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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정 Jun 29. 2024

만족과 행복의 구분

나는 행복하다. 현재 내가 감각하는 행복 지수는 100중에서도 100이다. 어둡고도 막막한 무형의 것이 과거의 나를 짓누를 때가 있었다. 불안함. 두려움. 외로움 따위가 그러했다. 안정적으로 공동체에서 소속감을 공유하지 못했다. 나의 생각과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고, 오로지 나만 느낄 수 있는 감각 따위를 무시하고 억압했다.



 


어느 순간에 나는, ‘나’를 능동적인 존재로 인정하지 않았다. 나와 관련된 안 좋은 모든 것들은, 나의 문제가 아닌 환경이, 타인이 문제인 것으로 받아들였다. 부모님, 형제, 가정 상황, 지적 수준, 신체적인 특징 등 나의 상태를 정당화하기 위해 들이댈 수 있는 핑계는 주변에 널려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방패 삼아, 나의 존재를 정당화하고, 숨기려고 애썼다.







정당화하지 않으면, 내가 무가치한 인간인 것처럼 느껴졌으니까. 지적 능력이 떨어지고, 외모가 준수하지 않고, 가정환경이 좋지도 않으며, 유머감각을 비롯한 능력도 전무했고, 운동 신경도 뛰어나게 좋지 않았으며, 의지박약이고, 아무런 결과도 내놓지 못했던 나라는 존재를, 나는 용서할 수 없었다. 인정할 수 없었다. 인정하는 순간 내가 숨을 쉬어야 하는 이유가 없어져 버릴 것만 같았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인정한 후에, 앞으로 나아가기에는 방법을 몰랐다. 어떻게 사는 삶이 올바른 것인지, 잘 사는 것인지. 어떻게 살아야만 행복할 수 있는지, 무엇을 할 때 즐거운지.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타인이 내게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지. 도저히 알 도리가 없었다. 그러한 것들을 알려주는 사람도 없었고, 당시 독서를 하지도 않았으니까. 나의 주변에는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사람도 없었다.






단순한 호기심으로 책을 읽어나가지 않았더라면, 나는 지금도 “순차적인 인생 모델”을 절대적인 사상으로 받아들이고, 타인이 기대하는 모습에 나의 모든 것을 맞추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끊임없이 나를 억압하고, 기만하고, 무시했을 것이다. 안 좋은 감정을 느껴도, 원래 그런 것이라고, 누구나 이런 감정을 느끼며 살아간다고 나를 속였을 것이다.






과거의 내가 바랐던 나의 존재 상태는 “행복한 상태”였다. 그리고 최근에 이루어냈다. 몇 권의 뇌과학 책들을 읽고, 무의식에 자리 잡은 신념들을 점검해가면서, 뇌에 깔린 사고방식의 흐름을 의심하면서 내가 인지하지 못했던, 내가 불행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후에 의식적인 노력을 통해서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의 테크 트리를 끊어내고, 긍정적인 생각으로 치환하는 “인지 재구성”의 과정을 거쳤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나는 행복하다."라고 나를 속이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이는 완벽하게 성공했다. 행복해지기 위한 노력에는 ‘자기 기만’, ‘합리화’, ‘방어기제’가 필수 요건이었다. 나는 행복했지만, 나의 존재 상태에 만족하지는 않는다.






“왜 나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가?”






최근에 나를 지속적으로 괴롭혀 온 명제였다. 나는 목적과 목표가 있었다. 성장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었다. 나름 성실하고, 부지런했으며, 인격적으로도 뒤처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의 존재 상태는 안정되었다고 여겨지는데, 정작 결과물을 내놓지는 못했다. 아무런 결과물도 없다. 계속해서 다짐하고, 목표를 세우고, 도전하고를 반복하고 있지만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할 뿐, 일어서서 걷지를 못했다. 왜 나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가?에 대하여, 내가 내린 답은 “목표”를 제대로 설정하지 않고 달성하려고 노력하지 않아서라고 생각했다. 또는 기질과 성향의 영향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내린 답은 정답이 아니었다. 목적과 목표를 제대로 설정하지 않았다고 하기에는, 남들도 목적과 목표를 ‘온전’하게 설정하지 않았음에도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나의 목적과 목표는 이미 내가 감지하지 못하고 있던 욕망의 일부를 반영한 것이었다. 목적과 목표는 제대로 설정했다. 그러나, 그것을 위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동력이 없었다.






