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 난 작은 별
1995년 12월 어느 겨울밤, 경상북도 구미시 한 대형 병원에서 예정일을 앞당긴 하나뿐인 영화가 개봉했습니다. 그 영화는 무성영화였습니다. 흔한 오프닝과 달리 이 영화의 주인공은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거든요. 그로부터 일주일이 넘는 시간 동안 말이죠.
“흠… 설마 그때 소리를 못 내서 지금 이렇게 말이 많나?”
누군가와 처음 만날 때 우리는 직업으로 우선하여 자신을 소개한다. 어디서, 어떤 사람과, 어떤 신분으로 몇 살에 만나냐에 따라 이름 앞에 수식어만 살짝 달라질 뿐이다. 어쩌다 그 많은 대명사가 나를 치장하였는지. 학생, 피디, 감독 그리고 배우와 작가까지. 어떠한 수식들을 거쳐 어떻게 지금의 내가 되었는지. 진정 나를 사랑하게 되는 날의 소개는 ‘나는 그냥 이수민이야.’라고 말하고 싶다.
나는 동네에, 학교에, 어디든 한 명쯤은 있을 법한 까불이 하나에 불과했다. 하지만 특별했다. 남자는 세 번만 울 수 있다는데, 도입부터 한 번 굳어서 그런 건 아니고… 세상에 같은 사람이 없는 건 물론, 특정 단어로 묶인대도 다 다르니까. 심지어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태어나 같은 부모님께 자라온 쌍둥이마저 다른데, 유일무이한 우리는 당연히 특별하다. 우리가 아는 평범함조차 실은 특별함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릴 적에는 특별한 척하지 않아도,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잘 알았다. 꽤 오랜 시간 특별하다고 여겼고, 분명 나는 나에게 제일 충실했다. 울고 싶으면 울고, 싸고 싶으면 싸고, 마음 가는 대로 움직이는 인생의 주인공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조연이나 엑스트라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한다. 그때도 지금도 한 치 의심 없이 나라는 인생은 일인칭으로 똑같은데 말이다.
나를 사랑하기 위한 첫 단계는 ‘인지’다. 시작이 반이라는 흔하디흔한 대사에 담긴 본질로도 삼을 수 있겠다. 감정의 이유는 대개 어린 시절에 있었고, 그에 만들어진 나는 무엇을 가졌는지부터 떠올려 봤다. 먼저 머릿속을 스친 건 어릴 적 말릴 수 없는 악동이었다는 소문이 무색하게 소심하고 자기표현도 제대로 못 하는 현시점의 나였다. 스스로 의심에 휩싸였던 것도 이때부터였던 거 같다.
“넌 기억 안 나지? 네가 얼마나 말썽부렸었는지.”
할머니 댁에 가면 친척들은 무턱대고 묻는다. 얌전해진 때깔을 보고는 드디어 정상인 사람을 만난 듯, 과거를 잊은 죄수를 꾸짖듯 ‘그때의 너를 알라.’는 메시지로 진격한다. 혹시 나로 인한 고생을 어필하고픈 보상심리일까. 마침내 어린아이 기죽이기에 성공했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그들이다. 자신과 보낸 시절이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는 알지 못한다. 아무런 대꾸 없이도 항시 같은 절차를 요구하는 숙주가 존재하듯 동생들과의 비교도 이어졌다.
“저 정도면 약과야. 네가 쟤네보다 심했어. 넌 기억 안 나지?”
그래. 맞다.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서 사건의 당사자여도 증인석에 앉을 기회라고는 없으니, 가벼운 변호조차 내놓지를 못했고, 그들이 말하는 잘못이라는 조각을 어린 시절의 퍼즐로써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그들은 일관된 태도를 보여줬다면 차라리 나을 뻔했다. 얼마 전 그건 어린아이의 활발함일 뿐이었던 거 같다고. 나를 기죽이기 위한 행동이 본인들 착오에서 온 실수였다고. 같은 말을 이십 년 가까이 뱉은 후에야 갑작스럽게 고백했다. 그걸 왜 이제야 알려주는 걸까. 상처받은 감정에는 공소시효도 없는데. 덕분에 나는 나를 이해하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감정에 충실했던 나로서 살아왔다면 어떠했을지 괜히 궁금증만 커졌다.
