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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아리다 Dec 10. 2023

경청의 두 얼굴

침묵과 경청의 빛과 그림자




침묵과 경청은 빛과 그림자처럼 따라 다닌다. 말하기에서 늘 강조되는 경청은 내 입은 닫고, 상대만 입을 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열어 귀를 기울이는 태도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진정한 경청은 상대에 대한 '관심'이다. '호기심'일 수도 있고 '사랑'일 수도 있다. 상대에 대해 궁금하면 자연스럽게 몸이 앞으로 기울고, 귀 기울이게 되고, 귀담아 듣다 보면 궁금해서 묻게 된다. 묻다 보면 침묵을 깨고 지속적으로 리액션이 나오면서 티키타카가 된다. 티키타카가 잘 되니 호감도가 상승한다. 함께 하는 것이 즐겁다선순환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경청'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건 스스로에게 하는 말일까, 아니면 말을 주도하는 사람에게 말을 거는 것일까. 또한 모두가 경청만 한다면, 과연 말은 누가 하는 것일까. 침묵 속에서도 서로 편안한 사이여야 좋은 관계라고 하는데, 말하기에서 '경청'의 중요성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지만, 딜레마이기도 하다. 진짜 경청하는 사람은 스스로 경청인지 모르고 경청하고 있다. 진정 행복한 사람은 행복이 행복인 줄 모르고 행복이란 말을 하지 않듯이.



우리가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 때문이다. 상대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대화는 무엇보다 그 사람과 소중한 시간을 보내는 일. 그러니까 경청은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잘 맞아서 경청하고 싶은 사람들과 시간을 보낸다는 사실이 우선이다. 개인적인 관계든, 비즈니스 관계든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이기에 진솔하게 대화한다는 마음을 갖는다면 경청은 자연스럽게 하게 되지 않을까.




그러나 경청이 꼭 같은 의미를 사용되지 않기도 한다. 비즈니스나 인간 관계에서 목적과 전략적인 이유로 우위를 차지하고 싶을 경우, 의도된 경청도 역시 경청이라 부르기 때문이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고우니, 좋게 말을 하고, 경청하는 태도로 상대의 욕구를 관찰해 듣고 싶은 이야기를 적절한 타이밍에 해줄 수 있게 된다. 가만 있으면 중간이라도 가기 때문에 손해 볼 것도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마니처럼 있으면 안 된다. 리액션을 통해 관심이 있음을 보여주고 적절한 질문으로 상대의 말을 귀담아 듣고 있음을 보여 줄 수 있다. 



이렇게 관심있는 상대에게 하는 행동과 똑같은 경청이지만, 마음이 없는 상대에게 같은 행동을 한다면, 이것은 '무심'한 경청이다. 기만이고 위선이며, 타인이 구분할 수 없을지라도 각자의 양심은 알고 있다.



시니컬하게 말했지만, 이것이 경청의 이면이다. 목적과 의도가 있는 경청, 흘려 듣고 있으나 자신의 이미지를 좋게 하기 위해 듣는 척을 하는 경우 역시 경청의 범주에 넣을 수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진짜 나에게 관심을 두고 대화를 하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떤 사람이 자신이 심은 포도나무에서 포도를 수확했는데, 먹어 보니 너무 맛있었다. 나눠 먹고 싶은 마음에 마을 사람들을 찾아 다니며, 조금씩 나누어 주기 시작했다. 그런데, 만나는 사람마다 반응이 달랐다. 마을에서 학식과 연륜이 높은 분들이었지만 자신의 직업과 관련해 도움이 필요해서 주는 줄로 착각하고 맛을 보고는 무엇을 해주면 되는지 물었다. 그저 포도가 맛있어서 나눠먹었을 뿐인데, 그는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때 동네 꼬마 아이에게 한송이를 주었더니, 너무 맛있다고 다음에 또 먹고 싶다며 진정으로 행복해 했다. 그제서야 그는 비로소 자신이 나누었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돌려 받을 수 있었다. 



