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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 Mar 05. 2024

마니산_참성단

아이와 함께하는 100대 명산 놀이

코스 난이도 - ★★★☆☆

주차장 - 가능 (너무 넓음)

에어건 - 매표소 입구 O

근처 식사 - 입구부터 근방에 결정장애가 올 수준으로 식당 많음

코스 - 마니산매표소 → 참성단  (해발 471M)

입산 - 단군로 2.9KM , 1시간 40분

하산 - 계단로 2.2KM , 40분

특징 - 정상으로 가는 길 해안(경기만)과 영종도 주변의 섬이 계속 시야에 들어와 지루하지 않음



회색 하늘이 유난히 바다에 닿습니다. 어느 것이 바다이고, 하늘인지. 오늘 보니 강화 서해 바다의 흐릿한 색이 무척 하늘을 닮았네요. 아침 일찍 동네를 비추던 황금빛 세상은 온 데 간데 없이 그 자취를 감췄습니다. 날이 좋으면 좋은 대로, 흐리면 흐린 대로 그 자연함이 다 좋습니다. 회색 빛 바다와 하늘이 보내는 해풍에 잔뜩 몸을 맡겨 봐야겠어요.


참성단은 성화가 체화되는 곳입니다. 단군처럼 제를 올릴 건 아니지만, 둘만의 약속을 되새기는 마음으로도 나름 의미가 있군요. 우선 10개의 산을 다녀보자며 스스로 다짐해 봅니다. 극기를 위한 산행이 아니니, 서둘지 말고, 욕심내지 않아야죠. 느림 속 풍요를 찾아보겠습니다. 아이도 아이지만, 무엇보다 제가 꾸준해야 할 테지요. 


오늘따라 녀석이 순순히 따라옵니다. 평소라면 오늘은 얼마나 올라갈 거냐고 물으며 오만상을 찌푸리고, 도대체 아빠는 운동을 왜 해야 하는 거냐고 물으며 한숨을 푹푹 쉬어야 할 녀석인데요. 생각보다 표정이 밝습니다. 뭔가 꿍꿍이가 있나 봐요.


싸늘하다. 가슴에 비수가 나라와 가슴에 꽂힌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손은 눈보다 빠르니까. 녀석에게 가벼운 등산화를 한족. 다시 나에게 한 족. 이제 녀석에게 다시 한 족.

그 순간. 녀석이 한 마디를 건넨다.


“아빠 산에 다녀온 거리만큼 게임시간으로 교환해 주기로 한 거 기억나시죠??”


그거였군요. 좀 너그럽게 제시한 기준을 덥석 문 아들입니다. 구두약속에 그친 협상안이지만, 약속을 번복할 수는 없어요. 그래. 그러자꾸나. 1km 당 한 시간의 게임 쿠폰을 발행하기로 합니다.


마니산은 꽤 너그러운 산입니다. 산세가 깊지 않아 강화도 특유의 매력을 비교적 쉽게 내려다볼 수 있죠. 해안가를 낀 인천의 자그마한 섬들이 오밀조밀 모여있어 풍광이 좋습니다.


마니산은 코스가 많지 않습니다. 별 고민 없이 매표소로 향해요. 녀석이 마실 1L의 물과 사탕 몇 개만 담은 배낭을 메고, 어느새 꽤나 도톰해진 아이의 왼손을 잡고 한 발 두 발을 내딛습니다.

겨울이 지나가는 자리의 산은 겨울 내내 머금고 있던 수분을 모두 토해내지요. 아침을 여유 있게 보낸 대가로 산행 내내 진흙을 밟고 다녔습니다. 날이 풀리면서 무수한 발자국이 얼었던 땅을 녹였습니다.


집을 나서는 순간이 어려운 건 아이나 아빠나 마찬가지예요. 이불 밖은 위험합니다. 집에서 할 수 있는 편안함과 안전도 포기해야 하니까요. 아들 못지않게 게임을 좋아하는 아빠도 주말은 집에서 쉬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우선 나가자. 무엇이든 시작하는 것이 어렵지만, 행하고 나면 한결 수월하다.


