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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인 Feb 28. 2024

3화  오빠의 죽음을 알리지 마라

남편이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전화를 받으니 개딸 안부부터 묻네요.

“솔이는 잘 있나?”

평소 같으면 부산스러우면서도 들뜬 목소리일 텐데 이상하게 목소리가 갈라져 있었습니다. 목이 메는지 남편이 헛기침했습니다. 제가 임시보호자로서 솔이를 맡은 지 이레째라 새삼스럽게 목이 멜 까닭이 없을 텐데요. 목이 메기로 따지자면 제 목이 더 메야죠. 똥오줌에, 이리저리 날리는 털에, 아무거나 물어뜯기에, 분리불안까지 있어서 쓰레기 버리러 나가기도 힘들었습니다. 지치다 못해 감정이 탈수되어 버린 저는 메마른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괜찮은데 왜?”

“응, 아니, 궁금해서. 뭐 하는데?”

저는 멈칫했습니다. 뭐 하는데?라는 물음은 솔이가 오기 전엔 늘 저에게 묻는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젠 헷갈리네요.

“솔이? 나?”

“솔이.”

음… 그렇군요….

“자고 있어.”

“그러면 다행이고.”

아니 이 사람이, 저를 진짜로 나쁜 계모라고 생각하는 걸까요.

“내가 솔이 구박할까 봐 확인 전화했어?”

“아니, 그냥 잘 있는지 궁금해서….”

“그 말이 그 말이지.”

남편이 착잡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소주가… 죽었어.”

“엉? 어쩌다가?”

“몰라. 아침에 일어나 보니 죽어 있더래.”

아, 그래서 솔이 걱정이 됐나 봅니다. 형제는 닮는다잖아요. 그나마 다행인 것은 둘이 동배가 아니라는 겁니다. 소주는 두 번째 배에서 태어났고 솔이는 세 번째 배에서 태어났습니다. 성별도 다르네요. 솔이와 달리 소주는 수컷이거든요. 얼마 전에 솔이가 비닐하우스에 갔을 때 소주는 누이를 반갑게 맞아 즐겁게 놀아주었지요. 친엄마는 오랜만에 친정 나들이를 한 딸에게 컹컹 짖어댔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소주는 건강했습니다. 갑자기 죽을 이유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소주의 죽음은 쭉정이를 닮은 미스터리였습니다. 하나하나 꼼꼼히 까뒤집고도 끝내 진실의 알맹이를 찾지 못한 남편은 아마도 그 싸움 때문이 아닐까 추측했습니다. 그 싸움이 어디서 어떻게 일어났는지 남편이 들려준 이야기는 이랬습니다.      

몇 주 전부터 소주가 빨빨거리며 어디로 갔습니다. 남편도 외국인 직원 부부도 소주가 어디로 가는지 몰랐습니다. 비닐하우스 안에도 없고, 주변의 논밭에도 없고, 지렁이가 많은 개울에도 없고, 소주 친구인 몰티즈네 비닐하우스에도 없어서 남편은 간식 줄 시간조차 없다고 투덜댔습니다. 그러면서도 걱정했어요. 혹시라도 솔이의 동배 언니처럼 농약을 먹지 않을까 싶어서요. 솔이가 막 2개월이 되었을 땐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솔이 언니가 입에 허연 거품을 물고 죽어있더라, 했습니다.

남편의 말에 의하면 비닐하우스에서 키우는 개들은 이렇게 잘 죽는다고 합니다. 주위가 다 비닐하우스와 논밭이라 개들이 먹으면 안 되는 것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어떤 농약은 꼭 개 사료처럼 생겼거든요. 비닐하우스 한쪽에 닭을 키우는 사람 중에는 맛있는 고기에 쥐약을 돌돌 말아 던져놓는 사람들도 있고요.

먹지 말아야 할 것을 먹는 생명체는 개들만이 아닙니다. 한 번은 비닐하우스에서 고양이가 야옹야옹 울었습니다. 샅샅이 뒤져보니 구석진 비닐 속에 새끼고양이 한 마리가 축 늘어져 있었습니다. 급하게 우유를 사다가 먹였더니 생기가 돌아서 살았구나, 생각했는데 다음 날 아침 새끼고양이는 허연 거품을 물고 죽어있었습니다.      

