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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아리다 Dec 17. 2023

권위의 법칙 vs 권위의 오류

나다운 기준과 남다른 기준


설득이 필요할 때는 '권위의 법칙'을,
나의 현명한 판단이 필요할 때는 '권위의 오류'를. 
이 두 가지의 균형을 맞춘다면, 
말을 할 때는 신뢰감을 주는 메신저로 활약할 수 있고, 
듣는 입장일 때는 올바른 정보를 구별해 내는 안목을 가질 수 있다.

올바름 All발음 





권위에 대하여, 권위 VS 권위적


'권위'는 남을 지휘하거나 따르게 하는 힘이 되고, 이것은 곧 '영향력'이 된다. 그런데, 권위는 남이 세워주는 것이다. 타인의 인정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고 스스로 권위를 내세운다면 우리는 '권위적'이라 말한다. 



어느 분야의 커리어나 학위 등 견고한 외부 스펙이 아니라도 요즘은 개인이 자신의 능력이나 삶을 통해 권위를 스스로 보여줄 수 있다. 바로 '퍼스널 브랜딩'이라는 이름으로 스스로 권위를 만들어가는 것이 가능한 시대가 왔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사회적 지위에 따라, 혹은 유명함의 정도에 따라 권한의 기울기기가 커졌다면, 요즘은 SNS의 발달로 개인에게도 노력 여하에 따라 권한을 키울 수 있다. 허나 인플루언서든, 크리에이터든 그 위치에 있기까지 어느 정도의 팔로워가 보장되어야 한다. 결국 이 또한 타인의 인정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는 말이다. 



빅데이터를 이용한 기술적인 방법들로 팔로워를 늘려 지나친 쏠림현상이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빛과 그림자는 항상 함께 하기 마련이니, 그만큼 '영향력'을 위한 개인의 가능성도 높아진 것은 확실하다는 의미다. 



이와 반대로 아무리 옳은 말도, 귀한 말도 권위가 없으면 힘이 없다. 남들이 알아보질 못하는 보석 같은 글이나 인물, 음악 등을 발견하는 것 또한 매우 흥미로운 일이지만, 때론 나만 알게 된 게 안타까울 때도 있다. 대중성과 예술성의 기준을 갖고 본다면 아직은 대중성을 얻지 못한 자기만의 예술에 가까운 경우가 아닌가 한다. 아직 발굴되지 않은 원석일 수도 있고 말이다. 하지만 언젠간 빛을 발한다고 생각한다.




권위의 법칙 VS 권위의 오류


권위의 법칙은 설득에 중요한 요소다. 가치를 입증하기 위해 의심을 거둘 수 있도록 미리 권위를 부여해야 한다. 어떤 상품이 출시됐을 때 여러가지 수상 내역이 있거나 인증 기관의 인증서를 받았다면  일단 신뢰를 갖는다. 어떤 자격증을 갖고 있다고 하면 국가공인이 아닌 민간 자격증이라고 하더라도 실력과 상관없이 없는 것보다 나아 보인다. 그 분야 학위나 미디어 출연, 출판 여부 등은 묵시적인 신뢰의 기반이 된다. 



이 밖에도 책이 가득한 책장을 배경으로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함으로써 이미지화 한다거나, 권수, 연차 등의 숫자, 표본 집단에 따라 통계 결과는 달라질 수 있음에도 통계 자료를 근거로 내미는 것은 모두 의심을 제거하고 신뢰 확보를 위한 권위의 법칙에 해당한다. 같은 얘기라도 저명한 인물의 말이나 글을 인용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권위의 오류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다 맞는 말인 듯 한데 틀린 경우, 틀린 것 같은데 그게 맞는 경우 말이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했던 갈릴레오도 그랬고,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어떤가.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것은 더 이상 의심의 여지가 없고, 양자 역학은 물리학과 예술 분야에서 사랑받고 있다. 