매표소에 도착하니 알림이 눈에 들어옵니다. 땅이 몹시 질퍽되니 가급적이면 계단로를 이용하라고 하네요. 오르기는 계단이 편하지만, 아무래도 조미료 맛이 나서 계단은 재미가 없습니다. 게다가 아이의 경우는 계단을 오르게 될 경우 등산을 아주 고역스러운 운동으로만 인식할 수도 있어요. 가급적이면 아이가 땅과 흙을 밟을 수 있는 코스로 선택합니다.

계단로 코스는 1시간 30분 정도면 정상까지 왕복이 가능한 짧은 거리예요. 강화의 풍광을 감추는 심술 맞은 코스지만 운동이 목적이라면 속도전을 펼쳐볼 만합니다.


아이들과의 산행에서 우선시해야 할 것은 재미와 흥미예요. 자연에서 굳이 인위적인 가르침을 줄 필요가 없습니다. 저를 포함한 아빠들의 문제지요. 아이들은 아빠와 함께하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아빠도 그래요. 재미가 있다면 꾸준할 수 있어요. 그럼 되었습니다.

매표소를 3분 정도 오르면 갈래길이 나온다

매표소를 지나 3분 정도 오르면 갈래길이 나옵니다. 직선으로 오르는 계단코스는 1시간 10분, 산을 돌아 능선으로 오르는 단군로 코스는 1시간 50분이 소요돼요. 앞서 언급했듯이, 마니산은 꽤나 너그러운 산입니다. 정상 부근의 계단이 조금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천천히 오르면 그만이에요.

바다를 품은 마니산

산 중턱에 있는 마니산 인싸 냥이들을 만났습니다. 조용하게 냐옹~ 하면서 성시경 씨의 목소리를 흉내 내어 봤어요. 제 딴에는 환한 웃음을 얼굴에 담아 아이들을 불렀는데, 휭 하고 가버리네요. 괜히 냥이들을 불렀다가 아빠는 그래서 문제라며 아들에게 핀잔만 받았습니다. 다행히 멀리 도망가지는 않고 자리를 옮겨 이방인들을 탐색하는 냥이들입니다. 덩달아 저도 움직이지 않고 대치상태를 유지해요. 상황이 웃깁니다.


"아빠가 지금 저 녀석들 집에 쳐들어간 거예요."

아이의 말을 들어보니 맞는 소리입니다. 어른들이 자주 하는 실수예요. 기준은 스스로에게만 적용하면 되는데 무심코 선을 넘어 버렸습니다. 쉬고 있는 냥이들이 놀래지 않게 크게 돌아, 가던 길을 이어갑니다. 그래도 통통한 냥이들을 보니 아프지는 않은 거 같아 다행이에요.

숨은 냥이 찾기

산을 오르다 보면 다리에 힘이 빠지고 숨이 차오릅니다. 이때부터 어린이의 메서드 연기가 시작되는 시기지요. 다리가 힘들다며 제 손으로 다리도 두들겨 보고, 세상의 모든 근심을 담아 한숨도 푹푹 내뱉어 보기도 합니다. 그 모습이 귀여워, 속도를 조금 늦추지만 딱 그 정도면 돼요.


어린이는 생각보다 강합니다. 신진대사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지요. 근육이 작다 보니 쉽게 지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쉽게 충전되기도 합니다. 잠시 쉬면서 호흡을 가다듬어요. 좋아하는 사탕으로 당을 보충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잠깐의 휴식을 취함으로써 아이들의 근육과 심폐기능은 이내 회복돼요. 그리고 그것이 반복돼서 아이의 전체적인 체력은 몰라보게 성장할 겁니다. 아이의 마음 또한 넓어질 테지요.


등산 전 아이가 좋아하는 군것질 거리를 준비하는 것은 산행을 더 즐길 수 있는 좋은 방법입니다. 막걸리나 오이는 아이가 좋아하지 않을 테니까요.

능선을 따라 걷는 코스는 보는 재미가 있다

해풍에 몸을 담은 새가 유유자적 하늘을 비상합니다. 새와 눈이 마주쳐요. 꼬마는 자신의 눈높이에 마주한 새의 몸짓을 마냥 신기하게 쳐다봅니다. 늘 올려다보던 새였어요. 가까이 보니 까마귀의 몸집이 제법 큰 것도 알게 됩니다.


