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21
우리의 대화는 연신 죽음과 삶을 오갔다.
병이 들어 죽어가는 것에 대하여,
일을 하지 않고 보내는 시간에 대하여,
한평생 추구한 돈이 가져다주는 결과에 대하여.
엄마가 아주 어릴 적,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지게에 감아 들춰업고 내려간 것을 옆에서 보았던 과거에 대하여,
외할머니가 딸만 3명을 낳았다고 군대에서 휴가 받고 오자마자 깽판을 쳤던 외할아버지에 대하여,
멀지 않게 느껴지는 외할머니의 죽음을 어떻게 치러드릴지에 대하여.
우리의 대화는 살얼음 위를 오갔다. 죽음이라는 것은 어쩌면 그렇게 멀지 않은 것임을. 나는 지금도 필사적으로 다가올 죽음에 맞서 대비해야 함을 너무도 절실히 느껴버렸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선크림을 바르지 않고 밭일을 하여 까맣게 그을린 얼굴을 하고서 낡은 오토바이를 타고 오시는 엄마를 뵈었다. 찰나였지만, 나는 나의 소중한 사람을 외부 사람에게 드러내는 것에 대하여 부끄러움을 느꼈고, 속수무책으로 흘러가는 시간 동안 하루가 멀다 하고 늙어가고 있는 엄마의 얼굴을 보니 속상했다.
내가 느낀 부끄러움을 인정할 수 없었다. 그에 따른 자신에 대한 경멸과 빠른 시일 내에 성공해야 한다는 약간의 강박이 나를 지배했다. 익숙한 현관문을 지나 방문을 여니, 익숙하지 않은 할머니의 뒷모습이 보였다. 90세를 넘어선 할머니의 손은 미약하게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손이 향하고 있는 곳은 너무도 확실했다. 할머니의 몸은 할머니의 의식을 따라가지 못했지만, 그녀의 눈동자와 몸 처신에서 느껴지는 강한 기운이 느껴졌다.
외할머니는, 어머니의 어머니임을, 나의 할머니임을 여실히 증명하듯 강인하고 독한 분이셨다.
거실에는 안산에서 내려오신 작은 이모와, 이모부가 계셨다. 이모부는 아주 간간이 얼굴을 뵐 때마다 급속도로 야위셨고, 이모부의 키는 어느 순간 나보다 작아져 있었다. 오랜만에 보니, 바뀐 게 없냐는 이모부의 질문에, 장난스럽게 “잘생겨지셨어요~” 하고 응수했지만, 그를 보자마자 느꼈다. 앙상해진 팔과 다리, 핼쑥해진 얼굴과 창백해진 안색에서 그가 얼마나 고통스럽게 병과 맞서 싸우고 있는지를 말이다.
손과 손목을 잇는 지점에서 피가 도는 것을 억제하기 위해 막아 둔 부분을 보여주시며 월, 수, 금마다 투석을 하신다는 말씀에 고성에서 매일 혼자 투석을 하시며 연명하시던 친할머니가 떠올라 괴로웠다. 정정하고 멋있던 이모부도 세월의 야속함을 이길 수는 없었다.
경찰을 준비한다고 하여 내가 만들어나갈 미래에 한껏 기대하셨던 이모는 내가 얼굴을 비추자마자 실망한 티를 여실히 드러내셨다. 방금 본가에 돌아와 나에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엄마를 나에 대해 깊이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보여줬음에서 오는 부끄러움과 부끄러움을 느꼈다는 나에 대한 죄책감과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과 병이 가져다주는 삶의 모습과 부모님의 삶에 대하여 내가 어디까지 책임을 질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고 있던 내게는 이모의 반응이 너무도 아프게 다가왔다. 그녀는 나를 믿지 못했다.
오늘이 아닌, 어제 방문할 예정이었지만, 오늘 작은 이모가 오신다는 말씀에 일정을 바꿔 방문했던 터였다. 내가 아는 이모는, 엄마의 든든한 지원군이자 조력자였고, 삶에 대하여, 돈에 대하여 꽤나 진지한 태도를 갖춘 분이셨기 때문이다.
