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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갯속에 헤매다.

by 담은












모든 것이 뿌옇다.

머릿 속도, 인생도 마치 안갯속을 걷는 것 같다.

어디로 가야 할지 길이 보이지 않는다.

요즘 나는 나를 놓쳐버린 것 같다.

2주 전 발에 핀을 빼는 수술을 받았다.

병원에서는 핀을 빼는 간단한 수술이라 바로 걸을 수도 있다고 했다.

그래서 우습게 본 게 화근이었다.

금요일 수술을 받고 주말을 쉰 뒤 바로 출근을 했다.

처음에는 보고서 작성 때문에 힘든지 모르고 야근까지 했다.

그런데 점점 문제가 생겼다.

매일 두드러기가 올라오고, 잦은 두통, 소화불량이 계속되었다.

병든 닭처럼 비실비실 대기 시작했다.

발을 디딜 때마다 통증이 치솟아 움직임에 제약이 생겼다.

일상의 리듬이 완전히 무너져 버렸다.

몸과 정신은 일치한다고 했던가.

몸과 마음에 무기력이라는 손님이 찾아왔다.

창문에 김이 서린 듯, 마음에 김이 낀 듯, 삶 전체에 희뿌연 막이 얹혔다.

출퇴근을 하며 시간의 흐름을 분명히 느끼고 있는데도, 영혼 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해야 할 일도 다이어리에서 자꾸 내일로 밀려났다.

그 빈자리를 불안과 멍한 감각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무엇하나 명확하지 않았다.

멍한 시선과 흐릿한 생각들로 머릿속이 삐걱거리며 돌아갔다.

생각의 겨를을 찾을 수가 없었다.

‘요즘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스스로에게 물었지만 대답할 수 없었다.

해야 할 일을 제대로 생각해 낼 수가 없었다.

머릿속은 안개뿐이었다.

무엇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겠고, 어디를 향해 가야 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손에 잡히는 것 없이 떠밀려 다니는 하루하루.

누가 내게 말을 걸어와도 반쯤 감긴 마음은 먼 데서 들리는 것 같다.

웃을 기운도 잃어버려 웃음조차 기운을 잊어버렸다.

글을 쓸 기운조차 나지 않았다.

글을 쓰려고 문서창을 열어놓고 깜박이는 커서를 보며 시간을 흘려보내기만 했다.

나는 점점 투명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나로서 존재한다는 감각조차 흐릿해졌다.

내가 없어도 아무 일도 생기지 않을 것 같은 생각.

내가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것 같은 공허함.

그러나 나는 다시 힘을 내어 본다.

손가락에 힘을 불어넣어 한 글자 한 글자 나의 마음을 적어 내려간다.

뿌연 안갯속에서 손을 더듬어 ‘살아 있는 나’를 찾아가고 있다.

인생도 그런 것이 아닐까?

안갯속을 걷는다는 건 길을 잃을 수도 있지만, 새로운 길을 만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무엇도 보이지 않는 순간에도 멈추지 않고 걷다 보면 언젠가는 안개가 걷히는 날이 온다.

오늘의 나에게 필요한 건 맑은 날씨가 아니라, 날씨에 맞춰 걷는 법이다.

지금의 나는 여전히 명확하지 않은 삶을 헤매고 있지만

예전처럼 무력하지는 않다.

보폭을 줄이면, 길은 다시 이어진다. 오늘의 나는 어제 보다 한 줄 더 쓰고 있으니까.

내일의 나는 오늘보다 한 걸은 더 나아갈 것이다.

그렇게 희뿌연 하루의 가장자리부터 서서히 선을 긋는 중이다.

그 선을 따라가다 보면, 나는 다시 나에게 닿을 것이다.

그러니 오늘도

나는 꾸역꾸역 하얗게 안개 낀 하루를 보낸다.





제가 2주 전에 수술을 받았습니다.

생각만큼 회복이 빠르지 않아서 병든 닭처럼 보내고 있습니다.

연재 날인데 구독자님들과 약속이니 연재일은 맞춰야겠고 머리는 온통 안개가 꽉 낀 것 같이 생각이 멈춰버린 것 같아요. 이번 회차는 분량을 줄인 짧은 글로 인사드리고, 정식 원고는 컨디션이 회복되는 대로 올리겠습니다.

구독자님들 댓글도 써드리고, 라이크잇도 누르고, 해야 되는데 요즘 제가 무엇이든 쉽지가 않네요.

몸이 추스르며 무리하지 않는 속도로 계속 쓰려고 합니다.. 느리더라도 양해 부탁드립니다.

편안한 오후 시간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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