자연함에 조금은 몸을 맡길 필요가 있어요.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가 있는 반면, 거센 바람이 불기도 합니다. 비바람에 쓰고 있는 우산이 뒤집히기도 하고, 눈보라가 몰아치기도 하잖아요. 사람과의 관계에도 날씨가 있습니다. 직장동료도 친구도, 하물며 가족마저도요. 관계 속 날씨들이 모여 삶을 이루는 것이지요. 인력이 닿지 못하는 것들은 겸허히 받아들이면 됩니다. 풍광을 바라보는 아이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단군로를 택했음에도 계단을 피할 수는 없네요. 질퍽하게 신발에 묻는 진흙을 털어내고 한 계단 씩 오릅니다. 마른 발판 때문인지 계단이 반갑네요.

하늘에게 제를 올렸다는 참성단이 회색 구름아래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단군이 제를 지냈다던 그 예부터 이 장소에도 사람들이 존재했겠지요. 4천 년이라는 시간을 뛰어넘어 같은 바람에 안겨 그들과 함께 바다를 응시합니다. 잠시 눈을 감아 보니 기척이 느껴지는 것만 같습니다.

참성단 정상에 우뚝 솟은 소사나무. 여러 개의 가지가 나와 제 원하는 방향으로 고개를 틀었습니다. 오랜 시간 외롭지는 않았겠어요.

강화 참성단(江華塹星壇)은 인천광역시 강화군 화도면 마니산(472.1 m)에 있는 석제 제단이다. 고조선의 창업군주이자 한민족의 국조(國祖)인 단군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민족적 성지로 꼽힌다. 1964년 7월 11일 사적 제136호로 지정되었다. 2019년부터 보수와 관리(무속인 의식 등)로 인해 강화군에서 참성단 출입을 제한하였지만, 문화재청의 지시로 2023.7월부터 다시 개방 중이다.

-출처 : 나무위키

이번에는 강화의 가장 높은 곳에서 바다를 내려봅니다. 바다와 육지, 산이 만나는 이곳은 안개가 잦아요. 병인양요, 신미양요, 강화도조약까지 프랑스, 미국, 일본에 의한 침략의 시발점이었던 강화였습니다. 잦은 침략을 받았던 조선에서 유독 강하게 저항했던 흥선대원군에 대해 알아보는 것도 좋겠어요.


이제 하산입니다. 보통 아이들은 오를 때보다는 내려갈 때 자주 넘어집니다. 무게 중심 때문에 엉덩빵아를 찧기도 하고, 미끄러운 돌을 밟아서 발목을 접질리거나 무릎에 상처가 나기도 하지요. 정상에 다 왔다는 안도감과 서두름 때문입니다. 힘이 빠진 하체 탓도 있지요. 내려갈 때 잘 내려가야 합니다. 정상에 섰다고 우쭐할 필요가 없어요. 산도 삶도.

하산 길에 뛸 수 있을 정도로 힘이 남아있습니다. 

내려가는 계단로는 30분의 짧은 시간이면 충분합니다. 내려오고 나면 꽤나 깊은 산책로길이 나와요. 아이와 손을 잡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에 더없이 좋은 산책로입니다. 아이를 뒤로 돌게하고 두 손을 마주 잡아 걷습니다. 아이의 뒷걸음을 보조해 주면서 걷는 것은 산행의 마무리로 아주 좋아요. 비교적 사용하지 않았던 근육을 쓰는 측면도 있지만, 무엇보다 아빠를 믿고 거꾸로 걷는 아이의 웃음을 많이 보게 될 거예요.

매표소 입구에서 봐두었던 단군놀이터. 등산 시작 전에 괜히 힘을 뺄 수 있으니 이용은 하산 이후로 하는 것이 좋겠죠. 하산 이후에도 힘은 넘칩니다. 아이가 좋아하고, 재미있어하는 놀이라면 아이는 놀이를 하면서 자가충전을 하니까요. 전체를 살펴보니 꽤 스릴이 있습니다. 게다가 고마운 모래 놀이터네요.

꽤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친한 친구에 대해서도 들었고, 좋아하는 게임과 캐릭터도 알게 됐네요. 생각보다 많이 성장한 아이를 만나는 시간이었습니다. 다음을 기약하는 것을 보니 아이도 그렇게 나쁜 산행은 아니었던 모양이에요. 물론 아이는 5시간짜리 게임 쿠폰을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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