최근 알게 된 지인이 인생을 ‘항해’에 비유했다.



생긴 것도, 특징도, 견고함도 모두 다른 배가 있다. 그리고 이 배들은 출발지가 모두 다르다. 또한, 배들끼리도 어떠한 배들이 존재하는지, 출발했는지도 모른다. 덩그러니 남겨진 하나의 배는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망망대해 같은 바다로 나아간다. A라는 배는 자신이 옳게 가고 있는지, 빠르게 가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로 그저 앞으로 나아가야만 할 것 같으니까. 그러기 위해서 이곳에 있는 것 같으니까 방황하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나아가면서 예측하지 못했던 바위에 좌초하기도 하고, 크게 흔들리기도 한다. 어떻게든 다시 일어나 앞으로 나아가면 다행이고, 바위의 존재를 ‘불가항력적인 요인’으로 받아들여서 항해를 중단하기도 한다.






B라는 배는 출발선이 앞서 있다. 배도 튼튼하고, 옵션도 많으면서, 출발선도 남들보다 앞에 있으니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항해한다. B의 주변에는 조력 군들이 많다. 어떻게 나아가는 것이 옳은 것인지 알려주는 바람도 있고, 잘못된 방향으로 갈 때마다 방향을 교정해 주는 바람도 있다. B는 항해가 끝날 때까지 순조롭게 항해한다.






C라는 배는 망망대해 같은 바다에서 목적과 목표를 설정했다. 고기가 많은 북쪽이 목적이고, 그곳으로 가기 위한 루트 설정이 목표다. 자기 나름의 목적과 목표를 설정하여 의미를 부여한 후에, 그것들을 달성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항해하면서 이미 자신을 한참 앞서 있는 B를 보며 잠깐 시기와 질투를 하기도 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원망하기도 하지만 다시 자신의 배를 점검하고 고치면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한다. 그렇게 B보다는 느리지만 A보다는 빠른 자신만의 항해 노선을 만들어간다.






지인은 배는 ‘인간’이고 배가 항해해 온 길은 ‘본인만의 인생’이라고 칭한다. 배가 지나온 길이 곧 배가 겪어 온 경험이자 인생의 발자취라는 것이다. 또한 목적과 목표를 설정한 배와 목적과 목표를 설정해야 하는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하는 배에 대해서 얘기하고, 목적과 목표를 향해 나아갈 때 ‘바람’이 필요한데 이 바람의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욕망’이다.라는 결론을 도출했다. 지인의 말을 감탄하면서 듣다가, 지금까지 내가 고민했던 “내가 정체하고 있었던 이유”에 대한 답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나는 욕망을 억제해왔다. 욕망을 드러내고, 자신의 욕망을 위해 타인을 이용하는 것을 죄악이라고 여겼다. 자기중심적인 사상을 혐오했고,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정작, 자신의 욕구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을 충족하기 위해 주변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면 한껏 동경하고 존경했다. 이러한 나의 행동은 나의 욕망에 솔직하고 싶지만, 기질의 영향으로 타인에게 피해 주는 것을 죄악시했던 도덕적 양심이 나를 지배했던 결과물이었다.








욕망에 둔했던 나는, ‘바람’이 없었다. 목적과 목표를 설정해도 앞으로 나아가게 도와주는 바람이 없었기 때문에, 나의 발자취를 인증할 수 있는 결과물을 내놓을 수 없었다. ‘욕망의 부재’는 내가 끊임없이 설정하고 도전하기를 반복했던 목표의 효용성을 없애버렸다. 아무리 좋은 목표를 설정해도 나아갈 수 없었기 때문에 ‘그림의 떡’에 불과했다. 지인과의 긴 대화를 통해서, 나는 처음으로 내가 느낀 원초적인 감정을 승화하는 과정이 마냥 좋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지 재구성이 나에게 치명적인 독으로 작용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행복’과 ‘만족’은 다르다. 나는 행복하지만 나의 삶에 만족하지 않는다. 나는 더 예쁜 몸을, 더 훌륭한 습관을, 더 견고하고 아름다운 인간관계를, 더 많은 돈을, 더 수준 높은 인격과 내면 상태를, 더 탁월하고 뛰어난 지적 수준을 원한다. 내가 가진 모든 것보다 더 뛰어난 것을 원한다. 과거의 나보다 뛰어나고 싶고, 나의 주변 사람들보다 탁월하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의도적으로 불편한 감정에 노출되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지독하게 우리를 괴롭히는 인정욕구와, 소속 욕구, 지배 욕구 따위를 충족하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는 사람이야말로, 우위에 설 수 있다. 문을 두드리는 자만이, 문을 열 기회를 얻는다.







