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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구의 엄마 Apr 24. 2023

아이책은 육아 동반자이자 선생님

아이의 책은 마치 나에게 육아 선생님과 같았다. 한 스텝씩 친절하게 왈츠 추는 법을 알려주는 신사 한 분이 내 육아 라이프를 동행해 주는 느낌이랄까.


그 시작은 누구나 아는 유명한 보드북부터.


사과가 쿵.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아빠한테 찰딱.

엄마랑 뽀뽀.

등등.




아이를 낳기 전 돌 즈음 된 아기를 키우는 친구 집에 놀러 간 적이 있었다. 그때 친구가 아이에게 사과가 쿵이라는 책을 읽어주면서 국민책이라며 나에게도 나중에 보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때는 아기 키우는 것에 대해 피상적으로 알고 있었고, 그 책이 얼마나 유명한 지도 전혀 몰랐었다.


그리고 아이와 함께 집 밖을 나서니 아이가 개미를 관심 있게 보면서 좋아했는데, 그것도 친구가 사과가 쿵이라는 책에 개미가 나와서 그러는 것이라고 했었다. 지금 그 책에 꽂혀있다고 하면서. 바로 이 부분이다.



이 때는 친구 말에 공감을 전혀 못했던 것 같다. 사과가 쿵이라는 책 내용도 잘 몰랐고, 사실 옆에서 슬쩍 봤을 때 그렇게 재미있어 보이지도 않았다. '저런 책을 아기들이 좋아하나? 조금은 시시해 보이는데...' 정도의 생각을 했었다. 실제로 '사과가 쿵'에 대한 후기를 살펴보면 생각보다 그냥 그렇다는 후기도 있다. 모든 사람들이 같이 취향을 가지고 있지는 않고, 책에서 재미를 발견하는 것은 개인 차가 클 수 있는 부분이라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이 책을 처음 봤을 때는 재미없는 시시한 아기 책 정도라고 생각했었으니까.




그런데 아이를 낳고 나는 아기책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됐다. 내가 아이를 낳고 이렇게 아이 책에 빠져들 줄은 나도 몰랐다. 나는 책육아라는 것이 하고 싶어서 한 것이 아니다. 책이 아니면 내 기준에서 제대로된 육아를 할 수가 없어서 책을 본 것이다. 책이 나를 지금의 엄마로 만들어줬다. 책이 아이와 나를 아주 잘 연결해 줬다. 때로는 아이보다 더 아이 책에서 감동을 받기도 하고, 힐링받기도 했다.


내가 아이 책에 빠져드는 동안 아이도 같이 빠져들었다. 우리 아이도 다른 아이들처럼 꽂히는 책은 수없이 반복해서 읽고, 책에 나오는 사물과 생물들에 관심을 보이고, 책에 나오는 스토리를 놀이화해서 노는 것이 일상이다. 책을 보다가 재미있는 소재나 스토리가 나오면 언제나 “요 놀이 해볼까?”를 외친다.




아이를 낳고 교보문고 유아 도서 베스트셀러를 뒤적이다가 100위 안에 있는 책 중에 내가 보기에도 재미있는 그림책과 유명해 보이는 보드북 몇 권을 샀다. 당연히 그중에 '사과가 쿵'이 있었다.


지금은 아이가 커서 그 책을 더 이상 보지는 않지만, 최소 백 번 이상 봤기 때문에 책의 모든 장면이 여전리 떠오른다. 아기 보드북은 어른들이 대충 보면 참 시시한데, 자꾸 읽으면 작가의 의도도 느껴지고, 어떤 포인트를 더 살려서 읽으면 아이랑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지에 대한 여러 아이디어가 샘솟는다. 아이도 책을 반복해서 보면 새로운 것이 눈에 띄는지 말은 하지 못해도 새로운 것을 가리키면서 옹알이를 할 때가 있다. 그러면 나의 눈길은 자연스럽게 아이 손가락 끝으로 향하게 되고, 나 또한 새로운 재미 요소를 발견하게 되곤 했다. 아이들은 좋아하는 책을 읽어주면 진심으로 그림을 살펴본다. 아이 덕분에 그림책을 숨은 그림 찾기 하듯이 읽게 된 것 같다.


