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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필가 백송자 Mar 17. 2023

개심사 가는 길

세심동 개심사 마음을 씻고 마음을 여는 곳

청벚꽃이다. 묵언하는 수도승처럼 허리 굽혀 땅을 바라보는 무심의 얼굴이 소복소복하다. 가까이 서면 온몸이 오묘한 빛으로 금세 물이 든다. 몸도 마음도 땟국물을 말끔히 씻어낸다. 코끼리의 갈증을 풀어 준 연못의 전설을 읽으며 통나무다리에 걸터앉아 물길을 더듬어본다. 오색연등이 깊은 불심을 끌어안고 물속에서도 묵직하게 흔들린다. 세심동洗心洞 개심사開心寺로 걸어오면서 초록이 출렁이던 길을 묵향으로 태운다. 오월이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한가롭다. 소떼가 풀을 뜯는 초원이 지평선을 향해 끝없이 펼쳐진다. 어릴 적 워낭소리를 앞세우고 지게에 풀을 가득 짊어지고 사립문을 열던 아버지의 발걸음 소리가 들리는 듯하여 귀를 쫑긋 모아본다. 삼엄한 경계가 칭칭 감겨있는 휴전선을 뚫고 소떼를 몰고 가던 기업가의 눈빛도 되살려본다. 열린 창문으로 슬며시 들어오는 바람결에 꽃향기가 은은하다. 왕벚나무꽃향이다. 벚꽃이 지고 나면 뒤늦게 피는 왕벚꽃, 색다른 가로수다. 소담스럽게 핀 꽃잎이 자동차의 매연에 쿨럭이는 듯 흔들리는가 싶더니 바람에 흩날린다. 두 팔 벌려 떨어지는 꽃잎을 일일이 다 껴안아보고 싶다. 


 절 입구는 여느 사찰과 다를 바 없다. 길가에 쭉 늘어선 상점과 식당이 끝나는 곳에 시골아낙네들이 땅바닥에 장을 펼치고 있다. 상왕산 골바람 타고 온 푸성귀에는 농부의 땀방울이 흐른다. 갓 따온 듯 물기를 머금고 싱싱하다. 겨우내 갈무리 해두었던 자양분을 품고 세상 밖으로 나온 오가피, 옻, 두릅의 연한 새순에 눈길이 자꾸만 간다. 달짝지근한 칡즙에도 침을 삼키며 걸음을 재촉한다.


 우뚝 솟은 일주문 앞이다. 속세의 단추를 풀어내고 다시 일심으로 매무새를 가다듬는다. 되도록 일주문을 지나고부터는 말을 삼가는 게 나의 습관이다.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말 없는 대화를 한다. 나 아닌 모든 사물은 기꺼이 상대방이 되어 내 말을 끝까지 들어준다.


 구불구불 굽은 길이다. 도시의 길과는 다르다. 판에 박은 듯한 아스팔트 길이 아닌 사람의 길이다. 수많은 사연을 가진 사람들의 발길이 오고 가던 길이다. 산에 사는 동물들이 가로지르던 길이기도 하다. 오랜 역사로 길은 단단하다. 지금은 시멘트로 포장되어 있어 그들의 발길을 가늠할 수는 없다. 그래도 사람들의 이야기와 뭇짐승들의 흔적을 다 기억하고 있는 듯 포장길에서도 기운이 느껴진다. 흙의 본질을 가슴에 품고 더디게 걷는다. 

 굽은 길을 돌 때마다 만나는 돌계단, 한 칸 한 칸 밟으면서 생각한다. 삶이란 결코 반듯하지 않으며 첫 계단 없이 다음 계단을 오를 수는 없다. 줄곧 나란히 걷고 있는 며느리의 얼굴을 본다. 깨끗하다. 연둣빛 잎사귀처럼 그녀의 눈빛도 그렇다. 산새들의 청아한 리듬대로 걸음걸이도 경쾌하다. 바위틈을 흐르는 계곡물처럼 목소리도 맑다. 수령이 오래된 나무도 봄이 되면 잎을 돋우고 꽃을 피우는 것처럼 나도 덩달아 청춘으로 돌아간 듯 발걸음에 힘이 들어간다.


 첫 만남의 떨림은 오월의 햇살처럼 맑았다. 그 떨림의 파장을 가슴에 쟁여놓고 나는 고부간의 길을 생각했다. 세상이 변했다 하더라도 그 길은 결코 반듯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여러 번 모퉁이를 만나야 하는 굽은 길이고 단박에 한걸음에 뛰어오를 수 없는 돌계단이 이어질 수도 있다. 함께 걸으며 매 순간 마음으로 정성껏 다독여야 그 길은 단단해지며 비가 오고 눈이 내려도 움푹 파이지 않을 것이리라. 오래 걸어도 발이 부르트거나 생채기가 나지 않는 고른 길이면 더 좋으리라.  


 시댁은 개방적이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결혼 초 내가 마냥 편할 수만은 없었다. 어느 누구도 시댁의 위엄을 과시하지 않았으며 무조건 가풍을 따라야만 한다고 윽박지르지 않았다. 그저 내가 불편하여 엉거주춤 거리다가 뒤뚱거리며 넘어졌을 뿐이다. 충격은 크지 않았다. 늘 며느리라는 길 위에서 허둥대었지만, 다행히 돌부리에 차이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다. 


 한 세대가 지난 지금, 그녀도 내가 걸어온 길을 무심코 따라 오는 게 아닐까. 서로가 가는 길은 정해져 있고 가도 가도 만날 수 없는 애당초 다른 길이라고 처음에는 분명 여길 것이다. 하지만 어머님이 그러했듯 나 혼자만이라도 내 길을 그녀 가까이로 자꾸 기울여본다. 죽책 바가지라며 나무라는 이가 있어도 기울기의 축을 세우려고 하지 않으련다. 내게도 딸이 있다는 생각을 하며 길을 걷고 싶다. 언젠가는 모퉁이를 돌면 만나는 길이 나올 것이다. 그 길에서 같이 땀을 닦아주고 바람이 부는 언덕으로 서로의 가슴을 열어젖히며 마음을 잇대어 보리라. 


 개심사 가는 길은 마음을 담는다. 그 길 위에 서면 애써 말하지 않아도 소통한다. 빗장 걸린 마음을 열고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며 자연을 만난다. 뽐내지도 욕심 부리지도 않는 자연의 참모습을 본받으며 나란히 걷는다. 마음을 씻고 마음을 여는 곳, 개심사에서 건너오는 청벚꽃향기가 발끝마다 매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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