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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킁킁총총 Jun 17. 2024

가족이라는 따뜻함

작고 소중해, 크고 소중해

24.06.11(수)

어렸을 적부터 어린아이들을 좋아했다. 그 특유의 귀여움이 좋았던 것 같은데 어찌 됐건 마냥 기분 좋게 만드는 어린아이들에게 늘 끌렸다. 그런 나에게 조카가 생겼다. 어느덧 세 살이 된 나의 조카 하은이. 정말 뭐라고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귀여운 하은이가 나에겐 너무 작고 소중하다.


오늘도 특별한 일정이 없는 하루를 보내려다가 문득 하은이가 보고 싶어서 누나에게 연락을 했다. 마침 특별한 약속이 없다는 말과 함께 와서 하은이 좀 놀아주라는 말을 이어갔다. 잘 됐다 싶은 마음에 약속 시간을 정하고 내려가기로 했다. 누나는 편하고 나는 즐거운 하루가 될 수 있는 윈윈의 시간이다.


하은이와 첫 키즈 카페를 가기로 했다. 어린이집 끝나는 시간에 맞춰 픽업을 하고 곧장 키즈 카페로 향했다. 저번주에 만났을 때 대성통곡을 하면서 울던 하은이가 눈에 밟혀서인지 평소보다 더 짧은 텀을 두고 하은이를 보러 왔다. 그렇지만 역시나 첫 대면에는 부끄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하은이를 보면 매일 보러 와야 하는 것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유독(?) 나에게 많이 부끄러워하는 하은이를 보면 아직 죽지 않았다는 자만감이 슬며시 고개를 들어 올린다. 신기하게도 5세 이하의 어린아이들에게 인기가 꽤 많았던 과거의 모습이 여전한 듯 해 뿌듯함을 느꼈다.


시간이 조금씩 지나면서 하은이가 웃음기를 찾고 있었다. 누나는 근처 카페에서 혼자 할 일을 하겠다고 하며 나와 하은이만 키즈 카페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분주하게 움직이며 이거, 도와줘 짧은 단어들로 확실한 의사표현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많이 컸다고 느껴졌다. 지칠 줄 모르고 한 시간 반을 넘게 쉬지 않고 움직이는 하은이가 정말 대단했다. 목마르지 않냐고, 배고프지 않냐고 물어봤지만 아니라는 대답과 함께 놀기에만 급급한 하은이. 정말 단 1초도 쉬지 않았다. 미끄럼틀을 탈 때는 그만 타라고 수차례 말을 해도 계단을 올라가는 속도는 하나도 줄어들지 않았다. 옆에서 타던 친구는 어느새 계단을 오르는 게 벅찬지 미끄럼틀 타는 걸 포기했지만 하은이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걸 보면 체력이 정말 남다른 걸 알 수 있다. 덕분에 미끄럼틀을 타는 동안 나는 볼풀에 누워서 편히 쉴 수 있었지만 말이다. 입만 뻥긋하며 조심히 타야 해~ 그만 타~ 안 힘들어 뭐 이 정도 말만 하면서 꿀 빠는 육아를 했던 순간이었다.


지칠 줄 모르는 하은이를 이대로 놔뒀다가는 오늘 집에 갈 수 없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슬슬 엄마 보러 갈까?라는 말에 반응을 하기 시작했다. 조금 지친 걸까? 하지만 발걸음은 다시 다른 놀이방으로 향하는 걸 보니 아직 멀은 것 같았다. 그래도 이제는 안 되겠다 싶어서 반 강제로 나가기로 했다. 사람들이 빠져나가는 틈을 타서 이제 가야 할 시간이라고 엄마한테 가자고 하은이를 간신히 데리고 나올 수 있었다. 이제야 목이 마르고 배가 고팠는지 준비한 음료수를 거의 원샷을 해버리더라. 노는 집중력은 아마 수준급일 것 같다. 이건 매형을 닮은 것 같은데... ㅎㅎㅎ


밖에서 밥을 먹을까 했지만 누나네 집에서 밥을 먹기로 했다. 밥도 먹고 야식으로 치킨에 맥주를 마시고 하루 밤 자고 가겠다고 했다. 저번에 하은이와 한 약속도 있고 오늘은 자고 가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누나가 하은이에게 집에서 엄마가 볶음밥 해줄게~ 삼촌이랑 같이 먹자라고 말을 건넸다. 그런데 재밌는 하은이의 반응에 누나와 나는 놀란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엄마는 요리해, 하은이랑 삼촌이랑 먹을게."