이 이야기처럼 우리는 상대의 행위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 주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이것이 경청의 이면이다. 듣고 있으나 듣고 있는 이유가 천차만별인 셈이다.



우리는 경청이 중요하기 때문에 경청해야 한다고 말한다. 경청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잇점도 많지만, 그런 이유로 의도된 경청이라면, 씁쓸하기도 하다. 인간이 자기의 욕망을 갖고 태어난 존재인데, 왜 자기 표현 대신 경청에 더 집중해야 하는 것일까. 밥상머리 교육에서도 늘 밥 먹을 때 말을 하지 않아야 하도록 교육받았고, 어른 말에 또박또박 말대답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는 훈계를 듣는다. 말하기를 강조하면서 경청을 강조하는 것이 균형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서양 문화와 달리 평소 자기 표현을 절제하도록 교육받는 한국의 정서를 생각하면, 조금 더 말하는 것을 권장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노벨상 수상자를 30%가까이 배출한 유대인은 대화가 일상이다. 특히 하브루타(실제 유대인은 토론식 교육을 하브루타라고 부르지 않고 한국에서 변형 적용된 토론 교육 형태로 알려져 있다)식 토론 교육은 도서관에서조차 서로 모르는 사람들끼리도 소리 높여 치열하게 토론하는 것이 일상임을 보여 준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경청이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주장을 펼치고, 서로 다른 의견을 나누는 과정에서 생각을 정리하고 성장하는 것이다. 이때 나와 다른 의견일지라도 끝까지 들어 주는 것은 진짜 경청이다. 탈무드라는 교리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기도 하지만, 남의 의견을 듣고 나의 주장도 펼칠 수 있다는 상호 신뢰가 바탕이 되어 있기에 토론 후 이기고 지는 것과 상관없이 쿨하게 마무리 지을 수 있다. 



어느 정도 사회적 지위에 도달하면, 나의 말이 수월해지는 순간이 온다. 말을 잘 해서라기 보다, 자신이 가진 사회적 위치와 지혜로움, 매력, 영향력 등이 작용한 경우다. 메시지는 말을 잘하냐 못하냐가 아니라 말하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전달효과가 달라진다. 그래서 말하기는 메신저의 신뢰도를 높이는 것이 근본적인 방향이다.(더욱 자세한 것은 권위의 법칙과 오류에서 다룰 예정이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이들에게 존경받는 사람이 나의 말을 경청해 준다면 어떨까. 



고귀한 경청은 바로 이런 경우다. 자신의 말을 들으려 하는 사람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보다 어리거나 지위가 낮은 사람에게서도 기꺼이 듣고 배우려는 태도를 취할 때 말이다. 어쩌면 자신의 권위를 내려놓고 들을 줄 아는 근사한 태도로 더욱 존경받는 것인지 모른다.




<미션>

경청할 준비를 해 보자. 무엇보다 대화할 상대에 대해 마음 가짐을 좋게 하는 것이다. 


대화할 사람의 장점 3가지 떠올리기

대화할 사람의 장점을 떠올려 좋은 사람과의 만남이라 생각한다. 정말 싫은 사람일 경우 예상치 못한 면을 발견할 수 있다. 떠올린 장점 3가지와 좋았던 대화 내용을 기록하고 감상을 남긴다.


대화할 사람에게 할 질문 3가지 떠올리기

좋은 질문을 하는 것은 좋은 대화의 시작이다. 준비한 질문을 다 못할 수 있지만, 경청한다고 해도 상대가 계속 대화를 이끌어갈 수는 없다. 대화가 끊기거나 가벼운 스몰 토크로 분위기 전환이 필요할 수 있으니 상대를 위한 질문 3가지를 준비하자. 질문에 대한 반응과 좋았던 대화 내용을 기록하고 감상을 남긴다. 