'권위'도 그렇다. 믿음직한 '권위'를 갖추면 신뢰를 확보할 수 있고 말에 힘이 실린다. 숫자나 통계를 이용하거나 어느 분야의 '전문가' 프레임은 권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숫자나 통계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활용도가 높다. 그래서 저서 <팩트풀니스>에서는 숫자나 통계를 의심해 볼 것을 권한 바 있다. 



이 모든 것이 '권위의 오류'이자 동시에 '권위의 법칙'이다. 권위를 세우기 위해서는 권위의 법칙대로 행하고, 그것이 정말 올바르고 신뢰할만한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권위의 오류로 살펴 봐야 한다. 




권위의 말하기 적용


이제 '권위'를 말하기에 적용해 보자. 말을 잘 하기 위해서는 겉으로 드러나는 여러가지 스킬도 중요하겠지만, 우선 중요한 것은 그 메신저가 믿을 만한 가다. 같은 이야기라도 누가 말하느냐에 따라 전달 효과는 달라진다. 그리고 설득을 잘 하는 사람은 일종이 '권위'를 갖고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권위적'이라는 말과는 구분해야 하는데, '권위적'인 사람은 타인의 의견을 묵살하고 스스로 권위를 부여한다면, '권위'는 자신을 타인이 신뢰함으로써 갖는 힘이 된다. 



문제는 이 권위와 권위적인 경우를 잘 구분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문가'와 '유명인'이라는 프레임을 씌우면 막강해진다. 듣는 사람은 거의 최면 상태에 들어간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런 이유로 수사학에서는 '권위의 오류'를 통해 이를 의심하도록 한다. 최면 상태에서 빠져나와 그 말이 사실인지, 진실인지 냉철하게 판단할 수 있도록 말이다. 



요즘은 온갖 정보들이 '권위'를 휘두르고 나타나 현혹시킨다. 휘둘리다 보면, 내 생각은 없고, 남의 생각을, 아니 어디서부터 시작된 누구의 생각인지도 헷갈리는 말들이 부유한다. 때론 아주 작은 표본을 가지고 지나친 일반화를 하는 사례도 볼 수 있다. 맹목적으로 수용하고 따르는 부작용이다. 나와 별 상관없는 일이라면 흘려 듣고 넘길 수도 있겠지만, 중요한 판단을 해야 할 때는 반드시 크로스 체크를 해야 한다. 



이제 두 가지만 명심하자. 

설득이 필요할 때는 '권위의 법칙'을, 나의 현명한 판단이 필요할 때는 '권위의 오류'를 생각하는 습관


이 두 가지의 균형을 맞춘다면, 말을 할 때는 신뢰감을 주는 메신저로 활약할 수 있고, 듣는 입장일 때는 올바른 정보를 구별해 내는 안목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미션>


권위의 법칙과 오류를 통해 크로스 체크를 해보자.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내가 가진 기준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권위적인 사람과 권위있는 사람

주위에 권위적으로 굴어서 혹은 권위있는 사람이 있어서 스스로를 작게 생각할 수 있다. 나를 불편하게 하는 권위적인 사람과 내가 존경하게 되는 권위있는 사람은 어떻게 다른지 실제 인물을 떠올려 생각해 보자. 내가 생각하는 권위의 기준은 무엇인지, 또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기록해 본다.



 권위의 법칙 활용하기

설득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런데 내 말이 먹히는 것 같지 않다. 상대가 미심쩍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는가. 그 부분을 신뢰로 바꾸기 위해 증명할 수 있는 수치나 자료를 활용하고 적용해 보자. 권위의 법칙을 어떻게 활용하고 결과는 어떠했는지 기록한다. 



 권위의 오류 파악하기

내가 듣고 있는 말(유튜브, 방송 등 미디어 포함)이나, 읽고 있는 책 등 권위를 가진 무언가 혹은 누군가가 과연 합당한 권위를 지니고 있는가. 어떤 소구점을 갖고 권위를 강조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내가 설득되는 포인트는 어떤 것인지 살펴보고, 설득되지 않았다면 어떤 부분에서 더 권위를 부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기록한다.


