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식은 레몬차
순대국밥 뚝배기가 미지근하게 식었을 무렵, 그가 나에게 아이가 몇 학년이냐고 물어서 없다고 했더니 조금 과하다 싶게 놀랐다. 머쓱해진 김에 나는 요즘 사유리라는 연예인이 사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나는 마흔이 되었을 무렵 아이 하나는 낳아 보고 싶다는 열망으로 혼자된 남자와 결혼했으나 그는 아이를 더 이상 원하지 않았고 그럼에도 요구하고 설득하며 싸우다가 헤어지고 만 케이스였다. 전남편이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이유가 이미 있는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인상을 받았던 점이 지금도 그 결혼을 좋지 않게 기억하는 이유였다. 그런데 사유리가 사는 것을 보고 저렇게 하면 되는데 나는 왜 구태의연한 생각 속에 갇혀 지냈던 것인지 후회가 된다고 했더니 “막 나가시는 건가요?” 해서 한참 웃었다. 그쯤에서 밥을 다 먹은 우리는 마침내 거대 쇼핑몰을 빠져나와 손님이 적은 카페를 찾아갔다. 달리 회상할 만한 추억을 공유하고 있지 못했던 터라 거기에 가서도 우리가 아는 사람들, 알았던 사람들을 화제에 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때마다 그는 화제에 오른 사람의 입장을 자신이 나서 정리하려고 했다. 상대방의 표현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어법으로 천하통일을 꽤 하려는 것은 요즘 사람들의 흔한 말법이기는 했으나, 어느 순간 나는 한 번쯤은 제대로 반박하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고 그가 다시 자신의 수입을 좌지우지하는 전처를 비난했을 때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과감하게 말을 자르고 들어가 그녀를 편들었다.
“그분이 똑똑한 거라고 봐요. 그러지 않으면 재산이 다 날아가고 말 걸요. 나중에 아이들 독립할 때 필요한 전셋돈이라도 모으려면 문지기 노릇 해야죠. 문지기 한다고 월급 주는 게 아니라면 그분이 하자는 대로 하는 게 나아요.”
그는 별 대꾸 없이 침묵을 지켰다. 혼란을 주는 데는 성공한 것 같았으나 내 기분이 통쾌해지는 것과는 무관한 헛소리였다. 아이들 엄마는 지금 어디 살며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그냥 있다’라고 하는가 싶더니 어느 결엔가 ‘파트너는 따로 두고 있다’라는 파격적인 발언이 튀어나왔다. 당황하지 않고 “가까운 곳에 살고 있나 봐요.”라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다. 나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워밍업이 끝났다는 확실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오늘 만나자고 한 이유가 뭐예요?”
그가 즉각 대답했다.
“아, 그런 거 없는데, 있어야 해요?”
“아니, 뭐.”
“그냥 개인적으로 한번 만나고 싶더라고요. 작가라니 신기하기도 하고 작가들은 어떻게 사나 궁금하기도 하고.”
궁금증이 좀 풀렸느냐고 물었더니 그런 것 같다고 했다. 그럼 됐네요. 나는 식어 버린 레몬차를 냉수처럼 들이켠 다음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일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