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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상순 May 06. 2023

내가 여기 있습니다

30. 보는 것과 느끼는 것



사람에게서 후광을 본 적이 있는가. 나는 후광만 본 게 아니라 코알라도 보고 그늘도 보고 검은 연기도 보고 호랑이도 보았다. 호랑이는 딱 한 번 보았으며 다른 꼭지(호랑이사람)에서 이미 말했다. 


가족이나 친척한테서 특별히 뭘 봤다고 말하기는 어려운데 조캐만은 예외였다. 그 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 신체적으로 이런저런 허약한 증세를 보여 보약과 홍삼을 먹인 적이 있었다. 그런데 홍삼제품을 먹였을 경우 내 눈에 조캐는 잿빛이 되어 시들시들 사위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친정과 나의 집은 문턱이 엄연히 다름에도 불구하고 “대체 애한테 뭘 먹인 거냐?”라고 하면서 다시는 먹이지 말라고 소란을 피운 적이 있다. 조캐의 부모와 할머니는 나를 문제라고 보았기에 나 몰래 먹이거나, 먹여놓고는 안 먹였다고 속이기 일쑤였다. 가족들의 판단과는 상관없이 홍삼을 먹은 아이는 자꾸만 시름시름 드러누웠고 밥 먹는 것도 거부하기에 이르렀다. 홍삼을 먹이지 않으면 다시 살아나 명랑을 되찾았다. 같은 일들이 여러 번 반복되면서 결국 그 아이는 홍삼으로부터 해방되었다. 


동료소설가를 통해서도 비슷한 체험을 한 적이 있다. 한 여성작가는 어떤 날은 몸에 검은 연기가 가득 차 있고 어떤 날은 그것을 말끔히 비운 채 아주 맑은 상태를 회복하였다. 그러다가 이 두 가지 차이를 만든 게 글쓰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장편소설을 주로 쓰던 그녀는 한 번 시작하면 수개월 동안 일에 집중하고 매달렸는데 이때 그녀를 만나면 아주 가볍고 맑은 기운을 되찾아 쳐다보고만 있어도 사랑스러운 느낌을 주는 여자가 되었으나 글을 쓰지 않을 때는 그녀의 몸 자체가 막힌 굴뚝같았다.  


소설 쓰는 남자 후배는 어떤 날은 대단한 선인으로 보이고 또 어떤 날은 폭발하기 직전의 짐승으로 보였다. 나는 그 소설가를 만날 때마다 오늘은 개구쟁이가 나타나셨네, 오늘은 조선시대 선비네, 오늘은 그 몸에 무서운 짐승이 드셨는 걸, 하고 놀려 먹었다. 


이 모든 것은 본 것이지 느낀 게 아니라는 것이 내가 말하고자 하는 포인트다. 내가 본 이런 것들은 그 사람의 실제 모습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처음 봤을 때 아름다운 후광이 드리운 사람이라고 해서 그가 내 인생에서 후광 역할을 한다는 의미는 조금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그냥 독버섯을 삼킨 곰이 낭떠러지 위에서 일시적이면서 가벼운 환각에 이르는 것(영화 '베어'(1988년))과 비슷한 건지도 모른다. 눈으로 본 것이 나쁜 감각을 동반하든 좋은 감각을 동반하든 그것은 그냥 그 순간의 어떤 나타남이므로 사람에 대한 판단, 혹은 확신의 빌미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그러한 나타남이 도대체 무어라는 이야기냐 답답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의 나로서는 더 이상 알고 있거나 말할 수 있는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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