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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숙현 Jul 15. 2023

11. 알에서 나온 아이, 탈해

 동쪽 바닷가에 까치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까치들은 줄을 지어 한 방향을 향해 날아들었다. 날개를 한껏 펼치고 있는 모습은 마치 바다에 검은 비단 띠를 두른 것처럼 보였다. 사방에서 날아든 까치의 수는 어림잡아도 수백 마리를 넘어서는 것 같았다. 까악 까악 우는 소리가 귀청을 울렸다. 


 구용이 심상치 않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 배입니다."

 바닷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배 한 척이 떠 있었다. 한눈에 봐도 멀리서 온 배가 틀림없었다. 배의 고물과 이물이 바짝 치켜 올라온 데다, 사로국의 배들에 비해 돛대가 유난히 높았다. 


 구용은 어릴 때부터 배를 부리고 바다를 건너다닌 사람이었다. 그의 눈에도 배의 모습은 심상치 않아 보였다. 동해에서 부는 바람을 잘 받기 위해서는 가로로 긴 돛대가 더 유리하다. 사로국의 배들 뿐 아니라 바다 건너 왜국의 배들도 거의 비슷한 모양이었다. 


 구용은 가락국에서 전해온 소문을 떠올렸다. 소문은 높은 산맥을 타고, 바다를 건너 바람결에 실려왔다. 

 아침 안개가 걷히고 배 한 척이 모습을 드러냈는데, 배 위에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배의 모습이 특이해 사람들이 끌어내려했더니, 배는 순식간에 물결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가 모습을 감췄다고 한다. 


 다음 날에도 배는 그 자리에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사람들이 다가가려 하면 다시 모습을 감추었고 그와 같은 일은 이레 동안이나 반복되었다. 가락국 사람들 사이에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저 배에 액이 끼었다."

 그러자 사람들이 너나없이 북을 들고 나왔다. 둥둥 북을 울리자 배가 가락국을 벗어나 다시 너른 바다로 나아갔다고 한다. 


 구용은 눈을 가늘게 뜨고 배 위에 사람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노를 젓는 사람도, 키를 잡은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배 한가운데 궤짝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구용의 입에서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가락국에 나타났다는 배가 틀림없군.'

 서늘한 바람이 불어왔지만 구용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의선 부인은 구용의 옆에서 그 생각을 읽고 있었다. 구용과 다른 이들이 선뜻 나서지 않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의선 부인은 신중하게 배를 바라보았다. 사로국에서는 시조를 위한 제사가 있었다. 그 뒤에 사로국에 흘러들어온 배라면 특별한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 의미를 찾는 것이 최고 신녀의 임무일 것이다. 의선 부인은 배를 향해 두 손바닥을 활짝 폈다. 

 “땅 어머니시여! 길입니까? 흉입니까?” 

 그 순간 까치들의 울음소리가 높게 울려 퍼졌다. 


 의선 부인은 눈을 감고 손에 온 신경을 다 모았다. 잠시 후, 손바닥 한가운데 따뜻한 기운이 모여들었다. 불길한 기운은 아니었다. 의선 부인이 손바닥을 젖혀 하늘을 향하게 내보였다. 그러자 까치들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홀가분한 날갯짓으로 각자 자신들이 날아온 방향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의선 부인은 자신의 생각이 맞으리란 확신이 들었다. 머나먼 곳에서 사로국까지 온 배는 땅 어머니의 뜻을 싣고 온 것이리라. 의선 부인이 구용에게 말했다. 

 "고물에 밧줄을 걸어 끌어올리도록 하여라."

 구용이 뱃사람들을 불러왔다. 


 발 빠른 사람들 서넛이 첨벙거리며 물속으로 들어갔다. 마침 바람이 불어 배가 해안 가까운 곳으로 밀려왔다. 구용이 익숙한 솜씨로 밧줄을 던졌다. 여럿이 힘을 모으자 밧줄이 팽팽하게 당겨지며 배가 끌려오기 시작했다. 배의 무게는 생각보다 훨씬 더 묵직했다. 뱃사람들의 팔뚝에 힘줄이 불거졌다. 

