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도착한 곳은 바다가 멀지 않은 이랑 마을이었다.
트럭 운전사는 여자 둘이랑 애 하나가 이 많은 짐을 무슨 수로 나르냐며 못미더워했다. 밍밍과 도하가 뚝딱뚝딱 가구를 맞춰 드는 걸 보고 슬그머니 입을 다물었지만.
사실 우리 형편에 비해 꽤 멀쩡한 집이라 놀랐다. 도하 친구가 사정상 비어 있던 집을 소개해 줬다고 들었다. 밍밍과 도하는 일 층에 있는 작은 방을 쓰라고 했지만 나는 비좁은 다락방을 고집했다. 천장이 높아 아늑한 오두막에 들어온 기분이 들었다.
“산책 갈까?”
“좋지.”
밍밍의 말에 도하는 늘 그렇듯 무심하게 답했다.
“오하루, 너도 갈 거지?”
하루 종일 내 눈치만 살피는 밍밍과 도하가 신경 쓰였다.
“갈게.”
“그럴래?”
밍밍이 반색했다.
여름 끝자락이라선지 저녁 바람이 꽤 선선했다.
밍밍과 도하가 저만치 앞서 걸었다. 두 사람 뒤로 그림자가 길게 이어졌다.
“오하루!”
저만치서 밍밍이 손을 흔들었다. 도하도 우두커니 서서 내 쪽을 보았다.
내가 다가가자 도하가 피식 웃으며 어깨동무를 했다. 밍밍은 신이 나서 콧노래를 불렀다. 길지 않은 소나무 숲길을 지나자 바다가 펼쳐졌다. 무지개 모양으로 걸린 낡은 철제간판이 바람에 흔들거리며 끼익끽 소리를 냈다.
나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을 뻔했다. 오묘한 빛깔의 하늘과 그 빛을 고스란히 받아 반짝이는 바다가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밍밍이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어깨를 툭 치며 물었다.
“어때. 이사 오길 잘했지? 그치?”
밍밍은 마치 우리가 수많은 다른 선택지 중에서 마음 가는 대로 하나를 고른 것처럼 말했다. 선택지라곤 고작 하나밖에 없었으면서. 나는 삐뚜름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했다.
“우리 행복하자.”
밍밍이 한쪽 뺨에 입을 맞추려 하는 바람에 나는 펄쩍 뛰었다.
“아, 쫌!”
“왜에. 너무 사랑스러워서 그랬지. 도하야! 우리 하루 언제 이렇게 컸니?”
“하루 좀 그만 괴롭히고 이리 와서 노을이나 봐.”
도하가 긴 의자에 앉아 옆자리를 톡톡 두들겼다. 밍밍이 잽싸게 달려가 도하 옆에 앉았다.
나는 긴 의자 대신 모래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익명이 주는 여유를 최대한 누려야 했다. 보나마나 이 위태로운 자유는 금세 깨지고 말 테니까. 밍밍과 도하, 나의 엄마들은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행복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