그나저나 소주 이 녀석은 어디를 그렇게 빨빨거리며 쏘다니는 걸까요?

궁금증이 따지 않은 고추처럼 빨갛게 익은 어느 날, 남편은 소주가 가는 곳은 몰라도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알게 되었습니다.

소주는 생애 첫 연애를 하고 있었습니다. 1년 4개월의 견생, 사람으로 치면 열여덟아홉 살로 한창 호르몬이 왕성한 사춘기죠. 여자친구는 누굴까요?

소주가 연애한다는 말을 건너 건너서 들은 터라 남편도 여자친구가 누군지 알 수 없었습니다. 말이란 게 건너 건너서 오다 보면 잎사귀가 떨어지고 가지가 부러지고 작은 순만 달랑 남아서 전해지기도 하잖아요. 어떤 처자일까, 너무도 궁금했던 남편은 주변의 개들을 전부 떠올려보았습니다. 딱히 그럴 만한 처자가 없었습니다. 남편이 아는 주변 개들은 수컷 아니면 다 남자친구가 있는 암컷이었거든요.

‘어디서 유기견 처자를 만난 걸까?’

남편이 외국인 직원에게 물어보니 그는 모른다고 했습니다. 여기저기 물어봐도 모두 떠돌이 암캐를 본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던 며칠 뒤 남편은 졸래졸래 어딘가를 향해 걸어가는 소주를 보게 되었습니다. 일이고 뭐고 만사를 제쳐두고 녀석을 뒤따라갔죠. 어, 그런데 녀석이 저 아래 비닐하우스에 사는 암캐한테로 가네요.

“아이쿠야! 하필이면…!”

남편은 한숨을 푹 쉬었습니다.

“내 자식 같으면 뜯어말리고 싶더라. 다리몽댕이를 부러뜨려서라도.”     

그러나 소주는 제 가슴에 핀 하얀 고추꽃 같은 첫사랑을 포기할 수 없었나 봅니다. 눈만 뜨면 그녀를 찾아갔습니다. 그녀는 까만 코 가운데 분홍색이 벚꽃잎처럼 박혀 있는 하얀 개였습니다. 눈빛은 봄 들판의 아지랑이 같아서 철부지 소주를 포근하게 감싸줄 만큼 보드라웠고요.

하루는 집으로 돌아오는 소주를 남편이 보았는데 발걸음이 가벼워서 하늘을 날 것 같더라, 했습니다. 표정은 천국에 있는 듯이 황홀했고요.

그 말을 전할 때 남편은 몹시 기뻐했습니다.

“소주가 해냈어! 골키퍼 있다고 공이 안 들어가는 거 아니더라고. 녀석은 알고 있었던 모양이야. 사랑이 울산바위처럼 움직이는 거라는 걸.”

그랬습니다. 그녀는 이미 남자친구가 있는 암컷이었습니다. 출산 경험도 한 번 있었고요. 그녀가 새 남자와 헌 남자 사이에서 아슬아슬 줄타기하는 모습을 낱낱이 지켜본 그녀의 주인, 즉 개사돈이 말했습니다.

“남자친구가 여기 오면 냄새를 그렇게 맡아 대더라고. 개 코가 그냥 개 코겠어? 기똥차게 냄새를 맡으니까 개 코지.”

그녀의 남자친구는 덩치가 커다란 황색 개였습니다. 그에 비해 소주는 5kg이 채 안 되었고요. 그날도 그랬습니다. 소주가 다녀가고 한참 뒤에 여자친구를 찾아온 황색 개는 낯선 존재가 남긴 희미한 냄새를 맡았습니다. 킁킁. 눈을 희번덕거리며 여자친구와 개집과 개집 주변을 샅샅이 탐색했습니다. 의심할 바 없이 코를 간질이며 자극하는 이 냄새는 바로 수컷의 냄새. 황색 개는 분노했습니다.

‘어떤 놈이! 어디 감히 내 여자에게 들이대! 요놈, 잡히기만 해 봐라.’

