 맛집으로 추천한 스테이크집이 있었다. 혼자여서 갈 수 있을까 싶었는데 오전에 방문한 마녀시장과 가까이 있다고 해서 걸어가 봤다.

다행히 식당은 내부가 꽤 넓고 쾌적했다. 하지만 역시나 혼자 앉은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볼리비아의 고급식당 느낌이었다. 옆 테이블은 기념일이거나 생일이었는지, 음식이 나오기도 전에 사진을 엄청 찍고 있었다.


나는 시그니쳐 같아 보이던 잭다니엘 스테이크를 주문했다. 음식이 생각보다 오래 걸려 왜 안 나오지 싶던 찰나, 갑자기 내 앞으로 고기를 들고 오시더니 불쇼를 하시기 시작했다. 모두가 내 테이블만 비라보는 상황. 다소 당황했지만 침착하게 카메라를 켰다.

잭다니엘을 입힌 조금 투박해 보이는 스테이크는 감자튀김과 함께 나왔다. 고기는 조금 질겼다. 그래도 샐러드바에서 야채 자유롭게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118볼 (약 25000원)

혼자서 스테이크 칼질을 지구반대편 볼리비아에서 하게 될 줄이야. 맛을 떠나 잊지 못할 경험이다.



여행이나 특별한 상황에서의 혼밥이라 특히 더 기억에 남는걸 수도 있지만, 집 앞 단골 국밥집이나 새로 생긴 동네 맛집에 줄을 서보는 것도 언제나 좋아한다.


나 스스로에게 사주는 따뜻한 밥 한 끼!

우리를 혼밥에서 가로막는 장애물 중 하나는 ‘타인의 시선에 대한 의식‘이 아닐까 싶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이 아니라면 너무 눈치 보지 말자. 말처럼 쉽진 않겠지만 주변에 휘둘리지 않고 나의 선택을 할 줄 아는, 줏대 있는 삶을 살고 싶다.


쇼펜하우어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모든 불행은 혼자 있을 수 없는 데서 생긴다.” 어느 정도 일리 있는 말 같다. 내면이 풍요로우면 스스로 만족할 줄 알고 고독을 즐길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오늘은 우리 모두 고독한 미식가가 돼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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