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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필가 백송자 Mar 17. 2023

詩적인 여행*

이병률 작가의 문학 콘서트

도시의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청량하다. 어둑어둑하던 공간은 아주 짧은 찰나에 몸피를 바꾸며 묵언에 든다. 사람도 사물도 일제히 귀 기울인다. 아주 가까운 곳에서 말을 걸어오는 이가 있을 것 같아 눈을 모은다. 이 때 성큼성큼 내딛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온다. 


 책을 통해 그를 만났다. 좋은 날이 많이 있었습니까, 라고 독자에게 아주 다정스럽게 제일 먼저 묻는다. 그가 내 대답을 기다릴 것 같은 설렘으로 다음 페이지를 넘기지 못한다. 한 발짝 뒤로 물러나 주춤거리며 답을 찾는다. 네, 많지요. 그럼요, 좋은 날이 많았지요. 앞으로도 많이 있도록 노력하렵니다. 그리고 다음 질문이 더 있기라도 하듯 빈 여백을 더듬어 본다. 손끝에 닿는 종이의 질감 위로 번지는 떨림의 여울은 온몸을 자극한다. 그 감성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마음을 여미며 읽은 책-이병률 산문집 「혼자가 혼자에게」이다.


 글의 행간마다 달라지는 건 작가의 시선이다. 이를 따라 숨이 차기도 하고 마냥 고요해지기도 한다. 책을 읽어내려 가면서 자주는 아니지만, 아주 가끔은 언젠가 책의 저자를 만나고 싶을 때가 있다. 특별히 물어보고 싶은 내용이 있거나 궁금해서가 아니라 그냥 옆에 앉아있고 싶은 마음이다. 말없이 있다가 한 번 정도는 서로 눈이 마주쳐 멋쩍게 웃으면 좋겠다. 상상은 기분 좋은 에너지이기도 하다. 책을 다 읽고도 한동안 섬세한 배려로 투박한 인사를 하는 그의 이야기에 삶의 의미를 찾는 시간을 가졌다.


 그가 대전에 온단다. 대전문학관의 문학콘서트<이병률의 詩적인 여행> 프로그램을 위해서다.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곧바로 신청했다. 선착순 모집이다. 하늘빛이 흐르는 저녁에 야외무대에서의 문학 강좌, 이 얼마나 시적인 시간일까. 기다리는 동안 가슴이 내내 콩닥거렸다. 


 대전문학관 야외무대에 오른 작가는 자연과 잘 어울린다. 여행을 많이 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말에는 여러 색깔이 있다. 문학관의 작은 숲이 봄여름가을겨울 각기 다른 모습으로 오는 이의 마음을 어루만지듯 그의 언어는 여행길에서 만나는 여러 풍경을 그리고 있다. 오늘은 각종 소음에 비틀거리고 구겨졌던 심신이 바르게 펴지고 중심을 되찾는 조용한 풍경이다. 이곳에서 두 팔 벌리고 서 있노라면 나무들 사이로 비치는 하늘빛도 품을 수 있다. 조금만 자연과 공감하면 내 마음에 시어가 파닥거리며 달려올 것 같아 메모장을 만지작거린다. 


 짧은 시간에 그가 전하는 말은 글의 씨앗이 된다. 씨를 심는 농부의 마음으로 글밭을 일구어나가다 보면 싹을 틔우고 크고 작은 열매도 맺으리라. 농부의 발걸음 소리에 영글어 가는 곡식처럼 내 글도 익어가겠지. 일상이 글이 되는 그는 나뭇잎들이 몸을 흔들며 전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지금이 바로 시적인 시간이라며 말을 조곤조곤 이어간다. 시詩적인 여행길에서 우리는 시詩를 만나고 이야기를 풀어내고 함께 설렌다. 혼자서 말하지만, 청중이 함께 말하고 들으며 웃고 기뻐하고 때로는 가슴 깊숙한 아픔이 밀려오기도 한다. 혼자라는 여행길에서 귀담아듣다 보니 여행에서 돌아온 느낌이다. 


 시를 짓는다는 건 마음을 표현하는 일. 시작詩作은 진솔한 언어의 선택을 뛰어넘어 은유적으로 툭툭 던져야 매력이 있다. 시의 맛은 상큼하면서도 떫은 구석이 있어야 하고 달콤함도 함께하여야 좋다. 마음에서 꿈틀거리는 갖가지 이야기를 시로 전하고 싶을 때가 있었다. 나 이외는 그 누구도 알아듣지 못하여도 시를 지으며 뿌듯했다. 하지만 한계는 금방 왔다. 논리적인 표현에 익숙한 내가 시적인 언어를 구사하는 데는 서툴고 어색했다. 시의 언저리에서 결국은 물러났다. 그래도 행간마다 삶이 농익은 시 한 편을 만나면 언제나 가슴이 붉게 타오른다. 


 그가 문학 콘서트에서 건넨 이야기는 시가 되어 내 마음에 자리 잡았다. 스치듯 지나가는 인연을 놓치지 않고 서사로 풀어내는 글의 힘을 생각한다. 사람은 식물이 아니기에 저마다의 동선이 있다. 어떤 이는 세계를 광활하게 돌아다니기도 하고 또 다람쥐 쳇바퀴 돌듯 좁은 공간을 움직이기도 한다. 그 어느 곳에서든 누구나 색다른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이럴 때 그저 좋아라, 하며 떠들다 보면 그 감성은 한낱 보잘것없는 먼지가 되어 날아가 버릴 수도 있다. 조용히 마음으로 담아와 귀한 언어로 그 감성을 풀어내는 글에는 생명이 있다. 내 발아래서 들리는 미물의 움직임조차도 심장을 뛰게 한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 하루를 이제는 더욱더 풍성한 시적인 시간으로 채워본다. 


 그와 시詩적인 여행하는 날이 다시 올까. 온다면 달빛 흐르는 날이면 더 좋겠다. 달이 전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으로 짧은 글 하나 지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가 좋아한다는 단어, 끌리다, 반하다, 오르다, 에 주어로 나를 넣어본다. 빛은 아니어도 내 존재를 희미하게 밝히는 등불로 순간 타오른다. 삶의 여행에서 잠시 숨을 돌리며 길을 걷는다. 그 길이 끝나는 곳에 다다랐을 때 책 한 권 품고 있으면 좋겠다. 그러면 내 사소한 여행길이 덜 외로우리라. 


 *대전문학관 문학콘서트<이병률의 詩적인 여행> 2022.6.2. 저녁 7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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