"엄마는 요리하고 하은이랑 삼촌만 먹을 거야?"


"응, 하은이랑 삼촌이랑만 먹을 거야. 엄마는 요리해."


누나는 상처받은 표정을, 나는 웃음기 가득한 표정을 감추지 않는 순간이었다. 너무 귀여워 죽겠다. 뭉개진 발음으로 말하는 하은이를 보면 더욱 귀엽다. 그 순간이 상상돼서 지금도 얼굴에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오늘 재밌게 놀아준 보람이 있구나 싶은 생각과 함께 누나네 집으로 향했다.


결국 셋이 옹기종기 모여 밥을 먹었지만 아까의 말이 자꾸 떠올랐다. 누나가 나름 상처 아닌 상처를 받은 것 같았다. 하긴 나였어도 조금 아니지 꽤 상처를 받았을 것 같다. 물론 금방 잊힐 상처지만 그래도 상처는 상처이기에 마음속 어딘가에 조용히 자리 잡고 언젠가 그 모습을 드러낼 준비를 할지도 모른다. 우리 에너지 넘치는 하은이는 먹고 삼촌과 놀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인다. 이 장난감, 저 장난감, 이 책, 저 책 집에 있는 모든 물건을 다 꺼낼 기세로 오늘의 놀이는 끝나지 않았음을 다시 한번 어필하는 것 같았다. 밤 10시가 넘어서까지 놀고 있으니 이제 슬슬 누나가 말리기 시작했다. 이제 자야 할 시간이라고. 평소라면 좀 더 떼를 쓰며 자지 않고 놀고 싶어 했을 텐데 오늘은 꽤 고분고분했다. 우선 정말 원 없이 놀았고 내가 집에 가지 않을 것임을 알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내가 자는 방에 들어와 한번 더 확인하고 본인의 방으로 돌아가는 하은이가 어찌나 귀엽던지, 잘 자 삼촌, 내일 봐라고 말하고 손 인사와 함께 들어가는 모습에 심장이 아파왔다. 너무 좋아서.


하루를 마무리하고 치킨을 배달시켜 놓고 씻었다. 하은이와의 놀이가 꽤 피곤했던 건지 조금 잠이 쏟아지려고 했다. 그래도 이대로 자긴 아쉬웠으니 치맥은 하고 자야지. 오랜만에 누나와 단둘이 얘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늘 하은이나 매형 혹은 엄마가 함께였으니 단둘이 이야기를 나눈 게 언제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평소 여러 사람들과 함께 있다 보니 좀 가벼운 대화들이 주를 이뤘었다. 하지만 오늘은 결이 좀 달랐다. 어떻게 보면 무거운, 어떻게 보면 진지한 이야기가 오고 갔다. 서로 꽤 잘 안다고 생각했던 우리였지만 몰랐던 순간들을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서로 놀랐다. 그랬었구나.


점점 더 솔직해지는 대화. 평소 말하지 못했던 말들. 그렇게 대화가 깊어지던 우리. 궁금했지만 조심스럽기에 물어보지 못했던 순간들도 알아가고 서로에게 꽤 괜찮은 말들이 오고 갔던 시간. 그렇게 늦은 밤, 깊은 대화가 우리가 애틋한 사이임을 증명하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그러다 매형이 오고 평소처럼 가볍지만 즐거운 대화가 이어졌던 우리의 밤이 어느새 끝이 났다.


하은이와 함께했던 작고 소중한 시간. 누나와 함께 나눈 크고 깊은 대화가 오늘 밤 잠자리에 들기 전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의 시간을 만들어줬다. 내 마음을 솔직하게 말했던 그 순간 누나의 눈빛에서 느껴지는 따뜻함을 잊지 못할 것 같았다. 어쩌면 누군가는 한심하다고, 어쩌면 또 다른 누군가는 걱정을 하는 듯 바라봤을 것 같았다. 그런데 누나는 그러지 않았다. 그냥 온전히 나를 보는 그 눈빛.


"너를 믿기에 걱정되지 않아. 그냥 궁금했었어. 그런데 물어보지 못했어. 혹시 싫어할까 봐. 혹시 말하고 싶지 않을까 봐. 말해줘서 고마워."


아마 이렇게 생각했을 것 같다. 아니 그랬을 것이다. 누나의 눈빛이 그렇게 말했으니까.



당신의 하루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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