아무것도 모르는 소주는 첫사랑에 옴팍 빠져 있었습니다. 소주에게 첫사랑은 지난여름 한 입 먹어본 적이 있는 아이스크림 맛이었습니다. 시원하면서도 달콤한데 금방 사라져 버려서 아쉽고 목이 마른. 그 감질나는 목마름에 소주는 두려움마저 상실했습니다. 경쟁자가 어떤 수컷인지, 사랑의 파국 뒤에 어떤 맛이 기다리고 있을지 생각지 않았습니다. 차라리 첫맛은 밍밍해도 질경이처럼 질긴 사랑을 꿈꾸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날은 결국 오고야 말았습니다.      

알콩달콩한 그들 앞에 커다란 황색 개가 서 있었습니다. 황색 개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습니다. 쏘아보는 눈빛은 험악했고 으르렁거리는 이빨은 날카로웠습니다. 산맥같이 억센 등줄기. 그 너머에 숱 많은 긴 꼬리가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처럼 꼿꼿하게 서 있었습니다. 사나운 발톱을 드러낸 뭉뚝한 발은 쪼그맣고 맹랑한 수컷을 단숨에 제압할 만큼 드셌습니다. 윤기 나는 까만 코는 낯설면서도 익숙한, 엷으면서도 진한 수컷의 냄새를 맡았습니다. 황색 개는 확신했습니다.

이놈이 바로 그놈이구나!

털끝에 와닿는 날 선 서늘함에 몸을 돌린 소주는 황색 개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그 순간 일찍이 느껴보지 못한 아찔한 두려움이 소주의 전두엽을 때렸습니다. 목덜미 털이 쭈뼛쭈뼛 바늘처럼 곤두섰습니다.

도망쳐!

바로 당장!

그러나… 어쩌면 이것은 절호의 기회잖아요? 사랑하는 그녀를 독차지할 기회. 개들의 세계에선 승자가 강자이고 강자가 암컷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것이 법이니까요. 소주는 곤두선 털 아래로 두려움을 꾸깃꾸깃 밀어 넣었습니다. 사랑은 용감한 자가 얻습니다. 소주는 턱을 빳빳이 쳐들었습니다.      

황색 개가 소주를 향해 달려들었습니다.

소주는 용감하게 맞섰습니다.

깨깽!     

소주는 여기저기 상처를 입고 쫓겨났습니다. 패배의 맛은 라일락 하트 잎사귀보다 더 쓴맛. 이제 더는 그녀에게 갈 수 없을 것입니다. 가더라도 그녀가 전처럼 살갑게 맞아주지 않겠죠. 소주는 다리를 절뚝이며 힘없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모습을 남편이 보았습니다. 남편은 외국인 직원을 불러 소주를 안게 하고 몸을 살펴보았습니다. 몸 여기저기에 긁힌 자국이 있었고 한쪽 다리가 벌겋게 부어올라 있었습니다. 그때 남편은 그것이 험악한 사랑싸움 끝에 입은 패배의 상처라는 걸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소주를 다그쳤습니다.

“야, 너 어디서 이랬어? 똑바로 말 못 해! 자슥이 말이야, 빨빨거리며 뭔 짓을 하고 돌아다니는 거야?”

소주가 머리를 푹 수그렸습니다. 남편이 외국인 직원에게 말했습니다.

“약 발라 줘. 여기, 여기, 여기.”

“알아, 알아.”

“지금.”

“네.”

다음 날 보니 비록 다리를 절고 있어도 소주의 상태는 괜찮아 보였습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남편이 외국인 직원에게 말했습니다.

“동물병원.”

“안 돼. 돈 많이 줘. 약.”

다음 날 소주의 상태는 더 좋아진 듯이 보였습니다. 다리도 그리 절지 않았고 남편이 던져주는 간식도 잘 받아먹었습니다. 남편은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 가지만 빼놓고요. 소주가 여자친구에게 가지 않고 비닐하우스 안에서만 놀고 있는 것이 영 수상했습니다.

“날마다 뭐 빠지게 쫓아다니던 놈이. 야, 너 실연당했냐?”

녀석이 대답을 안 해 주니, 좀 일찍 퇴근한 남편은 소주의 그녀가 사는 비닐하우스, 개사돈의 일터에 들렀습니다. 거기서 남편은 비로소 사흘 전에 있었던 수컷들의 싸움을 알게 됐습니다. 소주의 몸에 있던 상처는 황색 개의 발톱 자국이었고, 다리에 있던 상처는 황색 개의 이빨 자국이었습니다.

