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의 반을 책이 도와줬을 뿐. 책육아를 하려고 한 건 아니다.
요즘 책육아를 하려는 사람들도 많고, 책육아를 마케팅 수단으로 삼는 사람들도 늘어나면서 이런저런 말이 많은 것 같다. 우리 집은 책육아를 하려고 해서 한 건 아닌데, 한 때 책을 참 열심히 봤었다. 아이와 책에 파묻혀 지낸 느낌. (실제로 아이와 책으로 집도 짓고 놀아서 정말 책에 파묻혀 지내는 느낌인 날도 많다.)
이 책도, 저 책도 다 좋아보였고, 책을 사도사도 부족해서 계속 사게되고 했었다. 그래서 대부분 중고로 상태 안 좋은 책을 최대한 저렴하게 사려고 했다. 살이 찌면 우리 몸의 지방이 음식을 부르는 것처럼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책이 더 필요했다.
아이가 책을 읽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서 우리 아이도 나도 왜 아이 책에 빠져들었었는지 적어보고자 한다. 이 모든 일들이 의도적으로 일어난 일들은 아니고, 아이와 나의 의식의 흐름에 따라 이루어진 일들이다. "책을 읽자.", "책을 읽어라." 라고 해서 일어난 일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이루어진 과정이다.
여기도 책! 저기도 책!
일단 집에 책이 많았다. 아니 순식간에 많아졌다. 처음부터 많이 샀던 것은 아닌데, 아이와 같은 책을 몇 십번 정도 반복해서 보고나면 내가 지겨워서 샀다. 한 권 한 권 그냥 산 것은 아니고, 아이가 좋아할만한 책, 내가 아이에게 전달해 주고 싶은 메세지를 담고 있는 책이었다. 그리고 아이 손에 잘 닿는 곳에 두었다. 아이가 책을 마구 어지르는 것도 그냥 뒀다. 자연스럽게 집 전체가 전면 책장이 되는 것이다. 그러다가 한 권씩 두 권씩 읽었다.
세 돌 전후까지는 집 전체가 전면 책장 역할을 하는 느낌으로 보냈던 것 같다. 여기저기 바닥에 책이 있었다. 그 이후부터는 책들이 나름대로 제 자리에 꽂혀있는 경우가 많다. 아이가 책을 심하게 어지르지 않은 시기가 독서량이 줄어든 시기와 일치하기도 한다.
아이에게 좋은 느낌 심어주기
돌 전에 우리 아이가 말로 표현하지는 않지만, '책을 보면 엄마, 아빠가 나한테 자꾸 이야기를 해주네.', '책을 가져가면 나랑 계속 잘 놀아주네.', '책을 보면 엄마, 아빠가 내 옆에 있어주네.', '좋다!', '재미있네!', '또 보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한 번, 두 번 좋은 기억이 생기면 아이는 자꾸 같은 책을 가져와서 읽어달라고 하기도 하고, 한 번 읽고 또 읽자고 하기도 하고, 특정 페이지를 계속 보고 싶어 하기도 하고.
우리 아이가 돌 전후에도 책을 좋아했던 가장 큰 이유는 장난감을 혼자 가지고 놀 때는 엄마가 집안일을 하러 가는데 (아이가 국민 장난감을 가지고 혼자 잘 놀기 시작하면 '엄마 잠깐 가스레인지에 갔다 올게.', '빨래 널고 올게.', '이유식 먹은 것 치우고 올게.' 하고 자리를 비울 수밖에 없었다. 최소한의 집안일을 중간중간 처리해야 하는 것들이 있었기 때문에.) 책을 읽으면 엄마가 계속 상호작용을 해주니까 책을 계속 보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사랑스럽게 쳐다봐주고, 재미있는 이야기도 해주고.
아이가 재미있어 하는 책 찾기
엄마가 봐도 재미있고 참신하다고 생각되는 책이면 아이 반응도 보통은 중간 이상이다. 물론 반응이 영 아닐 때도 있는데, 그러면 그냥 그 책은 한 번 본 것으로 만족하면 된다. 그렇게 우리 아이가 어떤 느낌의 책을 좋아하는지 어떤 책은 별로 안 좋아하는지 계속 관찰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아이 취향 책을 고르는 안목이 생긴다.
