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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중독 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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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숙경 Aug 12. 2023

10 기다림

  건물 지하로 걸어 내려간다. 내 발소리는 둔탁한 울림을 낸다. 중학생이 말한 대로 그 옆의 사내가 그녀의 정부라면 지금 그 자가 옆에 있을지도 모른다. 이층과 지하 사이의 계단을 한발 한발 걸어 내려가면서 손가락을 부산히 움직인다. 의자에 앉아 차츰 레벨을 올리는 게임보다 더 흥미 있는 게임은 없다. 고수가 되는 길은 멀고 험하다. 주머니 속의 작은 칼도 든든한 무기이다. 이런 아이템을 하나하나 사냥에서 획득해야만 한다. 벽에 팔꿈치를 세게 부딪쳤다. 민첩성을 채워야 한다. 생명력도 채워 넣고 다시 걸어내려간다. 카페의 문을 통과해서 나는 여자를 찾는다. 

  여자는 테이블에 엎드려 있다. 그녀와 조금 떨어진 테이블에 앉아 기다린다. 마지막 테이블의 손님이 계산을 하기 위해 일어서자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얼굴이 부어있다. 나가는 손님을 배웅하고 돌아와서는 내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다시 테이블에 엎드려 울고 있다. 이 인형이 우는 것은 전혀 생각지 못했으므로 나는 마음이 흔들렸다. 

  무, 무슨 일 있었어요? 여자는 수건을 흔들었다. 아니오. 미안하지만 오늘은 아무런 말도 하고 싶지 않아요. 그만 가주실래요. 그녀의 슬픔은 이제 절정으로 치달아 흐느낌이 되어 있었다. 나는 갑자기 움츠러들어서 더 이상 전의를 상실해 버리고 말았다. 

  밖으로 나와서 골목 옆에 들어가 오줌을 누고 담배를 피워 물고 있는데 그녀가 문을 닫고 나온다. 그리고 천천히 걸어가서는 오른쪽 모퉁이로 돌아갔다. 그녀의 집은 아마도 그 뒤편 어디쯤인가 싶다. 나는 주머니의 칼을 만지작거리면서 조용히 따라 걷기 시작했다. 땀이 흐른다. 주머니칼이 열린다. 나는 손바닥으로 칼을 힘껏 쥐었다. 손바닥에 침처럼 끈적거리는 것이 만져졌다.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마치 나를 기다리면서 한 발자국씩 내딛는 걸음을 하면서 앞으로 간다. 나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다만 마냥 걷기만 한다. 언제까지나 걷는다. 내가 결코 비겁하지도 않고 패배하지도 않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지만 저 여자는 다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미 모든 것을 알아채고 나를 기다리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자신을 열어 나를 힘껏 받아줄지도 모른다. 

  손바닥이 화끈거린다. 갑자기 조급한 마음이 인다. 나는 여자를 불러 세우려다 말고 앞으로 바짝 걸음을 당겼다. 여자가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겁을 집어먹었는지 눈이 동그랗게 되었다. 그래, 됐다. 나는 칼이 자꾸만 손바닥을 파고들어 오는 것을 느끼며 철갑상어의 소리 가운데 아늑한 기분에 휩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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