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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중독 0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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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숙경 Aug 12. 2023

8 카페의 여인

  여자는 술에 취해 있었다. 머리카락이 남자의 등 뒤로 넘어가서 출렁거렸다. 어디서 본 듯한 실루엣이다. 그러고 보니 지하 카페의 그 여자다. 

  얼굴이 희고 목이 긴 그 여자. 어딘가 비어있는 듯한 눈동자가 아슴아슴 떠오른다. 야릇한 웃음소리를 내던 여자. 잔인한 호기심을 끌어내는 소리가 들린다. 칫칫치치치. 블루스가 끝나자 곧바로 디스코 음악이 흘러나왔다. 블루스를 추던 사람들이 콩 튀듯 그 자리에서 춤을 격렬하게 추었다. 여자는 남자를 물리치고 테이블로 갔다. 남자가 여자의 뒤를 따라간다. 이 시간에 술을 마시면 오늘 그녀는 카페에 나올 수 없게 될 텐데, 하는 생각이 났다. 하지만 여자는 그다지 술에 취해 있지는 않은 것 같았다. 

  중학생은 아직 바쁘지 않다며 내게로 왔다. 저 여자 이곳의 스트립걸이었어. 한때 끝내줬었지. 지금은 퇴물이야. 하지만 아직 봐줄 만하지. 어디선가 카페를 열었다던데. 여자가 옷을 벗고 사람들 앞에서 춤을 추는 광경을 상상해 본다. 여자는 말없이 옷을 벗는다. 하나, 둘. 음악은 사람들을 촉촉하게 젖게 만든다. 더 이상 보여줄 게 없는데도 계속 벗어야 한다. 벗는 시늉이라도 해야 한다. 사람들이 침을 꼴깍 삼키면서 여자의 상체와 하체를 번갈아 쳐다본다. 가슴이 앞으로 내밀어지면 아래 하체 부위는 무언가를 잡아끌 듯이 뒤로 빠진다. 위로 올려다보는 눈들을 서글프게 바라보는 여자. 벗어도, 벗어도 흰 몸뚱이만이 남을 뿐인데도 양파처럼 벗겨진다. 나는 여자를 조종한다. 내 머릿속에서는 여자가 더욱 해면처럼 흐느적거린다. 마우스를 한 번 누를 때마다 여자의 육체는 잘려나간다. 머리로부터 다리 사이로, 그 단면을 다시 가늘게 레이저가 스치면 눈과 귀가 분리되고 목이 몸으로부터 훌렁 떨어져 나간다. 무대 가운데로 떨어져 나간 조각들이 널브러져 있다. 홀에서는 사람들이 흥분하며 괴성을 지른다. 좀 더 보여줘. 아, 갈증이 난다. 좀 더 보여 달란 말이야. 나는 여자를 다시 뭉쳐서 무대 가운데 모아 놓았다. 조각들이 이어지지 않아 제멋대로 덜렁거린다. 눈을 뒤집어 바로 한 다음 구멍에 맞추어 놓는다. 모가지는 몸통을 똑바로 세워서 균형을 잡아 준다. 서서히 완성되는 여자. 또 환성이 터진다. 여자는 다시 춤을 춘다. 엇갈린 춤. 손은 허공에서 허우적거리고 다리는 학질에 걸린 것처럼 떨어댄다. 완전히 발가벗겨진 육체를 사람들이 원한다는 것을 왜 여자는 모른단 말이냐. 나는 회초리를 들고 여자에게 다가가서 매질을 한다. 여자는 뒤로 발랑 넘어진다. 뭔가 더 보여줘. 여자가 운다. 나는 재미있어서 더 세게 매질을 한다. 그때 나의 회초리를 막아서는 자가 있다. 그자는 내게서 회초리를 잡아 낚아채서는 그대로 나를 후려친다. 내 몸에서 한 줄기 피가 솟구친다. 그자는 계속 내 몸을 후려치면서 웃는다. 그자의 얼굴이 희미하다. 철갑상어를 닮은 그자는 웃음소리만 낼뿐 공간에 형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 웃음소리에 나는 얼굴을 가렸다. 얼굴에서 흐르는 피로 눈을 다치고 말았다. 보이지 않아 보이지 않아. 눈을 비비면서 나는 절규하듯 쓰러졌다. 한참 후에 테이블에 머리를 꼬나 박은 내 몰골이 보인다. 여자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종환은 나를 보더니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어, 술을 마셨네. 형 이래도 되는 거야? 의리 없이 혼자 나가서 마시다니. 사장님이 아까 오셔서 가게가 팔렸다고 기분이 좋아서 말하던데. 여자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들어오면서 보니 카페는 불이 켜져 있었다. 모니터 앞에 앉아 내 캐릭터를 불러온다. 나는 거기 조용히 나를 기다리고 있다. 기분이 심드렁한 것 같다. 철갑상어로부터 산 아이템이 들어오지 않았다. 철갑상어를 불렀다. 철갑상어 나와라. 계속 불러보지만 그자는 어디로 갔는지 흔적도 없다. 아차, 싶었지만 이미 늦었다. 그자는 사기꾼이었다. 아마도 이런 사기행각을 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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