나는 왜 욕구와 욕망을 부정해왔는지 돌이켜보니, 욕구와 욕망을 좇는 행위는 결핍을 충족하기 위한 몸부림이라고 생각했던 거 같다. 내면이 견고하지 않으니까, 늘 불안하고 두려우니까 그러한 내면의 결핍을 외부에서 해결하기 위해 몸부림친다고 생각했다. 물론 과거의 나의 생각이 전적으로 틀린 것은 아니다.






욕구에 솔직하지 않은 사람은 현재 주어진 것에 만족하기 때문에 성장하는 것이 더디며, 내면은 잔잔한 파도와 같다. 반면에 욕구에 충실한 사람은 늘 더 좋은 것을 선호하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간다. 그러나 내면은 세차게 불어닥치는 파도와 같다.







욕구에 충실한 사람은 내면의 불안정한 목소리를 듣고,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다만, 내면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어떤 노선을 선택하느냐가 사회에서 정점에 설 것인지, 바닥을 칠 것인지를 결정한다.







원초적인 욕구를 충족하는 것은 매우 힘들다. 과거의 내가 인지 재구성을 통하여, 내가 가진 것들을 인정하고 수용하려고 노력했던 이유는, 원초적인 욕구를 충족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순환고리에 타는 것은 지옥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늘 목이 마르다. 늘 갈증을 느낀다. 새로운 것을 사도, 다양한 사람을 만나도, 경쟁 관계에서 우위에 서도, 뛰어난 배우자를 만나도, 멈추지 않는다. 그것은 쳇바퀴를 뛰는 다람쥐와 다를 바가 없다. 인간은 늘 갈증에 노출되어 있고, 지독한 갈증 속에서 위대한 문명을 구축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재의 인류는 아직까지도 갈증을 느낀다.







원초적인 욕구를 정식적인 노선으로 충족하기에는 아주 힘들고 고된 여정이 기다리고 있다. 모든 인간이 원초적인 욕구와 욕망을 갖고 태어난다. 마치, 소프트웨어에 “끊임없이 경쟁하고 쟁취하라”라는 명령이 입력된 로봇들이 하나의 목표를 위해서 서로를 찍어누르려고 하는 것만 같다. 그나마 로봇은 처음 만들 때 모두의 기능을 같게 설정할 수 있지만, 슬프게도 인간은 그렇지 않다. 인간은 지적 수준도, 기질과 성향도, 욕망을 느끼는 정도도, 주변을 둘러싼 인간들도, 가정환경과 경제수준도 모두 다르다.







출발점이 모두 다른에게 ‘욕망을 해소하라’라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들리니, 처음부터 가진 것이 많았던 사람은 비교적 수월하게 자신의 욕구를 충족할 수 있지만,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은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려고 애쓴다. ‘진실’이 아닌 ‘허상’을 좇는다. 실제로 돈을 불리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닌, 돈을 많이 가진 것처럼 보이기 위해 노력한다. 실제로 자신의 영향력을 높여 서열구조에서 정점을 찍는 것이 아닌, 타인의 가치를 폄하하고 자신의 노력을 부풀려서 영향력을 높이려고 애쓴다. 자신의 욕구를 수준 높게 충족하는 것이 아니라 피상적으로 충족하면서 돌려 막는 것이다.







나는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허상’을 좇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봐왔다. 자신의 욕구와 욕망에 솔직하여 자신의 능력을 높이고 영향력을 키워서, 주변을 통솔하는 자들보다, 늘 말로써 자신을 치켜세우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봐왔다. 그러한 모습들은 내게 “욕망”을 좇는 것은 저급한 행위라는 인식을 남겨주었고 지금까지도, 나는 그 인식이 옳다고 착각했다.







나는 ‘허상’을 좇을 생각은 없다. 현재의 나는 행복하지만, 뼛속까지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더 이상은 나를 옳은 길로 이끌어주는 어두운 내면의 목소리를 무시하지 않고 오히려 확대하려고 한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내가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 무엇인가”






나는 “행복하기 위해서” 목적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만족을 느끼기 위해서”, 애써 감지하게 된 “결핍을 해소하기 위해서” 노력해 보려고 한다. 태어나는 순간, 잃어가고 있는 나의 모든 것들에 대하여 충실해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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