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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옥 Aug 01. 2023

매니저로 승진한 날

벤츠 타는 호텔 청소부

출근

공장에서 갓 나온 신차냄새 풀풀 나는 새하얀 신형 벤츠를 타고 출근했다. 유해물질로 인한 냄새라 하지만 그 새 차 냄새가 오래가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향기롭다. 오늘따라 주차운도 좋아서 호텔 정문에서 가장 가까운 자리에 주차했다. 기분이 너무 좋아서 걸음걸이도 신나고 당찼다.

“Do you work here? Can you please help me? 여기서 일하시나요? 저 좀 제발 도와주실래요? “


호텔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한 손님이 다급하게 달려와 도움을 요청했다. 프런트에 한참 줄을 서있다 지쳐가던 참에 나를 보고 달려든 것이다.


“What can I help with?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Oh, I knew you would be able to help me out. 아, 당신이라면 나를 도와줄 줄 알았어요."


파티룸에 물과 냅킨이 더 필요하다며 빨리 채워달라는 것이다.


1분 1초가 돈

하우스키퍼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나는 빨리 출근기로 달려가야 했다. 지문을 스캔해야 1분이라도 시급에 정산이 되기 때문이다.


직업병

망할 놈의 직업병. 도움이 필요한 학생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듯이 이 손님도 무지 다급해 보여서 차마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I apologize for the delay. 오래 기다렸다니 죄송해요. I am a housekeeper but let me have a staff from the kitchen help you right away. 저는 하우스키퍼인데 주방 스태프를 바로 보내드릴게요."


그녀는 갑자기 헷갈린 듯했다.


“Oh, excuse me. I thought you were the manager. 아, 실례했어요. 매니저인줄 알았어요."

 

어깨뽕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뭘 보고 매니저로 승진시켜 줬는지는 모르겠지만 솔직히는 우쭐하기까지 했다. 청소부 유니폼에 어깨패드를 겹겹이 덧대기라도 한 듯 나도 모르게 심리적으로 어깨가 활짝 펴졌다.


대학원생으로 시간강사 하면서 강의 나갈 때 비슷한 기분을 경험하긴 했다. 학생들이 교수님이라 불러줄 때, 닥터박(Dr. Park)이라 불러줄 때 말이다. 곧 박사가 될 나에게 교수님은 현실 가능성이 있는 호칭이었다. 하지만 지금 청소부인 내가 호텔 매니저가 될 확률은 매우 희박하기 때문에 수선집에서 어깨뽕을 무료로 겹겹이 쑤셔 넣어준 것 같아 기분이 훨씬 좋은 거였다.


잡생각

주방으로 가서 파티룸 담당자에게 인계를 하고 빨래방으로 가서 청소준비를 시작했다. 수건, 시트, 커피, 걸래 등을 카트에 주섬주섬 챙기며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나를 매니저로 착각하게 만든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청소가 강의할 때보다 좋은 점은 움직이면서 이런저런 잡생각을 많이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이 매니저로 보였나 나 자신을 점검해 보았다.

청소부 유니폼을 입고 출근했다.

명찰에는 객실 청소를 의미하는 ROOM ATTENDANT라고 정확히 써져 있다.

청소하는 날이라 샤워도 안 하고 출근했다.

어제 강의하기 위해 손질했던 머리는 약간 우아하면서도 밤새 살짝 기름이 지다 보니 차분히 가라앉아 단정했다. 아직 냄새까지는 나지 않는다.

새 차를 운전하는 기분에 호텔에 들어설 때 걸음이 위풍당당했다. 눈빛도 신났으리라.

프런트 앞에서 줄 서있던 그 손님은 분명히 유리문 밖에서 내가 벤츠에서 내리는 모습을 보았다.


아하, 답은 벤츠이다.


“참 나, 벤츠 타니까 매니저도 시켜주네?”


선입견

벤츠에서 내린 내가 청소부라니 그녀의 어리둥절했던 표정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반응일 수 도 있겠다.


교수가 벤츠를 타면 "아, 그녀의 차는 벤츠구나."

청소부가 벤츠를 타면 "어떻게 청소부가 벤츠를 타지?"

이런 반응이다. 


정장이 아닌 청소부 유니폼에, 구두가 아닌 운동화를 신고 주방으로 향하던 내 뒷모습을 보고 있던 그녀의 시선이 느껴졌다. 살짝 뒤돌아봤는데 역시나! 뭔가 답을 찾고자 하는 그녀의 눈빛과, 금방 사람을 보내주겠다는 내 확답의 눈빛이 교차했다. 우린 오묘한 눈웃음으로 살짝 우리만의 인사를 나눴다.


내가 교수인 걸 알았으면 그녀의 의구심이 조금 풀렸을까?


* 이 글은 <나에게 솔직해질 용기>에 담긴 에세이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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