어린 나는 자질구레한 사고를 친 적도, 원칙에서 벗어난 어떠한 그릇된 행동도 한 적 없는 비교적 활동성 있는 아이였다. 나를 제일가는 악동으로 기억하는 것도 듣고 보니 그들의 경험에 활발한 아이가 처음이었기 때문이었고, 그들의 행동과 엄마의 말을 미루어 보았을 때 대체로 내 표현은 싫어서 하지 말라고 하는 솔직함일 뿐이었다. 장난이라면서 움직이지 못하게 팔다리를 붙잡고 중요 부위를 희롱하는 삼촌들의 행동이 수치심을 남긴 건 분명했고, 안 한다는 말로 안심시켜 놓고 반복되었을 때는 타인에 대한 신뢰를 잃게 만들어 은근한 경계를 품게 한 건 사실이었다. 단지 아이는 본능적인 메커니즘을 따라 재차 괴롭힘당하지 않기 위한 발악을 했을 뿐이었다. 무뎌질 때까지 견뎌야만 하는 존재는 어디에도 없었으니. 그나마 다행인 건 우리 엄마는 그들 행태에 티끌만큼의 인정도 주지 않았다. 내가 보이는 반응이 틀린 게 아니라 삼촌들 장난이 심했고, 이 또래 아이들은 에너지 넘치는 게 정상이라면서 그들을 의심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실제로 위협에 처한 존재가 막연한 자기 의심에 빠지지 않도록 막아주는 건 오롯하게 봐주는 하나의 인정이면 충분하다고 한다. 틀리지 않았음을 알려줄 딱 한 사람. 감정에 매몰되기 전에 의심이라도 할 여지를 남겨주는 거다. 어릴 적 나의 행동이 유독 친가에서만 그랬던 이유도 이중성이 아니라 순전히 내 탓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반면 갓난아기 때부터 수시로 돌보아 주셨던 이모부께서는 모든 아이가 나와 같은 줄 아셨다가 큰코다쳤다고 하실 정도로 태명답게 내가 ‘순돌이’였다고 하셨듯이.
비슷한 사례로 초등학교 입학식 날 처음 뵌 담임선생님께서 방과 후 엄마께 손수 연락하신 적이 있었다.
“어머니, 수민이가 자꾸 뒤돌아보고 산만해 보이는데, 특별 관리가 필요할 것 같네요.”
아주 정성스러운 말로 정성을 요구하셨다고 한다. 하지만 이 말도 엄마 귀에 상시 작동하는 어불성설 필터에 사뿐하게 걸러졌다.
“수민이가 좋아하는 친구가 뒤에 있었겠죠. 저도 봤어요.”
마침 입학식을 참관하셨던 엄마는 수업 시간도 아닌 내 행동에 당연하게 이유가 있을 거라며 짐작하셨고, 정말로 뒷자리에는 다섯 살 때부터 친구인 영훈이 앉아있었다. 그러나 엄마의 진득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필연적으로 한계에 직면했다. 사회로 나아갈수록 아이는 갖은 의심에 둘러싸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엄마의 작은 의심조차 없었다면 끝내 이 영화는 존재할 수 없었겠지만, 외부의 시간이 늘어남에 따라 항상 그런 관찰자만 곁에 자리했던 건 아니었으니까. 이후에도 까불이 기죽이기 프로젝트는 곳곳에서 이루어졌고, 혼란 가득했던 그 시절은 모두 아이의 이성이 자리 잡던 시기였다.