한 두 번 혹은 몇 번 읽어도 이런 재미가 느껴질 가능성이 보이지 않고, 아이도 재미없어한다면 그 책은 엄마와 아이 취향에 맞지 않은 책이지 않나 싶다. 이런 경우에는 다른 책으로 눈길을 돌리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이 외에도 '눈코입', '아빠한테 찰딱', '우리 아빠', '기분을 말해봐', '펭귄 호텔', '엄마는 해녀입니다' 책을 사서 아이와 꾸준히 잘 읽었던 기억이 남아있다. 이 외에도 유명한 책이 많았지만, 우선 이렇게 사서 읽어보고, 나의 취향과 아이의 취향을 고려해서 확장해 나가야겠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엄마는 해녀입니다'는 아이가 누워있을 때 내가 읽고 싶어서 산 그림책인데, 조곤조곤 읽어주면 나름대로 아이가 반응하면서 들어주곤 했다.


보드북 중에서는 '아빠한테 찰딱'이라는 책을 가장 먼저 좋아하기 시작했다. 색감이 이쁘고, 아이가 당시에 노란색에 반응을 잘했는데, 기린이 나오는 부분을 참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아이가 6개월 전후에 앉아서 함께 책을 쳐다볼 수 있게 되었을 즈음부터는 다양한 책을 좋아하는 것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눈코입'도 신체 부위를 가리키는 간단한 내용의 보드북인데, 마지막 부분에 재미 요소도 있어서 아이랑 참 재미있게 반복해서 읽었다. '우리 아빠' 책은 당시에 양장본밖에 없어서 너덜너덜해지고 다 찢어질 때까지 봤는데, 아이가 마지막 부분에 등장하는 아빠에게 뽀뽀도 참 많이 해줬었다. '기분을 말해봐' 책도 이런저런 상황이 제시되다 보니, 돌 전후 아이와 함께 다양한 상황에서의 감정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 수 있었다. 엄마 혼자 이렇게 저렇게 재미있게 읽어주기는 해야 한다. 이렇게 저렇게 살도 붙이고, 아이가 직접 겪은 일과 연관도 지어보고. 앤서니 브라운 작가님 책은 아이와 내가 지금은 좋아하지 않는다. 오히려 돌 전후에 가족, 기분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면서 읽기 좋았던 것 같다. 이것도 개인 취향인데, 서양 작가님 정서가 담긴 책이 나와 우리 아이에게 좀 맞지 않는 시기인 것 같다. 돌 전후에는 아이가 '우리 아빠' 책을 너무 좋아해서 돌잔치 날 사진을 찍을 때도 우리 아빠 책 표지에 있는 아빠를 따라 하면서 아기를 웃겨 주었다. '펭귄 호텔'이라는 책도 정말 오랫동안 너무 잘 읽고 있다. 이 책은 여전히 잘 보고 있다. 신기하게도. 우리 집에서 가장 오래 가장 많이 읽힌 책 중 하나이다.


아이가 엄마, 아빠가 나오는 책, 아기가 등장하는 책, 동물이 나오는 책, 탈 것이 나오는 책, 공, 바퀴와 같이 동그란 무언가가 나오는 책, 웃긴 책을 좋아하는 것이 느껴져서 이러한 책을 개별 구매하기도 하고, 돌 전후에 읽기 좋은 전집도 조금씩 중고로 샀다. 책꽂이에 책은 점차 늘어갔었다.




아이가 태어나서부터 돌 전후에 읽기 좋은 책 중에 몇 가지 주제에 대해 추천하자면, 엄마, 아빠, 자주 보는 가족에 대한 책, 사랑한다고 말해줄 수 있는 책, 스킨십을 유도하는 책 (안아주기, 뽀뽀 등)이다.



책 제목과 표지만 봐도 아이와 친밀해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나요?


엄마랑 뽀뽀 - 책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엄마가 아이를 안아주고 쓰다듬어주고 뽀뽀하게 되는 책
아빠한테 찰딱 - 아이랑 함께 기린, 고릴라 등으로 변신해서 아빠한테 안기는 장면을 수없이 따라 하면서 깔깔댔던 책
우리 엄마 어디 있어요 - 색종이로 플랩북을 만들어서 아이와 숨은 그림 찾기 하듯이 재미있게 봤던 책
쭉쭉쭉 - '길어졌다'는 부분을 길게 늘여서 읽는 등 과장되게 읽어주면 재미있는 책인데, 마지막 부분에는 아이 키가 커지도록 다리 마사지를 유도하는 내용으로 마무리되는 책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 아이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여러 번 하게 되고, 아무리 말썽을 피워도 사랑해 줘야겠구나 하는 다짐을 하게 만드는 책




아이가 돌이 지나고 나면 아이와 함께 놀 수 있는 책을 보는 것도 참 좋다. 이런 책은 정말 많지만, 돌 전 아기도 볼 수 있는 보드북 중에서 몇 권 골라보자면 이런 책들이 있다.