그리고 엄마가 봐도 그냥 그렇다면 아이 반응도 안 좋은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엄마도 재미없으면 아이한테 그 책을 읽으라고 하면 안된다는 생각이다.
이것도 반대 경우도 있긴 하다. 엄마는 그냥 그런데도 아이가 몇 십번씩 읽어달라고 할 때도 있으니.
도서관, 서점 가기
아이가 기관에 가기 전까지는 아이랑 같이 가면 좋은데, 난 코로나때문에 한참을 못 갔었다. 다른 글에도 적었지만 도서관에서는 종종 동화구연 세션 등이 있어서 엄마와 아이가 책이랑 친해지기에 참 좋은 공간이다. 코로나 터지기 전, 아이 돌전후까지는 아기띠하고 산책하다가 종종 갔었다.
얼마 전에 서점에 갔는데, 참 좋은 책이 많아 보였다. 이제는 꽤나 취향도 확실해져서 마음에 드는 책 고르려면 더 자세히 봐야 하지만. 온라인에서 책 찾는 것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는 공간이다. 안타깝게도 요즘 그림책은 비닐로 포장되어 있는 경우가 많지만 말이다. 표지 분위기, 제목을 보고 마음에 들면 다시 온라인에서 검색해서 상세 책 내용도 보고, 미리보기로 내용도 보고, 후기도 보면 대충 느낌은 온다.
유튜브 대신 엄마튜브
영상 노출 시기를 최대한 늦추는 노력은 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때 가장 좋은 수단이 책이라고 생각한다. 엄마가 아이와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하기 위해서는 대화를 지속할 수 있는 매개체가 필요한데, 책만큼 좋은 매개체가 없다.
어린아이에게 영상 노출을 많이 하면 좋지 않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꽤 많은 순간 조심하다가도 아이 밥을 먹일 때 돌아다니지 않게 하기 위해 영상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이때가 책을 읽어주기 좋은 시간이기도 하다. 아이랑 이 시간에 책을 참 많이 봤다. 매 식사 시간마다 책을 열 권정도 쌓아두고 읽었으니까.
자기 주도 이유식을 했기 때문에 아이는 일찍부터 스스로 밥을 먹었다. 주변은 나장판이 되기는 했지만. 이때 아이는 의자에 앉아있고, 밥을 먹으면서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시간이었다. 밥 먹는 시간과 밥을 다 먹은 뒤에 디저트 먹는 시간, 소화시키는 시간까지 내가 책을 읽어줬다. 나도 아이도 평소에 잘 안 읽던 책에서 새로운 재미를 발견하기도 하고. 이미 좋아했던 책도 다시 한번 재미있게 읽으면서 또 다른 재미를 찾기도 하고. 덤으로 아이는 아주 어릴 때부터 식사 시간에 식탁에 스스로 앉아서 스스로 먹었다. (다른 사람들이 참 부러워하는 부분이고, 남이 보면 참 알아서 잘 크는 애 같고 그런데, 사실 골고루 잘 먹는 아이는 아니라서 이렇다고 식사 시간이 행복한 편은 아니다.)
요즘은 사실 아이들이 쉽게 영상에 과도하게 노출되기 쉬운 세상이다. 영상이 모두 나쁜 것은 아니지만, 세 돌까지는 최대한 과도한 노출을 피하면 좋은 것 같기는 하다. 이 작은 목표 달성을 위해 엄마가 많은 노력을 해야 하기는 하다. 그 시간을 책, 다양한 놀이, 바깥 놀이로 가득 채워주면서 하루종일 아이가 영상을 보고 싶다는 생각도 안 들게 해 줬기 때문에. 두 돌 즈음부터 조금씩 영상을 보여줬지만, 일 년 반 정도는 영상을 틀어놔도 아이가 영상보다는 여전히 엄마와 함께 책을 읽고, 놀이를 하는 것을 훨씬 좋아했었다. (아이가 엄마와 책을 읽고 놀이하는 것을 너무 좋아해서 힘들기는 했지만, 참 잘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아이와 책을 통해 친밀도를 높이기 좋은 시기는 세 돌 전후까지라고 생각한다. 그 이후에는 아이랑 책을 많이 볼 시간도 없고, 아이와 엄마가 상호작용하는 빈도와 지속시간도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이를 위해서도 엄마를 위해서도.