몇 개월 전, 안산에 방문했을 때 이모가 내게 보였던 태도와 표정은 착각이 아니었다. 이모는 자신이 신뢰하는 사람에게 끝도 없는 도움과 관심을 주는 사람이었지만, 그 안에 들지 않는 사람에게는 약간의 편견을 가지는 분이셨던 것이다.
그래서 필요 이상의 설명을 했다. 내가 왜 경찰 준비를 그만두었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현재 돈을 얼마큼 벌고 있고 얼마나 모았고, 앞으로의 계획이 어떻게 되는지. 그제야 이모는 나에 대한 편견을 거두셨다. 옆에서 이모부는 연신 좋은 남자를 만나야 삶이 편해진다는 주장을 거듭하고 계셨고, 이모는 부동산에 투자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안정적이면서도 확실한 길이라며 씨앗 돈 먼저 모으라며 아낌없는 조언을 하셨다.
사실, 좋은 남자를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모부의 말씀에는 동의할 수 없었다. 자신의 가치를 아는 사람들은 당연히 배우자의 가치도 들여다볼 것이기에 내가 아무것도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좋은 남자를 만나려고 하는 행위는 상대를 기만하려 드는 것으로 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내 옆에 사람은 중요하지 않다. 지금 내가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 얼마나 힘이 있는 사람인지, 앞으로 그렇게 될 수 있는지가 더욱 중요하다. 그 상태가 되면 배우자는 내가 골라서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모와 이모부도 결코 평탄한 삶을 살아오지 않으셨고, 치열하게 앞으로 나아가신 분들이다. 나는 그들에게서, 다른 우리 가족들로부터는 느끼지 못했던 기회와 가능성을 보았다. 바람 불면 날아가 버릴 정도로 위태롭고도 가벼운 우리의 가세가, 어쩌면 내가 숨이 붙어있는 동안만큼은 좋은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성공하고 싶은 이유는 철저히 우리 가족의 행복 때문이고, 내가 만들어나갈 새 가족들에게 평안한 안식처를 제공하기 위함이다. 그것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해서라도 나는 나 자신을 통제할 의지가 있다.
이모는 내게 말씀하셨다.
“우리 엄마 인복도 지질이 없고, 한 평생 고생만 하신 분인데, 죽기 직전이라도 행복이 뭔지 알려드려야지. 이제 몇 년 안 남았어. 그때까지 열심히 벌고 모아서 성공해 보자.”
그제야 알았다. 내가 나의 엄마를 보고 하는 생각을, 이모도 나의 엄마도 똑같이 할머니를 보며 하고 있었다는 것을.
늙어가는 엄마의 표정을 볼 때면 얼마나 슬픈지,
어릴 적 내게 상처를 주었던 부모님이 약해져가는 것을 옆에서 보는 게 어떤 기분인지,
내가 돈을 벌어야 하는 이유와,
나 자신에 대해서 소홀하더라도 부모님을 챙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나와 똑같이 우리 엄마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어쩌면 내가 추구하고 있는 이 목적은, 공동의 목적일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나만 싸우고 있는 게 아니라 다 같이 싸우고 있는 것이다.
나의 경우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 행복을 느끼는 방법을 터득했다. 행복은 물질적 풍요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자신의 내면에 여정을 떠날 때에 느낄 수 있는 것임을,
아프게 낳아 더 아프게 키우고, 더더 아프게 끼고 살아가는 자식에게서 행복이라는 감정이 들지 않을 수 있음을,
돈을 많이 벌면 무조건 행복해지는 건 아닌 것임을,
깨닫지 못한 채 나이 들어버린 할머니에게는 나의 그 어떤 말도 가닿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써 보여주고 싶다. 인생은 힘든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자의도 타의도 아닌 채로 독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할머니와 어머니의 인생에 나라는 존재가 아주 조금은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