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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 Mar 03. 2024

들어가며

초딩이랑 산을 간다구요?

"새로!! 새로!!"


아빠의 이름을 연신 부릅니다. 공부한다고 에너지를 다 썼다는 딸이 삼겹살을 구워 먹자고 하네요. 첫째 딸은 이제 고등학생이 됩니다. 온 방안을 핑크로 채우던 녀석인데, 어느새 소녀가 되었어요. 언제가부터는 아빠라는 호칭 대신 아빠의 이름을 부르는 딸입니다. 여기 한국인데요. 미국에서 살아본 적도 없으면서.


딸과는 어려서부터 여행을 참 많이 다녔습니다. 그냥 마음이 동하면 출발했어요. 갑작스럽게 휴가를 내기도 했고, 급하게 현장학습을 신청하기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 시기가 딸과의 관계형성에 있어서 정말 중요한 시기였어요. 물론 그때는 그냥 아이와 노는 것이 좋았던 건 뿐이었지만요.


딸과는 친구처럼 지냅니다. 단순히 아빠와 이름을 섞어 부르는 호칭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에요. 하루 있었던 일을 같이 나누기도 하고, 재미있는 쇼츠나 릴스를 보고 낄낄거리기도 합니다. 서로 장난을 치면서 치기 어린 농담을 하고, 힘이 약한 녀석은 영리하게 저를 꼬집고 깨물기도 해요. 재미있는 몸싸움입니다. 마음이 따뜻한 아이는 분명 현명하게 자랄 겁니다. (깨물줄도 알고요)


저는 학부모와 부모 사이라면 후자가 되고 싶은 아빠입니다.


정신의 과도한 부담과 이성의 지나친 훈련 때문에 정서가 등한시되거나 메마르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한스는 매일 아침마다 학교 수업이 시작되기 한 시간전에 입교식의 준비 교육에 참석하도록 되어 있었다.

<수레바퀴 아래서>  -헤르만 헤세-


"어머 딸이에요? 그렇게 안 보이네요. 아빠랑 딸 사이가 너무 좋아 보입니다."


여행지에서 오가며 지나치는 사람들에게 가끔 듣는 얘기입니다. 가장 기분 좋은 칭찬이기도 하지요. 딸은 밝습니다. 어른들에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법을 알고 있고, 어른들과의 대화를 어려워하지 않아요. 감사할 줄 알고, 호의를 당당하게 받습니다. 공중도덕을 지킬 줄 알고, 사회를 살아가면서 암묵적으로 약속한 타인에 대한 배려를 깊게 이해하고 있어요.


여행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익힌 탓입니다. 자연 속에서 뛰어놀면서 부모와 함께 여러 감정을 공유했고, 불편한 여행을 통해서 가정과 집의 안락함을 깨달았겠지요. 여행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집이 아닌 낯선 장소일 때도 있었고, 이야기의 주제는 영어 수학 보다는 하루의 일상이 될 수 있도록 노력했어요. 이런 시간과 과정들은 딸 아이가 사춘기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수 있는 힘이 되기도 했습니다.


화살처럼 곧게 뻗은 나무 줄기 사이로 아침 숲의 색다른 무더위가 감돌고 있었다. 햇살의 따스함과 이슬의 아지랑이, 이끼의 냄새, 그리고 송진과 잣나무의 바늘잎, 버섯 등이 서로 어우러져 발산하는 이 향내는 모든 감각을 마비시킬듯이 살랑거리며 가볍게 흔들리고 있었다. 한스는 이끼로 뒤덮인 언덕에 드러누었다.

<수레바퀴 아래서> -헤르만 헤세-


둘째 아이는 초등학생입니다. 5학년이 되고 나서는 덩치가 제법 커졌어요. 어려서부터 누나와 함께 여행을 다닌 탓에 제법 여행 경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당분간은 이 녀석과 단 둘이 여행을 다녀보려고 합니다. 산림청이나 블랙야크에서 정한 100대 명산이라는 좋은 놀이터가 있네요. 극기와 단련이 목적은 아닙니다. 체력이 좋아지기는 하겠지만 그것이 주목적은 아니에요.


어른들도 좋아하지 않는 등산을 초등학생이 좋아할 리 없지요. 그런데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의외로 아이들은 밖에 나가면 재미있게 잘 놀아요. 게임을 하고 영상을 보는 것과는 또 다른 재미가 있거든요. 맛있는 것도 먹고, 아이가 좋아하는 주제로 이야기도 나눌 거예요. 산행의 거리와 비례하는 게임 시간 쿠폰을 만들어 당근으로 사용할 겁니다. 물론 게임을 하기 위한 노동이라는 인식이 되면 안되겠지요.


예전의 저였다면 무조건 정상을 가야 했습니다. 힘들게 오른 만큼 얻는 것이 많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틀린 생각은 아닙니다. 다만 지금은 방향이 조금 바뀌었을 뿐이죠. 빠르게 가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니까요. 반드시 높은 곳에, 이왕이면 정상이면 더 좋겠다는 생각은 버렸습니다. 지리산에 천왕봉만 있는 것이 아니고, 설악산에 대청봉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수많은 나무와 숲, 계곡이 어우러져 만든 거대한 자연의 극히 우뚝 솟은 봉우리가 정상일 뿐입니다. 정상의 도달을 위한 걸음이 아닌, 자연을 배우는 걸음으로 함께 합니다.  


아이들은 아빠와 함께 하는 것을 사실 아주 좋아하거든요. 아이뿐만 아니라, 저 또한 성장할 게 분명합니다. 둘 다 마음이 조금은 더 커질 거예요.


아이와의 산행 기록을 읽고 함께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꼭 아이와 함께 하는 산행이 아니라도, 조금 느린 걸음을 통해 초심자도 즐길 수 있는 산을 소개하겠습니다.


자연 안에서 함께 성장하고 치유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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