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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 Mar 12. 2024

관악산_국기봉 6봉

아이와 함께 하는 100대 명산놀이

코스 난이도 - ★★★☆☆

주차장 - 가능 (비산체육공원)

입장료 - 없음

에어건 - 산림공원 입구 O

근처 식사 - 메뉴도, 식당도 매우 많음

코스 - 종합경기장 - 관악산 산림욕장입구 - 전망대 - 국기봉(525m) - 산림욕장 - 종합경기장

거리 - 왕복 6km , 3시간 30분 (쉬는 시간 30분 포함)

특징 - 국기봉까지만으로도 충분한 산행을 즐길 수 있음. 삼막사 코스와 연주대 코스 연계가능.


세상에 천재가 참 많아요. 플레이스테이션 5 광고에 감탄한 적이 있습니다. DVD플레이어다, 온풍기다, 세트박스다 등 갖은 꼼수로 아내를 속이면서까지 게임기를 구매하는 아빠의 마음을 정확히 꿰뚫은 콘셉트 광고였어요. 당시 품절대란을 이겨내고 저도 하나 장만을 했지요. 여전히 PS5는 제 보물입니다. 주 사용자가 녀석으로 바뀌었지만요. 지난 마니산에서 녀석은 5시간 게임 쿠폰을 얻었습니다.


이번에는 관악산입니다. 오늘의 산행 코스는 6km가 조금 넘습니다. 아이와 함께 차에 올라 관악산 산림욕장(안양시 비산동)으로 목적지를 설정합니다. 주말에도 주차걱정이 없는 곳입니다.


서울과 경기도 과천, 안양의 경계에 있다 보니 관악산은 코스가 참 많습니다. 인근의 인구밀도를 증명하듯 많은 사람들이 산을 오르고 밟아 길을 튼 탓이겠지요.

서울대입구와 사당 관음사를 시작으로 삼막사, 연주대로 오르는 코스가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어느 곳이든 깊은 산내음과 함께 할 수 있어요. 오늘은 안양에서 시작합니다. 비산체육공원이 있어 주차가 쉽고, 멋진 경치를 함께 할 수 있는 코스예요.


아이에게 한계와 극복이라는 단어를 알려주고 싶을 때가 있었습니다. 과격한 경쟁에 노출된 채 회사가 정해주는 순위로 평가받던 시절이었지요. 회사의 유혹은 여전합니다. 모든 것을 바치라고요. 다행히 회사의 유혹은 이제 불혹입니다. 주말에 아이와 함께 하는 산행이 골프보다 즐거워요. 일찍 깨달았으니 그로써 다행입니다. 회사도 개인도 어느 한쪽으로 너무 치우치는 것은 좋지 않더라고요.


굳이 아이에게 한계와 극복에 대해 조기교육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빠르다고 좋은 것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류시화작가님이 말씀하셨지요. 천천히 가면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산도 삶도 그래요. 아이도 어른도 마찬가지입니다.

시작하고 전망대까지 1km는 계속 오르막입니다. 오르막이 나온다는 것은 언제고 다시 내려간다는 말이겠지요. 힘들다고 하면 쉬어 갑니다. 함께 웃어주고, 호흡을 맞춰요. 다행히 이곳은 경사가 그리 크지는 않습니다. 적은 수고로도 꽤 근사한 능선을 탈 수 있는데 그 순간의 풍광은 오롯이 내 것이에요.


이제는 서둘지 않습니다. 아이와 함께 걷는 것이 과정이자 결과입니다. 지금 하지 않으면, 나중에 아이가 컸을 때도 하지 못합니다. 나중은 없어요. 소복한 눈을 밟던 기억이 아이와 아빠의 마음에도 하나 둘 자리할 겁니다.

봄을 기다리는 늦은 겨울산에 흰 눈이 덮였습니다. 겨울산행의 독보적인 매력이죠. 황량한 겨울 산의 고독과 굶주림이 좋은 이유는 그들이 다시 제 빛을 찾을 걸 알기 때문입니다. 아이도 언젠가는 이 차가운 공기에 존재하는 황량함을 이해했으면 좋겠습니다. 크게 욕심내지 않아도 제 몫을 다하면 결국 다시 채울 수 있다는 것을요.