(ex. 인물이라면 주제 분야에 관한 내용 뿐만 아니라 외모, 말투, 스펙, 인성 등을 구분해서 생각해 보고, 책이라면 주장과 근거의 내용과, 목차, 저자, 표지디자인, 출판사 등을 세부적으로 살핀다. 반드시 내용과 형식을 함께 살펴 본다.)



* 미션은 무리가 되지 않은 선에서 3가지 중 한 가지만 선택해서 해보세요.




권위가 현재 문화와 사회 분위기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한때 남자는 무슨 자동차를 타는지, 여자는 어느 브랜드 아파트에 사는지로 성공 여부를 보여 주는 광고가 있었습니다. 이후 고가 아파트일수록 이름을 점점 어렵게 짓는다는 얘기가 있었고, 시어머니가 못 찾아 오도록 하는 거라는 우스개 소리도 회자됐습니다. 여전히 세속적인 기준은 어느 정도 유효하지만, 요즘은 다시 올드머니룩이 유행하면서 권위의 기준은 지속적으로 차별화를 위해 이동해 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절대적인 권위란 있을 수 없고, 그 시대, 그 사회상을 반영한다고 생각합니다. 공동체의 연대 의식이 강하면 아무래도 '나다움'은 힘이 없어집니다. 손실회피 성향 때문에 소외를 가장 크게 느낄 것이고 어떻게든 동화되는 것이 필요할테니까요. 이와 반대로 지나친 연대 의식으로 불편해 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나다움'은 빛을 발합니다. 특별함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욕망하는 존재이기에, 자신의 울타리에 있는 사람들의 세속적인 기준을 벗어나긴 어렵기도 합니다. 모두가 'Yes'라고 할 때 혼자만 'No'라고 하는 것은 용기일 수도 있지만 객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권위가 없다면 말이지요. 사회 구성원이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권위의 기준은 어느 정도 충족하는 것이 내 말에 힘이 생기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시간이 필요하겠지요. 훗날 재평가를 통해 인정받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 이유로 '나다움'이라는 것이 나만의 특별함, 고유함이면서도 보편적인 정서 안에서 '권위'를 인정받는 것 또한 중요합니다. 그 특별함과 고유함이 타인이 가질 수 없지만 갖고 싶게 만드는 어떤 것이라면 좋을 것입니다. 혹은 희소성의 법칙에 따라 소수만의 고유함 같은 것라면 말이지요. 



인간은 태어난 존재 자체로 고귀합니다. 그 어떤 것에도 휘둘리지 않을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자신을 지켜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쉽지 않습니다. 그럴 때 내가 나 스스로 인정하는 것과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 괴리가 크다면 간격을 좁혀가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고, 괴리가 크지 않다면, 나의 잠재된 능력들을 발굴하고 조금 더 개발할 수 있습니다. 



타인의 권위에 주눅들지 말고 나를 위해 '권위'를 이렇게 활용해 보시라고 제안해 드립니다. 자신을 이해하는 메타인지 도구로서 말이지요.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잘하는지, 어떤 부분에서 인정 받기를 원하는지 등은 나에게 기쁨이라는 감정을 주는지 아닌지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남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고 남이 해줄 수도 없는, 오로지 나만이 스스로의 내 감정을 살핌으로써 가능한 영역입니다. '나답게 성장'하는 여러분을 응원합니다!







<미션 후기> '그럴 수 있겠구나' 장착하기

경청을 방해하는 요소 중에 상대의 말이 내 마음에 안 들거나 내게 상처로 돌아오는 경우가 있다. 멘탈이 좋다면, 상대의 문제로 바꿀 수 있지만, 대부분 그렇지 못하고 이불킥 각이다. 그럴 때를 대비해 어떤 이야기도 들어줄 수 있도록 '그럴 수 있겠구나'를 머릿속에 입력해 놓는다. 그러면 상대의 말이 틀린 것이 아니라 다름을 인정하게 되어서 상황에 따라 다르게 해석할 수 있게 된다. '경청' 자체가 쉽지 않은 상대도 있지만, 고난도의 '경청' 훈련이라 생각하고 '그럴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으로 임해 보자. 그렇게 생각해야 했던 상황을 기록하고 감상을 남긴다. 