세상은 본인이 속한 집단과 다른 특성의 존재를 이방인으로 여기고, ‘표준’, ‘평균’, ‘보편적’, ‘일반적’이라는 기준을 정해 자기들이 만든 가짜 안정을 추구한다. 유치원부터 12년 정규 교육, 아니 입시 과정을 지나 수능 보고 대학에 가고. 졸업하면 취업, 연애와 결혼, 출산과 육아. 그다음은 겪어온 과정을 아이에게 고스란히 물려준다. 그걸 평범함이라고 정의한 걸까. 지금까지 나름 나대로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알게 모르게 환경에서 무진장하게 영향을 받고 있었다. 나다운 것만큼 당연한 것도 없는데, 그런 유일함을 드러내기라도 하면 그것은 눈치 없음 혹은 용기라고 불리었다. 왜 어른들의 숨은 의도는 정답이며, 아이들의 순수한 반응은 오답일까.
객관은 없다. 주관이 모여 객관인 척할 뿐이다. 별은 태초에 빛나는데, 왜 세상은 빛나는 법을 강요하는 건지. 누군가 작은 별의 반짝임을 잘못되었다고 판단 내릴 때, 그만의 유일함은 조금씩 사라져갔다. 모두가 같은 곳을 선망하고, 같은 의미들을 지향하면서 단조로운 넝쿨에 얽혀 캐릭터가 사라지고, 사회화된 NPC들이 추종하는 나침반을 따랐다. 사회가 쥐여준 퀘스트에서 비롯된 일시적인 안정을 좇느라 불필요한 긴장은 평범함이 되었고, 그 평범함이 안정이라는 말로, 본래 없던 특색처럼 말이다. 어쩌다 인생이 밸런스 게임이 된 걸까. 그들이 정해준 인사법대로 당연하게 자신을 소개하면서도 프레임을 벗어날까 괜히 상대를 감시하고, 한편으로는 자신을 그렇게 바라볼까 불안하다. 흐름에 매몰돼 개성을 마비시킨 이 사회에서 우리는 관찰로서 존재했대도 나로서는 존재하지 못했다. 아주 세부적인 의미까지 삶의 안내서로 자리하였다. 왜 그 길을 가는지도 모르는 상태. 내디딘 곳이 어디인지 모르는 인생의 길치. 그런 삶에 찾아온 혼란은 필연적이었다. 분명 어릴 적 꿈꾸던 미래는 이게 아니었는데. 그 많던 아이의 소원은 어디로 간 걸까?
어른이 되어야만 했다. 누명 쓴 죄수처럼. 어디선가 제명당한 아이처럼. 그들의 무차별적인 추궁이 정답이 아니었음을 증명하기 위해서, 나라는 존재가 틀리지 않았다고 소명하기 위해 서둘러 어른이 되어야만 했다. 그러다가도 어느 순간 어린 시절을 갈망하고 선망하는 모순적인 우리다. 때로는 타인의 영향이라는 게 억울하기도 하다. 아무리 우리가 주인이래도 외부에서 망가트린 외양간을 어째서 집 잃은 소가 고쳐야 하는지. 사실 이 모든 건 새로이 자신을 만들어 가는 창조 과정이 아니라 인생의 주인공이었던 본래의 나로 거슬러 가는 퇴행이었다. 어쩌면 한때 너무나 당연해서 인지하지 못했던 자신을 되찾으려, 누구보다 스스로 사랑하고픈 바람에 아팠던 게 아닐까. 이제라도 억압에 괴로웠던 자신과는 이별을 택하고 친밀했던 시절의 자유로움을 되찾기로 했다. 그 과정에서 또 다른 무언가를 깨닫고, 넘어지고, 불안정한 경로를 나설지도 모르겠지만, 그게 뭐든 달라지지 않는 건 하나다. 정답은 나에게 있고, 어떤 선택도 내 몫이라는 것. 나의 이상은 ‘수민’, 바로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