돌 전후 아기와 놀이하듯이 보기 좋은 책

지금은 놀이시간'처럼 책에서 아이와의 블럭 놀이, 의사 역할 놀이 등을 유도해 주는 책, '두드려 보아요'처럼 같이 문을 똑똑 두드리고 문이 열리면 무엇이 있을지 상상하게 하는 책, '또 누구게'처럼 퀴즈를 내고 맞출 수 있는 책 등을 함께 보면 아이랑 자연스럽게 책을 통해서 놀이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지금은 놀이시간'은 놀이를 위한 트리거 역할을 해주는 책이고, '두드려 보아요' 책은 아이가 책과 상호작용하는 법을 처음 접하게 되는 책 중 하나이지 않을까 싶다. 요즘은 이런 책이 더 많이 나오고 있다. 나중에 이런 책도 한 번 정리해 봐야겠다. '또 누구게'는 아이가 말을 꽤 잘 한 뒤에 읽으면 좋을만한 책이기도 하다. 같이 퀴즈를 내면서 놀게 해 줄 수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끼리 끼리 코끼리', '채소가 좋아'와 같은 책은 말놀이 책 같은 느낌인데, 단순하지만, 아이랑 재미있게 읽기 좋다. '채소가 좋아' 책은 간단한 채소 이름도 알려줄 수 있고, '뾰족뾰족' 같은 의태어로 놀 수도 있고, 각 채소가 '뽑아 줘'와 같은 간단한 행동을 유도하기 때문에, 아이가 꼬마 농부가 되어서 채소를 대하는 자세를 배울 수 있는 책이라고 '꿈보다 해몽'을 해볼 수도 있겠다. 나도 처음에는 이 책이 재미없는 책이라고 생각했는데, 참 오랜 기간 아이랑 재미있게 읽었던 책이다.


채소가 좋아 - 별 내용 없는 것 같지만 알찬 책, 채소도 알려주고, 의태어와 의인화된 채소가 하는 말에 귀 기울여 보게 하는 책


'아빠, 해봐!' 책은 아이 입장에서 자주 겪는 에피소드가 그림책에 있어서 아기 소에게 동질감을 느끼면서 읽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 책이다.


아빠 해봐! - 아이는 이 책을 읽으면 이심전심이지 않을까


'눈코입' 책은 앞에서도 설명했지만, 신체부위를 함께 가리키면서 읽기 좋다. 자연스럽게 신체부위도 알려줄 수 있다. 이런 류의 책이 아이들 책에는 많이 있고, 아이들이 대부분 좋아하는 주제이지 않나 싶다.




책을 읽어주다 보면 아이는 참 호기심이 많다는 것을 매번 느끼게 된다. 그리고 우리 아이와 나는 이 짧은 보드북을 읽고도 책에 나오는 주인공을 엄청 따라 했다. 이 과정이 우리 아이와 나를 참 많이 성장시킨 것 같다. 책 읽기도 즐거웠지만, 책을 읽고 나서 책을 따라 하면서 노는 시간이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참 좋은 시간이었다. 아이는 책과 놀이를 통해서 하루가 다르게 성장했고, 나 또한 아이랑 잘 놀아주는 엄마가 되었다.


아이 책을 관심 있게 보면 아이랑 잘 놀아주는 법을 따로 찾아볼 필요도 없고, 다른 사람에게 배울 필요도 없다. 아이랑 잘 놀아주는 법에 대한 정답지는 아이 책에 거의 다 있다. 수많은 작가님들께서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시면서 아이가 궁금해할 만한 세상, 아이가 재미있어할 만한 것, 아이를 사랑해 주는 법에 대해서 글과 그림으로 정성스럽게 풀어놓으셨기 때문이다. 영유아기에는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은 아이가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자라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아이를 이해하고 더 잘 사랑해 주는 방법을 알아가고, 아이에게 좋은 엄마, 아빠가 되기 위한 마음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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