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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관점에서 본 것

그녀의 23세

by 실버반지

그는 내가 어려서 모른다고 여기기보다

알고 있으면서 왜저러는 걸까라고 생각한 하다.


그가 나와 헤어져야겠다는 마음이 슬슬 올라오게 만든 게 돈쓰기였다.


본격적인 연애는 여름방학이 시작되는 6월부터였다.

그 전에는 1학기 중간고사가 끝나면 만나거나 날씨가 좋은 주말 등 자주는 아니지만 한 달에 한 두 번 만나며 썸을 탔다.


워커힐, 패밀리 레스토랑, 해질녘 야경을 즐기는 드라이브 등을 하며 그 때까지 나는 겪어본 적 없는 경험을 했고, 가끔씩 쓰는 돈은 그에게 부담은 아니었다.


하지만 여름방학이 되어 제대로 만나게 되었을 때는 자주 만나면서도 그가 비용 부담을 했다. 나도 수중에 돈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이상하게 그가 보는 앞에서 돈을 꺼내는 게 자신이 없었다.


신용카드가 보편화 되지 않은 시절 지갑에서 지폐 몇 장 꺼낼 때도 자연스럽게 보이고 싶었다. 있어 보이게 꺼내는 모습을 보여줘야 할 것 같았다. 어리디 어린 생각이었다.


정 그랬으면 돈 꺼내는 연습을 혼자 해보기라도하지 그러지도 않았다.


6개월 뒤 그가 헤어지며 내게 했던,

'만나는 게 부담스럽다'는 말은 바로 이것을 두고 한 말이었다.


그와 만난 기간은 고작 6개월이다.


그 짧은 기간 동안 내가 그의 친구 모임에 참여한 횟수만 3~4번은 된다. 그는 그 정도로 친구들을 좋아했다.


헌데 지금 기억속에도 그 모임에 인원이 총 몇 명인지, 어릴적부터 알던 죽마고우인것 같은데 대체 어느 학교 몇 학년 때부터 알았는지,

동창인지 같은 반인지,

그 분들은 어떤 일을 하는지 도통 기억에 남은 게 없다.


딱 하나 그가 내게 알려준건 그들이 다 강남에 집이 있다는 자부심 넘치는 정보였다.


앞서 말했듯이 그는 학창시절부터 학군 좋은 지역에 살았던 사실이 자신을 지탱해주는 기둥인 것 같았다.


그럴만도 한게 당시에는 재개발 전이었지만, 지금 그 땅이 재개발 되었다면 평당 1억 원을 호가하고 앞으로도 가파른 우상향이 내다 보이는 입지로서는 최고의 지역이다. 그것에 대한 흔들림 없는 자신감이 그와 동일시 되어 그의 8할은 차지하고 있는 듯 했다.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자세히 물어보고 한 명 한 명 관심을 두었어야 했다. 이 점이 지금도 내가 친구 분들에게 가장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는 분이다.


연인의 친구들을 만나러 나가는 자리에 어떤 것을 해야 되고 어떤 것은 하면 안되는지 관심조차 없었다.


친구의 여자친구라는 이유로 아무런 조건 없이 나와 친해지고 싶었던 그 분들에게 만났을 때 인사 외에는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같이 놀거나 즐거운 분위기에 합류하지도 못했다. 그 나이 때 나는 주변에 관심이 없었다.


친구들을 만나고 올 때마다 그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그의 속을 내가 다 파악할 수는 없지만, 확실한 건 친구 관계 어려움이 그가 나를 버리는데 큰 요인으로 작용했을 거라는 사실이다. 아마도 사회생활에 아주 지장 있을 성향이라 판단했을지도 모른다.


모임에 데려간 것 뿐만 아니라 따로 만난 친구와 지인들도 있었다. 그것까지 합치면 대여섯 번은 주변 사람들을 만났는데, 당시 나는 친한 친구들이나 지인에게 여자친구를 소개시켜준다는 것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했다.


재미삼아 연애만 하고 말 여자라면

데리고 다니면서 안면을 익히게 할 이유가 없다.


그 때 나갔던 모임에 어떤 분의 여자친구라고 나온 여자 가 있었는데 동글동글한 마스크에 가지런한 치아를 가진 미인상이었다.


그 분 에게 "언니 너무 미인이세요."라는 말 한 마디 할 줄 몰랐던 게 못내 아쉽다.

그런 말이 듣는 사람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다는 걸 어렸을 땐 몰랐다.


나를 낮추고 상대를 높이는 게 손해 보는 일이 아니다.


분위기를 밝게 만들고 나에 대한 이미지를 상향시킬 수 있다는 걸 시간이 많이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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