'그럴 수 있겠구나'는 내가 타인에 대해 선택할 수 있는 태도이지만, 타인이 나에게 '그래도 된다'는 아닙니다. 자기만의 분명한 기준과 선이 없으면 선을 넘었는지도, 그게 무례함인지도 구별하지 못해 호구가 되기 쉬운데요. 모두 허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분명한 기준 선 위에서 '그럴 수 있겠구나' 하고 허용하고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역시도 웬만해선 웃어 넘기는 경우가 많았는데, 생각해 보니 만만해 보이지 않을 경우에 오히려 커뮤니케이션이 더 확실할 때가 많았습니다. 



상대의 입장을 일일이 다 고려하면 내가 끌려다니기 쉬워서 힘들어지는 경우가 생깁니다. 열 가지 중 아홉가지를 잘 하고도 한 가지 때문에 타격이 생길 수도 있고요. 완벽할 수 없으니, 자기만의 기준을 갖고 적정한 선에서 '그럴 수 있겠구나' 하고 타인을 이해하려는 시도가 자신을 지키면서도 동시에 타인을 존중해주는 것이라 생각해요. 기본적인 선을 지키지 않는 분들은 어쩌면 대화 자체가 이뤄지기도 어렵고 그 에너지를 나와 잘 맞고 내게 더 좋은 분들과 나누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연말이 되니 모임이 생깁니다. 저도 그간 못 만났던 지인들과 만남이 있었고 또 있을 예정입니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이나 후배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예전에 나눴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개인사에 있어서 그때와 지금 달라진 것들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변화가 있었다면 새롭게 귀담아 듣게 됩니다. 관심이 없다면 절대 기억하지 못할 이야기들입니다. 며칠 전에는 경청을 해야겠다 아예 마음을 먹고 갔습니다. 서로 관심사가 다른 분야라 가끔씩 대화가 끊기는 느낌도 있고, 일방적으로 들어야 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듣겠다는 마음을 미리 먹으니 오히려 더 대화가 순조롭게 이어지더라고요. 어쩌면 저 스스로 마음을 내려놓은 부분도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럴 수 있겠구나'는 만병통치의 기술이 아닙니다.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방패도 아닙니다. 도저히 그럴 수 없는 상대는 그럴 수 없기도 합니다. 그래서도 안 되고요. 단호해야 할 때도 있는 거죠. 다만, 누구나 아무리 좋은 관계의 사람과도 약간의 삐걱거림은 있기 마련이고, 서로에게 소홀했다거나 미세한 뒤틀림의 신호가 생깁니다. 기대치의 차이 등으로 말이에요. 저마다의 이유는 다 있겠지만 상대에겐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을테니, 이때 비장의 무기로 '그럴 수 있겠구나'를 사용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지만, 상대는 그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겠구나 하면서요. 마음을 내려 놓는 훈련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세상은 설득과 논리로만 통하는 게 아니잖아요. 



때론 있는 그대로 받아줄 수 있는 관계는 조금 손해봐도 괜찮습니다. 소중한 사람을 얻는 일인데, 한 발 물러서는 건 잃는 것보다 훨씬 이익입니다. 이번 미션을 해보면서 제가 본의 아니게 소홀했던 지인분들을 다시 챙겨보는 좋은 기회가 되었네요. 누구보다 소중한 사람은 내 가까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너무 가까워서 우선 순위에서 밀려나 있을지도 모를 그 분들을 한 번 더 챙겨보는 연말이 되시기 바랍니다! :)





권위의 오류를 다루면서 의심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의심은 확신을 위한 과정입니다. 즉 돌ㄷ리를 두들기듯 먼저 의심을 해본 후에 드는 확신이야 말고 비로소 진정한 확신이 아닌가 합니다. 함께 읽어 보시길 권해 드립니다.  함께 읽어보심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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