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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독 Oct 17. 2023

"도대체 후회는 어떻게 안하죠?"

환승 우주

   아! 티켓팅에 실패한 이성의 주 업무는 크게 한 가지다. 불안감 제어, 즉 후회하는 것. 이성은 하나의 우연이 매듭지어지기 전까지 시뮬레이션 중독자로서 불특정한 미래를 드나든다. 만약 맞설 우연이 타인과 맞닿을 순간이라면 그 횟수는 수없이 불어나기도 한다. 

   ‘어떻게 생각할까?’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먼발치서 객석 반응을 살피느라 놓쳐버린 타이밍에 이성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탓하기 편한 과거로 재빠르게 방향을 돌린다. 물론 이 상태라면 계획대로 흘렀대도 다음 장면은 고착되어 있다.

   ‘아, 이렇게 할걸.’

   ‘그랬더라면 어땠을까?’

   과거에 가정을 던진다. 어쩔 수 없었던 사람처럼, 그때로 돌아가면 완전히 다른 선택을 할 것처럼 말이다. 이미 수많은 고민을 거쳐서 내린 결정이라는 사실은 잊었다. 과연 다른 선택을 했다면 오늘 같은 후회는 없었을까. 그때는 그게 최선 아니었을까. 다만 감정에 매몰된 상태에서 이성이 올바른 판단을 내렸을지는 미지수다. 앞서 말했듯 그건 한낱 불안함일 뿐 이성적인 게 아니니까.     


   우리가 즐겨보는 작품 속에는 ‘평행세계’나 ‘시간 여행’ 같은 소재가 자주 등장한다. 이런 공상적인 소재의 주인공은 언제나 뒤늦은 깨달음을 얻는다는 특징이 있다. 그런 장르에서 좋아하는 작품이 곧잘 탄생하는 건, 평소 내가 후회를 달고 사는 편이라 그런가.

   어쩌다 보니 또 물리학이다. 왜냐면 지금부터 우리는 시간 여행을 떠날 거고, 앞서 말한 소재들 모두 다중우주(평행우주) 이론에서 비롯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다중우주는 서로 다른 모습의 여러 우주, 평행우주는 하나의 우주에서 나누어진 같은 시공간의 우주를 말한다. 이처럼 세상 모든 것에는 그만의 본질이 숨어있었다.


       한 사람이 태어나는 순간 그 사람만의 우주가 시작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선택을 하고, 모든 선택의 찰나는 곧 여러 개의 평행우주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예로 소원과의 첫 만남을 떠올려 봤다. 언제 가게에 들를지, 어떤 선물을 할지, 혼자 아니면 누구와 함께 갈지. 동행자 선정부터, 요일, 타이밍까지 여러 경우의 수가 있었다. 그리고 어떠한 선택을 하냐에 따라 행복해질 수도, 기분이 상할 수도 있었다. 애초에 답장받지 못한 우주도 있었을 거고, 그 우연으로 인해 어떤 반전된 우주를 만날지도 모른다. 이렇게 평행우주는 모든 선택의 우주가 따로 존재하며 끝없이 파생된다. 그럼 만약 운명이 정해져 있대도 그건 하나의 우주에 불과한 게 아닐까.     


   시간 여행 영화에서는 현재에서 과거로 가기도 하고, 미래로 가기도 한다. 영화 <테넷>에서는 미래에서 현재로 와 미래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막는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현재지만, 미래에서 온 그들에게는 현재가 곧 과거다. 그렇다면 인생을 하나의 우주라고 표현했을 때 그냥 다른 우주일 뿐 시제라는 건 없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현재로부터 시간이라는 의미를 더했기에 그런 이름이 정해졌으며, 다음 우주를 선택할 뿐 모두가 각자의 현재를 살고 있다. 그래서 과거로 돌아갈 기회가 생긴다고 해도 현재 우주는 어딘가로 마저 흐를 것이기에 언제로 돌아갈지 고르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그건 고민거리가 아니다. 아직 우리에게는 타임머신이 없으니 멀어진 우주로 갈 일도 없다. 그럼 우리는 영화 주인공처럼 뒤늦은 깨달음이라도 얻을 수 없는 걸까. 대신 이것만 기억하기로 했다. 모든 인간은 본능적으로 결핍의 충족을 좇는다는 것. 위 말대로 다른 우주의 내가 어떻게 살던 나한테는 현재뿐인데, 이왕이면 현재의 나와 최상의 우주에 정착하는 거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예측하고, 직접 그 미래를 만들어 내는 것. 그게 내가 알게 된 최선을 택하는 방법이고, 후회하지 않는 과학적인 사랑법이다. 그럼 최상의 우주는 어떻게 알아낼 수 있을까. 그곳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첫째, 우리가 결핍의 충족을 좇는다면, 당연히 완전무결하게 충족된 모습이 스스로 바라는 나일 거다. 우선 객관화로 전반적인 인생 서사를 비추어 어떠한 결핍을 품어왔는지 최대한 알아내기로 했다. 어느 계절로부터 흘렀는지를 알아야 다음 계절이 그려졌다.

