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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의 집 Oct 19. 2024

술, 세상 그리고 나

새벽 세시 반, 내면에서 막연한 외침이 들려온다. '넌 글을 한편 올리지 않는다면, 잠들 수 없을 것이다.' 일찍 잠드려 바밤바 막걸리도 한잔 했건만, 나의 정신은 날 놔주지 않는다.


우리는 가정과 학교 그리고 직장을 통해 여러 차례 사회화를 한다. 술을 먹 술자리 경험을 하지 않는다면 세상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술은 인간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욕구를 분출하게 한다. 사회화라는 것이 인간의 욕구를 이해하고 적정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라면, 술을 이해하는 것은 사람을 이해하기 위한 좋은 접근법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들을 이해하는 것 또한 그렇다.


나는 술을 멀리하는 취향(어떤 사물에 대해 사람의 흥미나 관심이 쏠리는 방향이나 경향)을 가지고 있다. 이 글을 통해 술을 멀리하는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이해해 보았으면 한다.


첫 번째로 건강적 이유이다. 나는 술을 마시면 아토피가 심해 관절이 접히는 부분에 빨갛게 달아오르며 얼굴도 터질 듯이 빨개진다. 피부에 악영향을 미친다. 그 결과 여드름 및 건조한 피부가 되어버린다. 또한 나는 술 분해효소가 현격히 적다. 나의 부모님들이 술을 마신 장면을 본 것이 5번이 넘지 않는다.


두 번째, 경험적 이유이다. 만취한 적이 있었는데 너무 힘들고 마시고 난 후 기분도 그다지 좋아지지 않는다. 억지텐션을 끌어올리는 느낌이 살짝 들지만 이내 힘들어진다. 상사들은 술을 마시며 그들이 혼자 즐기는 데 나는 즐겁지 않다. 술자리에서 마음을 놓지 못하고 상사의 반응을 살핀다. 상사도 이내 내가 애쓰는 것을 알아차린다. 우리는 서로 뻘쭘해진다.


세 번째, 가치관이다. 술을 마시는 것은 대표적인 소비적인 행동이다. 특히 추후 활동에도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매우 소모적인 활동이라는 생각이 든다. 술이 즐거움을 주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은 즐거움을 얻기 위해 소비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싫은 사람과 쓸데없는 시간을 써야 하는지 오히려 시간 감각이 명료해지고 아깝다는 생각을 했다. 술자리를 통해 무엇을 쟁취하려는 행위는 한낱 핑곗거리와 자신의 역량부족을 덮기 위한 임시방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은 편한 길을 원하고 갔던 길을 택한다. 나는 버릇을 드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어쩌면 나는 마음을 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는 것 일지도 모른다. 대인관계에서 마음을 쏟았을 때 좋은 피드백으로 돌아오지 못한 빈도와 강도가 높았던 것 같다. 인생 중 찰나의 시간도 즐기지 못하는데, 술을 즐길 수 있을까? 게으른 나에게 아직 해결해야 할 나의 단점들이 너무 많이 남아있고 이런 나를 용서하지 못하고 있다. 언제쯤 내가 나에게 즐거움을 허락할 수 있을까? '술에 대해 저만에 개똥철학이 있는데, 술은 독이에요, 독을 먹는데 기분 나쁠 필요는 없잖아요 허허' 어느 고객의 말처럼 그가 느끼는 자부심과 호탕함,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까?


수많은 실패와 낙담의 속에서, 나는 최근 이전의 삶과 달리 대오각성을 했었다. 그리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압축적으로 성장하는 나를 보았다. 이제 다시 무일푼으로 돌아와 시작하는 단계로 또다시 돌아왔다. 그러나 나의 뇌는 평생의 경험으로 점철되어 있다. 달라진 것은 오직 현실을 달라지게 할 힘을 가진 나일뿐, 현실은 달라진 것이 없었다. 오히려 더 낮은 곳에서 대리운전을 폭풍우를 맞으며 뛰며, 승차를 거부당하거나 모욕적인 말을 듣기도 한다. 이 두 간극의 허탈감과 공허함을 느꼈다. 폭우를 맞으며 집에 돌아가는 나의 굽은 등 뒤로 스며드는 나의 자괴감은 오늘 밤만은 이유불문 술의 힘을 빌려 나를 놔버리고 싶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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