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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킁킁총총 Jun 20. 2024

상처 주는 사람이 되지 말자.

잘 지내 인사를 보냈다.

24.06.15(토)

러닝을 위해 산 옷이 도착했다. 기쁜 마음에 옷을 갈아입고 달리기 위해 부천시민회관으로 갔다. 가면서도 살짝 걱정을 했다. 혹시 당신과 마주칠까 봐. 마주치면 또 상처받는 말을 들을까 봐. 그래도 이 시간에 마주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달리기로 마음먹었다.


몸을 풀 겸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반바퀴를 걸었을까 저 멀리 보인다. 아마 당신 같다. 아니 당신일 거다. 내가 당신을 못 알아볼 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대로 그냥 다른 곳으로 향할까 했지만 내가 왜라는 생각에 그냥 뛰기로 결심했다. 어차피 앉아서 수다를 떨고 있는 당신이 나를 알아보지 못할 것 같았다. 빠르게 3킬로만 뛰고 사라지기 위해 달리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달리기를 이어갔고 어느덧 2.5킬로를 지나고 있을 때였다. 수다를 마치고 달리는 라인으로 걷기 위해 올라온 당신이 보였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냥 무시하고 달리기를 이어갈까, 아니면 이대로 달리기를 멈출까. 머릿속이 복잡해질수록 달리는 속도는 점점 느려졌다. 걷고 있는 당신과 달리는 나와의 거리는 아무리 늦춰도 가까워질 수밖에 없었다. 아직 답을 내리지 못했는데 거리는 점점 더 가까워지고 결국에는 발이 멈췄다. 그리고 방향을 바꿨다. 도망치기를 선택한 것이다.


반대쪽 출구로 나가면서 달리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는 생각과 밀려오는 부정적인 감정이 나를 잡아먹고 있었다. 인도를 달리다 신호가 날 멈추게 했다. 이대로 집을 들어가기에는 이 감정이 나를 집어삼킬 것 같았다. 목적지를 정하지 않은 채 걷기로 결심했다. 걷고 또 걸었다. 가까웠던 사이에서 이제는 너무 멀어진 사이가 된 당신과의 관계. 멀어진 것도 모자라 상처 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당신. 당신이 남긴 마지막 문장이 자꾸 떠올랐다. 상처받지 않겠다고, 상처받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분명 상처받지 않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내가 상처라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상처가 될 수 없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나는 상처받지 않았다고 괜찮다고 그러니 정말 괜찮다고. 저 말이 사실이 아닌 걸까 아니면 나는 상처라고 받아들인 걸까. 무엇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상처를 받았던 게 확실하다. 눈에서 나오지 말아 할 것이 허락 없이 나오기 시작했다. 어두운 밤, 인적은 드물지만 흐르는 눈물을 닦는 순간 처량해 보일 것 같아 그냥 놔두기로 했다. 매번 상처 주는 말을 해도 날 위해 하는 말이라고 되뇌었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게 아니라는 걸 너무나도 잘 안다. 그냥 상처 주려고 하는 말이었다. 다른 사람의 감정보다 자신의 감정이 제일 중요한 사람이었으니까. 그냥 내가 편하자고 잘 미화하고 관계를 이어나갔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왜 그러고 살았는지 뭐야 홀려서 그렇게 살았던 건지. 좋았던 순간들이 떠오르지만 그 감정이 지금의 감정을 덮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슬픔일까. 분노일까. 괴움일까. 어떤 감정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지금의 감정을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렇게 그냥 하염없이 걸었다. 어느덧 두 시간을 걸었다. 에어팟을 통해 노랫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내가 들어본 적 없는 노래가 나온다. 유튜브가 들려주는 이 노래가 나에게 위로를 안겨주는 순간이었다.


인사 - 범진


돌아서는 너를 보며

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슬퍼하기엔 짧았던

나의 해는 저물어 갔네

지나치는 모진 기억이

바람 따라 흩어질 때면

아무 일도 없듯이 보내주려 해

아픈 맘이 남지 않도록

안녕 멀어지는 나의 하루야

빛나지 못한 나의 별들아

차마 아껴왔던 말 이제서야

잘 지내 인사를 보낼 게

멜로디와 가사, 지금 나에게 누군가 말해주는 것 같았다. 위로해 주는 것 같았다. 이제 정말 보내주자. 잘 지내. 오늘이 지나면 잊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니 오늘이 지나지 않아도 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당신이라는 존재가 나의 삶에서 사라지는 듯했다. 한참을 걷고 이 노래를 계속 반복해서 들으며 마음이 가라앉았다.


"잘 지내."


나 대신 웃어줘, 스마일



정신을 차려보니 집까지 또 많은 걸음을 해야 했다. 집을 향해 다시 걸음을 옮겼지만 이대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아직 더 위로를 받고 싶었다. 하지만 위로를 해줄 사람이 없다. 그렇게 발걸음이 목적지를 잃은 채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갔다. 그리고 나형이에게 카톡을 보냈다.


"역에서 집까지 같이 갈래요? 걷다 보니 소사까지 걸었네 하하하"


사실 소사가 아니었다. 그냥 같이 조금 걷고 싶었기에 그 짧은 시간 잠깐의 위로가 필요했기에 거짓말을 했다. 부담스럽지 않을 수 있게. 그렇게 나형이를 만났고 이야기했다. 나의 기분에 대해.


"누구야, 누가 그랬어."


이 한 마디가 참 따뜻했다. 내 편을 들어주는 나형이에게 오늘도 빚진 기분 아니 고마운 감정을 하나 더 쌓았다. 그렇게 집을 향하는 발걸음이 언제 그랬냐는 듯 가벼웠다.


"아, 내일 아침 비행기인데 망했다."


내일은 제주도를 가는 날이다. 괜찮아 일어나겠지. 설마...



당신의 하루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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