   둘째, 최상의 모습을 한 최종 우주를 떠올려 보고 현재 만들어진 나와 그날의 내가 가진 속성을 비교해본다. 내게서 묻어나온 이상적인 미래는 분명 결핍이 충족된 나일 테니까. 상대적으로 지금의 나에게 부족한 면모를 최대한 알아내어 하나씩 채워가는 삶을 사는 거다. 어차피 그게 본능 따라 한 사람이 나아갈 걸음이다.

   셋째, 감이 안 온다면 상황적인 무의식을 이용해 보기로 했다. 긍정이든 부정이든 어떠한 감정을 동요시키거나 이상하리만큼 반복되는 사건들을 떠올려서 공통점을 찾아볼 수도 있고, ‘내가 제일 겁내는 건 뭘까?’ 결핍이 유추될 법한 특정 상황을 내세워 현재 곤란한 처지에 처했다고 상상해 볼 수도 있겠다.


   누구나 아는 유명인이 된 어느 날 학교폭력 논란에 휩싸였다. 학창 시절 나는 말라깽이에 까불다가 호되게 맞은 적은 있어도 폭력은 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릴까. 이때 떠오른 사람은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지 생각해 봤다. 어릴 적 내게 영웅 같았던 존재와 닮아있을지도 모른다. 보통 그 존재가 지닌 특성들이 두 번째에서 떠오른 이상과 유사하다. 내 무의식에 떠오른 인물은 애초에 저런 논란 따위 터지지 않을 듯한, 만일 터져도 아무도 믿지 않을 것 같은 청렴한 이미지를 가진 분들이었다. 그리고 직접 나서지 않아도 주변에서 진실을 밝혀주는 장면이 그려졌다.

   “우리 수민이는 누굴 괴롭힐 깜냥이 못돼요. 맞았으면 맞았지.”

   옆에서 친구가 던진 한마디. 이건 고맙지만, 쪼끔 슬프다.     


   어떤 선택을 하는 순간, 그게 최선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들도 하나의 우주일 뿐이니 미래에서 왔다고 한들 알 수가 없다. 하지만 현재 필요한 것, 나아갈 이상을 알고 있다면 그중 가장 높은 확률지를 추측할 수 있다. 그럼 만일 정답이 아닐지라도, 그때 그것이 최선이었다는 사실은 명확하니까, 적어도 후회는 안 하지 않을까. 그동안 받은 영향에 따라, 이전 선택에 따라 바뀌는 역설적 의미처럼 틀린 답은 존재해도, 처음부터 딱 떨어지는 답은 없었던 게 아닐까. 세상이 알려주는 답들도 똑같다. 그것은 각자 경험에서 묻어난 참고용 힌트일 뿐, 무엇도 정해진 답이라고 할 수는 없다.

   2020년 스물여섯 늦여름. 앞으로 후회하지 않기 위해, 최상의 우주에 도착할 나를 그렸다. 그때의 나는 감정에 자유로운 사람이었다. 그러나 다른 우주에서는 더 일찍 그런 사람이 됐을지도, 전혀 다른 최상의 우주를 가졌을지도, 아무것도 모르고 그대로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수민이라는 사람이, 이 영화가 당신의 우주에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어디에도 완전한 답은 존재하지 않으며, 그런 우연으로 무장한 필연은 보배롭다. 어쩌다 마주친 우연에 내가 떠올랐다면서 간간이 연락해 오는 인물들이 있다. 어떤 목적이 있는 건 아닐까. 맞닿은 우연에서 기인한 다정을 의심했던 자신이 부끄러울 때도 있었다(물론 적중할 때도 있지만). 덕분에 우리는 지난 계절로 돌아가기도 하고, 관찰되지 않았던 각자의 시간을 나누어 담으면서 어느 예상 축에도 없던 새로운 관계를 설정하기도 한다. 맞닿은 찰나에 그들이 망설였다면, 마침 이전 날들이 없었고, 나 자신을 들려줄 준비가 되지 않았더라면 스치지 못한 우연들은 사뭇 다른 각자의 우주를 향해 전처럼 흘러갔을 거다. 어떤 면에서는 데미안과 싱클레어 같기도 했던 잎새와 나도 마찬가지다. 새삼 현재의 움직임마저 홀로 만든 게 아니었으며, 당신에게 도달할 이 영화가 우리의 감정을 이어줄 매개가 되어주기를 기대한다.

   중요한 건 내가 있는 곳은 단 하나의 우주고, 우리 모두 각자의 우주를 가졌다는 것이다. 내게서 비치는 최상의 우주도 관찰하면 존재할 거라고 믿는다. 나를 위한 최상의 우주가 어디인지 알았고, 그 우주에 도착할 나만의 진하디진한 결말은 만들어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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