씁쓸한 기분으로 집에 돌아온 남편이 말했습니다.

“소주가 사랑싸움에서 졌대. 자슥이 말이야, 넘어다볼 만한 여자를 골라서 넘봤어야지. 내일 동물병원에 데리고 가 봐야겠어.”

“괜찮다며?”

“개한테 물린 상처는 잘 치료하지 않으면 괴사해.”

그러나 남편은 소주를 동물병원에 데리고 갈 수 없었습니다.

외국인 직원 부부는 소주의 주검을 쓰다듬으며 슬피 울었습니다. 그들은 잘 나아가던 소주가 왜 갑자기 죽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간밤에도 약 잘 발라주고 잘 자라 인사했는데 그것이 왜 마지막 인사가 되었는지…. 어쩌면 그들은 영원히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남편의 언어는 그들을 이해시키지 못했습니다.      

“농약을 먹은 건 아니야. 입가에 허연 거품이 없었어. 깨끗했어. 살아있는 듯이 죽어있었어. 그러니 더 이상하지. 다리 상처로 인한 파상풍일까?”

남편의 말에 저도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혹시 황색 개와 싸울 때, 커다란 황색 개의 뭉툭한 발에 맞아 쓰러지면서, 큰 감자만 한 소주의 두개골에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실금이 생긴 건 아닐까요… 그 실금에서 천천히, 조용히, 조금씩 출혈이 이어진 건 아닐까요….

그러나 추측은 추측일 뿐 진실일 수 없습니다. 추측을 놓고 갑론을박을 해봐야 죽은 소주가 살아나는 것도 아니고요. 부검으로 진실을 확인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요. 저는 말문을 닫아걸고 침묵을 했습니다.

“가슴이 아프다…”

그 말을 들으니 남편에게도 소주에게도 미안했습니다. 남편이 끝없이 소주 이야기를 해대서 남편뿐만 아니라 소주까지 원망했거든요. 소주를 향한 남편의 사랑은 마치 첫사랑 같았습니다.

“소주야~.”

“아니고 솔이.”

“아, 솔이야~.”

“개아빠 맞아? 개딸 이름도 몰라?”

소주 이름은 남편의 입에 찰싹 붙어 있어서 떼 내고 싶어도 떼 낼 수 없는 접착테이프 같았습니다. 알코올과 이름이 같아서 더 그런지도 모르죠.

남편이 다리 사이에서 장난감을 물어뜯으며 노는 솔이를 보며 말했습니다.

“우리 솔이가 죽으면 어쩌지?”

“잘 가라고 해야지. 하늘에서 제 오빠 만나서 즐겁게 놀라고.”

“그래야겠지?”

“그럼~. 산 사람은 살아야 하고 죽은 개는 떠나야지. 쿨하게 떠나보내고 쿨하게 살다가 쿨하게 저승 가서 만나는 거지.”

어쩌다 반려인이 되고 나서 알게 된 것 중 하나가 개를 키우고 싶은데 겁이 나서 못 키우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저처럼 똥이 겁나서 못 키울까요? 그것도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또 다른 이유는 바로 반려견의 죽음 때문이었습니다. 솔이와 산책하면서 반려견을 떠난 보낸 사람들을 만났는데 그들은 한결같이 말했습니다.

“죽은 개가 눈에 밟혀서 다른 개를 키우지 못하겠어요.”

끔찍했던 그날로부터 이십 년이 지났다는 한 여성은 지금도 종종 그날이 떠오른다고 했습니다.

“그날도 개 하고 산책하러 나와서 내가 길가에 주차해 놓은 자동차 뒤에 숨었어요. 우리는 자주 그러고 숨바꼭질을 했거든요. 나는 개가 나를 봤다고 생각했는데 개는 나를 못 봤나 봐요. 내가 자동차 뒤에서 몸을 이렇게 옹그리고 있는데 갑자기 끽!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무슨 일인가 하고 자동차 뒤에서 나와 봤더니 교통사고가 난 거예요. 그때도 나는 우리 개가 사고 난 줄 몰랐어요. 교통사고가 난 걸 보고 놀라서 우리 개를 찾는데 우리 개가 어디에도 없는 거예요. 그때 사람들이 ‘개가 다쳤다’하고 소리쳐서 혹시나 하고 그쪽으로 가봤죠. 그랬더니 어머나! 세상에! 우리 개인 거예요. 얼마나 깜짝 놀랐는지. 울부짖으며 달려가서 두 손으로 이렇게 안고 이름을 부르는데… 그대로 삼 분 만에 갔어요.”