 "이여차 이여차."

 그들은 합을 맞춰가며 힘을 모았다. 


 배가 해안에 닿자 여기저기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무엇보다 배에 실려 있는 궤짝에 관심이 모였다. 하지만 그 누구도 함부로 다가서지 않았다. 바로 코앞에 배가 있었지만 뱃사람들은 주춤거리며 물러섰다. 뱃사람들은 얼굴을 붉히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험한 파도에 시달리며 살아온 사람들입니다. 뭍사람들보다 의심이 많을 수밖에 없지요."

 구용이 안타까운 듯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그 말에 의선 부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궤짝을 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뱃사람을 안심시키는 것이었다. 


 의선 부인이 품속에서 달의 나뭇가지를 꺼냈다. 신성한 나뭇가지가 새벽 어스름에 푸르게 빛났다. 

 "땅 어머니의 자식들이여, 걱정과 근심을 내려놓아라! 신목의 가지가 불운을 사라   지게 할 지어니."

 달의 나뭇가지를 궤짝 위에 올려놓자 궤짝의 틈에서 노란빛이 새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 가늘게 새어 나오던 빛이 점점 퍼지면서 궤짝을 둥글게 에워쌌다. 구용이 궤짝 가까이 다가갔다. 

 "궤짝을 열어보아라."

 의선 부인이 구용에게 명했다. 궤짝은 오랫동안 닫혀 있었던 것 같았다. 구용은 온 힘을 다해 궤짝의 뚜껑을 열었다.

 "끼이익."

 소리와 함께 뚜껑이 열리자 환한 빛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궤짝 안에는 둥근 해를 닮은 알 하나가 놓여 있었다. 사로국 사람들은 이제껏 이렇게 큰 알을 본 적이 없었다. 구용은 놀라서 뒷걸음질을 쳤다. 

 의선 부인이 조심스럽게 다가가 보았다. 신녀는 동쪽 하늘을 향해 세 번 절하고 알에 손을 대 보았다. 

 손을 대자마자 알에 금이 가더니, 알 껍데기가 깨지는 것이었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린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알에서 아이가 나왔네. 이럴 수가."


 알 속에는 알몸에 붉은 천을 두른 아이가 누워있었다. 동그란 얼굴에 옅은 갈색 머리카락을 가진 아이였다. 속눈썹이 길고 코가 유난히 우뚝했다. 검은 머리칼의 사로국 아이들과는 생김새가 판이했다.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지자 아이가 울음을 터트렸다. 구용이 어찌할 바를 몰라 의선 부인을 바라보았다. 

 "새벽바람이 차구나. 아이를 어서 안으로 데려가라."

 "하지만…혹시라도…사람이 어찌 알에서 나올 수 있는지……."

 구용이 말끝을 흐렸다. 의선 부인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잊었느냐? 혁거세 왕께서도 알에서 나오셨던 것을."

 의선 부인의 말 한마디에 사람들 표정이 바뀌었다. 마치 주위를 감싸고 있는 공기가 변한 듯했다. 사람들은 침묵 속에서 혁거세 왕의 모습을 떠올렸다.


 갓난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자랐다. 첫이레가 지나자마자 기어 다니고, 세이레가 지나자 벌써 뛰어다녔다. 백 일이 되자 아이는 사람들 앞에 서서 말을 했다.  

 "낳아주신 분께도 버림받은 저를 이렇게 거두어 주시어 감사합니다. 저를 거둬주신   분을 어머니를 모시고 싶습니다."

 의선 부인은 아이의 이름을 지어주었다. 궤를 열고 알을 벗어났다 하여 이름을 ‘탈해(脫解)’라 하였다. 

 아이는 제 이름이 몹시도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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