아이를 위한 책꽂이
다양한 아이용 책꽂이를 활용할 수도 있다. 금전적으로 부담이 되지 않고, 집에 이런 것들을 둬도 공간적 여유가 있는 상황이라면 전면책장, 회전책장, 바퀴가 달린 책 수납함 등 아이의 흥미를 끌 수 있는 아이용 책 전시를 위한 가구를 구매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다만 나는 금전적으로 부담도 되고, 수명이 짧은 아이용 가구를 구매하고 싶지는 않았다. 최대한 기존 가구를 활용해서 버텼다. 처음에는 아이 책이 크기가 작아서 거실 테이블 아래 수납공간을 책꽂이처럼 사용했다. 딱히 아이 책을 둘 공간이 없어서 이렇게 했던 것인데, 지금 생각해 보면 최적의 공간이었다. 돌 전 아이의 뭐든지 어지르고자 하는 욕구를 자극하기에 좋은 공간이었다. 아이가 배밀이로 집안 여기저기를 누비고 혼자서 앉을 수 있게 된 뒤로는 이 공간에 있는 책을 흐트러트리는 재미가 있는지 이 공간에서 어지르면서 자주 놀곤 했었다.
책은 계속해서 늘어났고, 집에 있던 수납장, 우리가 쓰던 책꽂이는 점점 아이 책으로 채워지기 시작했고, 그래도 공간이 부족해서 벽 쪽 바닥을 기다란 1단 책장처럼 사용했다. 타요 미끄럼틀 안쪽에도 책을 두기도 했었다. 그러다가 침실에 둘만한 작은 책장 하나와 거실에 둘만한 2*3 작은 책장 하나만 아이용 책장을 구매했다. 아이 눈높이에 딱 맞는 책장이었고, 그곳에 아이가 좋아하는 책을 잔뜩 꽂아주니까 아이도 참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책 막 다루기
책 중고 거래를 염두에 두면 아이가 책을 깨끗하게 봐야 재판매가 가능하기 때문에 책을 험하게 다루는 것을 싫어하시는 분들도 계신 것 같다. 그 마음도 이해하지만, 조절 능력이 부족한 아이에게 책을 볼 때 조심해야 한다고 자꾸 주의를 주면 아이가 책 자체를 기피하게 되는 이유 중 하나가 되지 않을까. 그래서 망가져서 버리거나 중고책을 되팔 때 비싸게 팔기 어려울 것 같아도 걱정 없는 사용감이 꽤 있는 중고책을 구매해서 신나게 보는 것을 추천한다. 찢어도 마음 아프지 않고, 주스를 엎질러도 아깝지 않게.
나도 모든 책을 중고 책만 산 것은 아니고, 상태 좋은 중고 책을 사본 경험도 있고, 새 책을 사기도 해 봤는데, 이런 책들이 찢어지고, 망가지고, 주스가 엎질러지면 마음이 좋지 않았다. 아무렇지 않게 현명하게 잘 넘어간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언젠가 나도 아이도 좋아하는 구도 노리코 책에 아이가 주스를 엎지른 날 나도 모르게 과도하게 화를 냈던 것이 아직도 기억에 난다. 인기가 많고, 아이랑 잘 볼만한 책은 새 책을 사도 아깝지 않은데, 그런 책을 살 때도 되도록 책은 저렴하게 사야 한다는 주의이다. 아이랑 편하게 읽기 위해. 특히 아이가 어릴 때는. 이제는 아이가 책을 망가뜨리면서 읽지는 않기 때문에 이런 걱정은 크지 않지만, 여전히 편하게 읽기 위해 상태 좋은 비싼 중고책보다는 상태 안 좋은 저렴한 중고책을 선호한다.
