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하게 혼자를 원하지만 막상 혼자가 되면 외로운 날.
어렸을 적 아니 사춘기 지나서부터 시끌벅적한 명절을 보내면서 드는 생각이 격하고 혼자이고 싶었다. 한 잔, 두 잔, 넘치는 술잔에 어른들은 그다지 중요해 보이지 않는 옛이야기를 하며 웃기 시작하더니 별안간 상이 뒤집혔다. 거실에서 엄마들은 짜증은 나지만 겨우 표정을 가린 채 술상을 차렸고, 나도 하기 싫은 접시 나르기를 몇 번 하며 오늘 받은 돈봉투를 생각해서 참아야지 하던 찰나였다.
"그때, 니가 미리 말했으면 그 땅 안 날렸다.!!! 느그가 나 몰래 짜고 치는 바람에 나만 뭣 됐다 말이다!!"
또 시작이다. 10년도 더 된 일이 아직도 억울한 막내 삼촌의 말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곧이어 유치한 반격이 시작된다.
" 니!!니!! 이게 으디서 니라 하노!! 버릇없고로!!"
"에잇..콰과고강."
동생들이 싸우는 소리가 듣기 싫었는지 큰아버지는 상황을 파국으로 몰아가는 행위로 상을 엎었던 것이다.
그다음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인셉션의 음악이 흐르고 땅이 뒤집어지듯이 엉키고 성긴 그릇을 치우며 볼멘소리를 하는 큰엄마와 그 안에서 조용히 치우지만 자신들의 남편을 홀려보는 우리 엄마와 작은 엄마 그리고 익숙한 듯 방에서 나와보지 않는 아이들. 나만이 조용히 그 가운데서 구경을 하며 생각한다.
'드디어, 집에 가겠구나!! '
아무도 등 떠민 적 없지만 마치 등 떠밀리듯 엄마와 우리 가족들은 급하게 신발을 신고 나온다. 새벽 나절 도착 한 큰 집을 석양이 질 때쯤 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아직 명절이 끝나지 않았음을 차 안에서 확인한다.
"그 얘기를 왜 시작한 거야? 내가 오늘 가는 길에 친정아버지 산소에 가자고 했잖아. 왜 이렇게 취할 때까지 그 자리에 앉아있냐고. 결국엔 이렇게 싸울 것을 왜 옛날얘기는 꺼내가지고...."
엄마의 속사포에 아빠는 못 들은 척 앞만 본다. 내가 들어도 진짜 별로인데, 엄마가 많이 참은 것 같았다. 뒷좌석에 구겨지듯 앉아 있던 우리 삼 남매 중 두 명은 각자의 창밖을 응시하고 가운데 앉은 178cm의 남동생은 정면만 보고 있을 뿐이다.
명절이 평화로웠던 적이 언제였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는다. 이럴 바엔 혼자가 낫겠다 싶었던 생각을 수없이 했었다. 왜 오랜만에 만나 싸움을 하는지 당최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그냥 각자의 집에서 각자의 자식들과 각자의 방식으로 명절을 보내면 안 되는 것이었나? 괜한 생각에 입이 점점 뾰로통하게 튀어나온다. 내 언젠가 명절에 혼자 보내고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몇 번이나 하던 날 들 중 하루였다.
그러다 언젠가 정말 혼자가 되었던 날이 있었다.
명절을 앞두고 아빠와 한 바탕 한 때였다. 나는 자취방에서 홀로 명절을 보낼 생각에 조금은 기쁜 마음이 들었다. 엄마를 돕는다고 기름에 쩌들 필요도 없고, 누워있는다고 잔소리할 아빠도 없으며 날카로운 말로 서로를 들쑤실 동생들도 없었다. 어제 술을 진탕 먹은 김에 늘어지게 늦잠을 늘어지게 잤다. 허리가 아프고 머리가 아플 때쯤 일어나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와 벌컥벌컥 마시고 나니 12시가 조금 넘었다. 배가 고파 라면을 끌이고 핸드폰을 보며 누구를 만나볼까 싶은 생각에 들떠있었다.
"뭐 해? 만나자."
"나 엄마 일 도와주고 있어."
"큰집 왔어. 명절 끝나고 만나."
"엄마랑 장 보러 왔어."
생각보다 약속을 잡기가 어려웠다. 나는 한가한데 사람들은 명절 준비로 바빴다. 나는 혼자지만 그들은 가족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렇게 바라던 혼자만의 시간이 지독히도 외로워졌다. 함께 하고 싶은 생각이 점점 간절해지는 이 아이러니에 혼란스러웠다.
명절은 참 희한한 것 같다. 그냥 공휴일이지만 왠지 혼자가 되면 고립되는 외로움이 있다.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말이다. 10년 전의 일이지만 여전히 그때의 상실감은 생생하다. 그래서 가족과의 만남은 매년 돌아오는 숙제 같지만 최대한 지키려고 노력한다.
아, 누군가가 혼자이기를 이제는 싫어하는 것이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여전히 명절에 혼자를 꿈꾼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