스틱은 땅을 짚었을 때 팔꿈치와 지면이 수평이 되는 것이 좋아요. 아빠병에 심하게 걸렸던 예전의 저였다면 스틱 사용법에 대해서 장황하게 설명해 줬을 게 뻔합니다. 저 녀석은 아빠가 무엇인가 알려주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저와 아이가 다르단 걸 깨닫는데 시간이 조금 걸렸지만, 그 인정이 주는 안정이 좋습니다. 스틱 두 개를 녀석에게 건네줬습니다. 위험하지 않으니, 사용하면서 스스로 깨닫겠지요. 스틱으로 인해 뒷사람이 다치지 않도록 당부 정도만 합니다.

관악산은 갓의 모양을 하고 있는 큰 산입니다. 넓은 산인만큼 인근 도심의 경치가 참 준수합니다. 1km의 작은 노력으로 얻는 과분한 경치예요.

요즘 산의 정상에 오르는 길마다 계단이 자리합니다. 등산객들의 안전을 위한 것일 테지요. 누군가의 노력과 땀이 많은 이들의 안전과 편의를 지탱합니다. 고마운 마음을 갖고 국기봉에 오릅니다. 제법 높아요. 어쩌면 상고대를 볼 수 있는 행운을 만날지도 모르겠습니다.  


관악산에는 모두 열한 개의 국기봉이 있습니다. 그중 한 곳인 6봉이에요.

"에베레스트 산처럼 국기가 있어요."

 푸른 하늘에 나부끼는 태극기를 보니 녀석이 먼가 뿌듯한가 봅니다. 에베레스트라는 단어를 언급하네요.

(조심해. 그러다 네팔행 비행기 탈 수도 있어.)

서울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눈사람입니다. 혼자는 아무래도 조금 외로울까 싶은 생각이었는지, 둘이 함께입니다. 국기봉 아래에 오르면 꽤 넓은 쉼터가 있습니다. 서두르지 말고 조금 여유 있게 자리해 봅니다. 안 그래도 급하고 빠른 세상인데, 하산을 서두를 필요가 없어요. 앞만 보고 오를 것이 아니라 한두 번씩 걸어온 길도 돌아보면서 천천히 걷겠습니다.

상고대가 보입니다. 새 잎이 돋기 전의 나뭇가지에 자리한 상고대가 빛을 머금고 반작이네요. 상고대를 처음 본 녀석도 나무를 쓰다듬고 만져봅니다.

"아빠 탕후루 같아요."

녀석 답습니다.

정상에서 신발에 아이젠을 착용하고 하산을 시작합니다. 군데군데 남아있는 눈과 녹지 않은 땅은 특히 조심해야 해요. 무게 중심을 조금 앞으로 둡니다. 늦은 밤 야식 메뉴를 고르는 것을 제외하고는 신중해서 나쁠 건 없습니다. 자연은 그대로입니다. 방심하고 경솔하지 않는다면 다치지 않아요.


사람의 성격은 얼굴에 나타난다고 합니다. 생활패턴은 체형에 드러난다고 하고요. 인간성은 우월한 위치에서 행하는 태도에서 나타납니다. 타인과 자연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필요한 세상이에요.


입구 초입에는 아름다운 잣나무 숲을 품은 훌륭한 둘레길이 있습니다. 코스를 조금 바꿔 산림욕장으로 내려와 둘레길로 마무리합니다. 아이는 슬슬 다리에 힘이 풀리는 모양이에요. 녀석이 밟아온 6km의 거리를 다시 상기시켜 줍니다. 여섯 시간의 게임 쿠폰을요.


물을 마시기 위해 잠시 잣나무 숲에 자리합니다. 깊은 숲을 지나는 바람이 수많은 잣나무를 만지며 소리 내어 인사를 합니다. 좋아하는 음악과 이기의 소리들이 가끔은 마음에 오히려 협착을 가져오기도 합니다. 아이와 함께 바람이 지나는 소리를 마음에 담아요. 그것만으로도 오늘 산행은 기적입니다.

함께 찾은 기적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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