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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옥 Mar 28. 2024

호텔리어가 꿈이었던 교수

꿈을 이룬 하우스키퍼

"레이나, 너 영어도 잘하는데 하우스키핑 말고 다른 부서로 옮겨보는 건 어때?"

"난 영어 안 쓰는 하우스키핑이 좋아."

"넌 하우스키핑보다는 바텐더 하면 잘 어울릴 것 같아. 너라면 팁 많이 받을 거야."

 

그래도 나는 최대한 영어를 쓰지 않아도 되는 하우스키핑이 그 어떤 부서보다도 가장 좋다. 그 이유는 아무도 이해하지 못한다.

 

최전방

바텐더를 제안하는 매니저 브리아나는 꾀 설득력 있게 말하였다. 이런 식으로 영어를 할 줄 아는 직원은 전방으로 끌려나갔다. 손님을 직접 대하는 것이 나에겐 최전방이나 다름없다. 그만큼 즐겁게 손님을 대할 만큼의 마음의 무기가 준비되어있지 않다. 영어를 쓰지 않아도 되고 가식적으로 웃지 않아도 되는 하우스키퍼가 좋다. 

 

바텐더

연회장에는 정해진 몇 가지 종류의 술만 갖고 들어가기 때문에 사실 술에 대한 많은 지식이 필요하지도 않다. 주로 주말에 4시간 정도만 일하면 되기 때문에 하우스키핑보다는 시간 적으로 덜 부담이 되기도 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돈을 더 많이 번다. 물론, 시급은 바텐더가 하우스키퍼보다 낮긴 하지만 술을 팔면 팁을 상당히 많이 받기 때문이다.

 

검정 치마에 하얀 블라우스를 입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밝게 웃으며 손님과 대화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멋있게 코블러 셰이커를 공중으로 던졌다 받으며 능숙하게 흔드는 모습도 그려졌다. 셰이커를 흔드는데 쳐진 팔뚝살이 같이 흔들대는 모습에 정신이 차려졌다. 상상은 여기까지만 하기로 했다. 바텐더 멋있겠다, 한번 해볼까? 살짝 흔들리긴 했지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미안해. 아무래도 바텐딩은 무리야. 나 정말 자신 없어."

 

브리아나는 실망한 듯하더니,

 

"괜찮아. 이해해. 그럼, 비스트로는 어때? 술이 부담되면 비스트로에도 사람이 필요하거든."

 

비스트로

비스트로는 오전에만 오픈한다. 스타벅스 커피를 만들고, 조식 주문을 받고 서빙을 한다. 주방에서 요리를 하는 셰프가 있긴 하지만 아주 간단한 베이글이나 머핀, 혹은 과일 정도는 비스트로에서 준비한다.

 

팬데믹이 사그라들면서 호텔은 다시 분주해졌다. 문을 닫았던 레스토랑이나 상점들도 오픈하기 시작했고 동네에 아마존 물류창고가 생기면서 한 번에 2천 명을 고용해 버렸으니, 고용주들은 인력난으로 고생 좀 했다.


호텔에도 많은 지원자가 있었지만 브리아나가 원하는 사람은 찾기가 힘들었다. 연회장 테이블을 준비하던 아주머니가 바텐딩을 하기도 하고 급한 날은 매니저가 직접 바텐딩이며 비스트로며 여기저기 빈자리를 메꾸기도 했다.

 

호텔리어

솔직히는 바텐딩도 비스트로도 해보고 싶다. 고등학생일 때는 막연하게 유니폼을 입고 호텔에서 일해보는 게 꿈이었다. 재미 삼아 사주를 보러 갔었는데 호텔경영학과 진학을 추천해 주시길래 왠지 그분에게 신뢰가 갔었다. 고객이 듣고 싶은 말을 해줄 때 족집게 점쟁이가 되듯이 난 그 사주를 아직도 믿고 있다. 결국 대학은 사주와 상관이 없이 방송학과로 진학했지만 부전공이라도 어떨지 해서 호텔관광경영 관련 수업을 여러 개 수강해보기도 했다. 

하우스키퍼 유니폼을 입었지만 호텔로 출근하는 주말만큼은 비슷하게나마 그때 그 꿈을 이룬 것이나 마찬가지다. 객실 청소를 담당하는 하우스키퍼는 정확히는 객실부라는 부서에 소속되어 있다. 하지만 유니폼을 입고 호텔에서 일하는 종업원이라는 넓은 의미에서는 하우스키퍼도 호텔리어가 맞다. 나는 결국 꿈을 이루고야 만 것이다.


    * 이 글은 <나에게 솔직해질 용기>에 담긴 에세이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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