'그럴 수 있겠구나' 장착하기

경청을 방해하는 요소 중에 상대의 말이 내 마음에 안 들거나 내게 상처로 돌아오는 경우가 있다. 멘탈이 좋다면, 상대의 문제로 바꿀 수 있지만, 대부분 그렇지 못하고 이불킥 각이다. 그럴 때를 대비해 어떤 이야기도 들어줄 수 있도록 '그럴 수 있겠구나'를 입력해 놓는다. 그러면 상대의 말이 틀린 것이 아니라 다름을 인정하게 되어서 상황에 따라 다르게 해석할 수 있게 된다. '경청' 자체가 쉽지 않은 상대도 있지만, 고난도의 '경청' 훈련이라 생각하고 '그럴 수 있겠구나'라는 마음으로 임해 보자. 그렇게 생각해야 했던 상황을 기록하고 감상을 남긴다.



사회 생활을 하거나 사람들과 관계를 맺게 되면 어쩔 수 없이 만나고 소통해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만나기도 전에 설레고, 어떤 사람은 만나기도 전에 힘이 듭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 나는 어느 쪽일까요? 물론 상대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를 만나는 것을 설레어 하는 사람을 더 만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그러나 성장은 꼭 불편한 지점에서 일어나곤 합니다. 내가 편안하면 내리막길을 걷는 중이고, 내가 힘들면 오르막길을 오르는 중이라고 했던가요? 경청은 힘이 듭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때론 참고 들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훗날 돌이켜보면, 말을 안 해서 후회하기 보다 말을 해서 후회할 때가 더 많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말을 하는 사람이 주도하는 것 같지만, 결국 지나고 보면 듣고 있는 사람이 주도권을 쥐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그래서 경청을 강조하나 봅니다.



저는 경청은 하되 자신의 말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경청도 불편한 일이고 남들에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도 불편합니다. 그렇지만, 그걸 이겨 내고 나면 내 이야기를 정말로 듣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입니다. 그때 어떤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으신가요? 그런 위치가 된다면, 권력이나 권위를 누리고 싶지 않을까요? 그럴 때일수록 더욱 귀담아 듣고 말 한마디라도 따뜻하게 건넬 줄 아는 인품을 지녔으면 합니다. 진정한 경청이 동등한 위치에서 티키타카가 되는 것이라면 고귀한 경청은 바로 내가 듣지 않아도 되는 위치에서 진정 들어줄 때 시작됩니다.

 




<미션 후기> 반복하는 말 3번 참기 미션

좋은 말이든 나쁜 말이든 나도 모르게 반복해서 하게 되는 말이 있다. 그러나 그게 꼭 필요한 말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일단 3번만 참아보자. 참았던 말을 기록하고 감상을 남긴다. 



돌아 보니 저는 '편안함'이라는 말을 자주 씁니다. 평소 <쿵푸팬더>에서 강조하는 '평정심'과 아리스토텔레스와 동양 철학에서 강조하는 '중용의 미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터라 어떤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편안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이 말을 자제하면서 문득, 어쩌면 편안함에 대한 집착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정심이란 흔들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 휩쓸려갈 수 있는 상황에서도 다시 자신의 위치와 자세를 유지할 수 있는 근력이 아닐까요. 중용이란 것이 가운데 중심에서 꼿꼿하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극과 극을 오가면서도 중심을 찾아갈 줄 아는 지혜가 아닌가 생각되었습니다. 


너무 안정된 환경은 때론 익숙함과 지루함을 동반합니다. 단테의 신곡에서는 오히려 이런 상황을 지옥이라 부릅니다. 스스로의 알을 깨고 나올 의지를 가질 필요가 없는 안락함 같은 것 말이지요.


이제부터는 '편안함'이라는 말을 단순하게 모든 것이 평온한 상태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편안할 수 있는 마인드로 해석하고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침묵을 통해 여러분도 크고 작음에 상관없이 소중한 깨달음을 얻으셨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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