그녀는 앞으로 내민 두 팔을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있었습니다. 마치 그녀의 영혼이 그때 그 장소로 가버린 것 같았습니다. 잠시 뒤 현실로 돌아온 그녀가 말을 이어갔습니다.

“그러고는 개를 못 키우겠더라고요. 그 장면이 머릿속에 박혀버렸어요. 이렇게 사람들하고 있으면 잊어버렸다가 집에 가서 혼자가 되면 또 떠올라요. 밤에는 꿈을 꾸고요. 개가 가고 나서 너무 슬퍼서 침대에 이렇게 웅크리고 있었어요. 그게 습관이 되어 지금도 이렇게 웅크려야만 잠을 자요.”     

한때 반려인이었다는 할머니에게서 들은 이야기는 이랬습니다.

“개가 도로 건너편에 있었어. 나만 보고 좋아서 달려오다가 자동차에 그만…. 어떻게 손을 쓸 틈도 없이 즉사했어.”

할머니는 반려견을 선산 곁에 묻고 반려견 무덤 주위로 돌을 빙 둘러 경계를 만들고 그 안을 꽃으로 가꾸고 꼬박 일 년을 보러 다녔다고 했습니다.

“그러곤 개를 안 키워. 그래도 개를 보면 너무 좋아. 예뻐. 교통사고 나지 않게 잘 데리고 다녀요.”

할머니는 저에게 다정한 당부를 남기고 산책을 이어갔습니다.     

한 할아버지의 반려견은 천수를 누리고 떠났습니다. 그런데도 할아버지는 개를 더는 못 키우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별이 쉬운 게 아니야. 마음이 아파. 십 년이 넘으니까 이제 살짝 덜 아프네.”

“키울 땐 좋았을 거잖아요?”

“좋았지. 날마다 산책하러 데리고 나왔으니까. 그래서 더 서운해. 지금은 나 혼자 이렇게 다니잖아. 나는 우리 애들한테도 말해. 절대로 개 키우지 말라고. 떠나보내고 나서 너무 긴 세월 동안 아프다고.”

“행복을 누리고 갔으면 행복한 마음으로 보내주셔도 될 것 같은데요?”

“그렇지. 그런데 그게 내 마음대로 안 되더라고. 나는 아직도 마음에서 못 떠나보냈어.”

그러고는 솔이를 내려다보며 덕담 한마디를 했습니다.

“녀석아,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잘 살아라. 알았지?”     

위로되기를 바라고 들려준 제 이야기를 듣고 나서 남편이 말했습니다.

“사람들 마음이 나하고 똑같구나.”

그러면서 손을 뻗어 솔이의 머리를 쓰다듬었습니다.

“솔이에게는 오빠의 죽음을 알리지 마라. 충격받을라.”

“솔이도 알 건 알아야 하지 않아?”

“안 된다. 가슴 아프다. 가슴은 나만 아파도 된다.”

이튿날 남편이 나가자마자 저는 솔이에게 말했습니다.

“솔이야, 잘 들어라. 네 오빠가 죽었다. 가슴 아프겠지만, 나는 네가 오빠를 잘 보내길 바란다.”

솔이는 말없이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뭔 말인가 싶었겠지요.

저는 제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내가 떠나보내야 할 죽음의 목록>에 솔이의 죽음을 추가했습니다.      

소주의 명복을 빕니다….

1년 4개월 동안 비닐하우스 개로 살다가 간 소주의 짧은 생이 후회 없길 바랍니다….

생각해보면 몸은 엉망으로 더러워도 논과 밭을 제멋대로 뛰어다니며 놀았던 견생이 그리 나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비록 사랑을 완성하진 못했으나 그녀를 사랑하는 동안 수컷으로서 행복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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