그런데 이건 개인 취향이다. 새 책처럼 상태 좋은 책이 아니면 손이 안 가는 사람들도 있을 테니. 이런 경우에는 상태 좋은 중고책이나 새 책을 구매해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책으로 놀기
말 그대로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책으로 다양한 조형물을 만들어 보기도 하고, 놀이 공간을 만들고 놀기도 하는 것이다. 거실이 온통 책으로 덮이도록 노는 것이다. 이렇게 놀기 좋은 책은 추피 책처럼 사이즈가 작은 책들이 좋다. 책을 쌓고 놀다가 무너져도 위험하지가 않아서. 추피 책은 한 때 참 많이 읽기도 했고, 놀이할 때도 놀이 재료로 많이 쓰였다.
얼마 전에 조카 집에 가서 놀 때는 중간에 아이들이랑 책으로 침대를 만들고 놀기도 했었다. 아이랑 여러 개의 공간을 지닌 집을 만들고 놀거나 그냥 무작정 쌓고 놀았던 적도 많다. 아이랑 책 택배 배달 놀이도 하고. 종이컵과 책을 이용하면 꽤 높은 탑을 쌓고 놀 수도 있다. 탑을 쌓고 무너뜨리면서 노는 것을 좋아해서 꽤 재미있게 놀았던 기억이 있다.
책 내용을 기반으로 역할놀이 하기
아이랑 내가 책을 많이 본 가장 큰 이유는 이것 때문이다. 같은 컨텐츠를 공유하고, 이를 놀이로 확장해서 노는 것. 내가 아이랑 잘 대화하고, 잘 놀아주는 엄마가 된 것은 이것 덕분이다. 아이 책 덕분. (아이가 영상을 보기 시작하면 아이랑 TV를 같이 보면 된다. 아이와 놀이를 함에 있어 아이와 공유하는 컨텐츠가 꼭 책일 필요는 없다. 보통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는 아이가 부모와 함께하기를 원한다고 하는데, 적어도 그 때까지만 아이가 좋아하는 컨텐츠가 무엇인지 관심가져주고, 함께 하면 좋지 않을까 싶다.)
아이랑 하루종일 함께 할 때 거의 반나절은 책을 보면서 지냈다. 책을 계속 읽기만 한 것은 아니고, 책을 읽고, 책 내용을 기반으로 역할놀이를 삼십 분 동안 하고, 또 다른 책을 읽고, 또 역할놀이를 하고. 책을 읽을 때도 그냥 책에 있는 글씨만 읽는 것이 아니라, 아이와 책에 있는 그림을 관찰하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면서 읽었다. 이러다 보면 정말 시간이 금방 간다. 아이 입장에서는 책을 읽는다기 보다는 책이랑 논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아주 긴 시간 아이랑 책을 중심에 두고 놀 수 있었다.
세 돌 전후까지는 책이 우리 생활의 메인이었다. 하루에 적어도 몇 십 권의 책을 봤었으니까. 같은 책을 반복해서 읽은 것까지 합하면 하루에 백 권도 넘게 본 것 같다. (아이랑 책을 읽으면서 어떻게 상호작용했느냐가 중요하지, 권 수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그만큼 그냥 많이 봤다는 것을 수치화하기 위해 적어봤을 뿐이다.) 코로나 덕분에 이렇게 많이 본 것도 있다. 특히, 여름, 겨울에는 집에서만 보냈으니까 책이 없었다면 내가 아이랑 그 긴 시간을 실내에서 보낼 수 있었을까 싶다. 나도 이제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이렇게까지 책을 중심에 둔 육아를 하지는 못할 것 같다.
요즘은 하루에 많으면 열 권 정도 읽고, 평균적으로는 다섯 권 미만으로 본다. 어떤 날은 아예 책을 안 보고 넘어가는 날도 있다. 제목이 과거형인 이유는 요즘은 책보다 미디어를 좋아하는 아이이기 때문이다. 아이가 어릴 때 아이랑 책을 많이 봤던 것은 아이와 잘 놀기 위해 봤던 것이고, 이제는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도 줄어들었고, 아이도 컸기 때문에 지극히 정상적인 상태라고 생각한다. 여섯 살 된 아이가 책에 대한 거부감이 없고, 좋아하는 책도 스스로 고를 줄 아는 것에 만족한다. 앞으로는 점점 더 스스로 읽고 싶은 책을 찾아서 읽게 되지 않을까. 책에서 필요한 정보를 적절히 획득할 수 있고, 책에서 마음의 치유를 받을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기를 바랄 뿐이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