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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중독 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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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숙경 Aug 12. 2023

7 고독한 게이머

 은행은 에어컨에서 불어대는 차가운 바람으로 오히려 싸늘한 냉기가 느껴진다. 나는 송금을 했다. 이제 나는 아이템을 하나 더 갖게 된다. 더욱 강해지고 높이 올라설 수 있다. 뿌듯한 일이다. 최강의 위치에 올라선다는 것은 얼마나 흥미진진한 일인가.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호령할 수 있기까지는 좀 더 인내가 필요하다. 그것은 어느 곳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최강자가 되었을 때의 고독을 맛보고 싶다.  

  컴퓨터로 데이터를 뽑아내는 일을 하다가 중요한 부분의 결락을 발견했다. 생산현황, 영업실적, 작년과 재작년의 순이익비교 등 줄줄이 종이를 뽑아내었다. 나는 침묵 속에서 일했다. 말이 필요 없었다. 사람들이 가지고 오는 자료를 입력하고 아우트라인을 손질하고 조금 수정을 거친 후 출력하기만 할 뿐 내 말을 들어줄 사람도 없었고 그런 걸 듣고 싶어 하는 사람도 없었다. 부장은 조금씩 돈을 빼돌렸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조작을 했다. 부장의 말대로 그냥 넘어갔어야 했는데....... 

  회사에서는 나를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았다. 부장은 차장을, 차장은 과장을, 과장은 주임을 들볶았다. 가장 최전선에 서 있던 주임인 나는 사장에게 모든 사실을 공개하고 그들의 비리와 게으름을 힐난했다. 그리고 나는 해고되었다. 부장은 직접 나를 불러 말했다. 개새끼야 너 같은 간신 모리배는 더 이상 필요 없어. 사장과 더 가까운 사람은 나야, 병신아 나이도 어린놈이. 나는 그들을 이길 수가 없다. 대적할 방법이 없다. 조직사회의 사이클은 내 주파수에 맞지 않는다.  그 세계는 그에 합당한 인간만 입회할 수 있다. 나는 새롭게 업그레이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주머니 속의 손가락들이 움직인다. 그러나 또 다른 나는 지금 그들을 막 능가하고 있다. 조금만 더.

  지하도 계단을 올라와 빌딩 앞에 섰다. 중학생은 자기가 있는 곳으로 오라고 했다. 물이 좋아. 녀석의 입에서는 물이 좋다는 말이 떠나지 않는다. 나이트클럽의 웨이터다. 유지도 그가 소개해 주었다. 키가 작고 동안이기 때문에 중학생 제복을 입고 있으면 잘 어울렸다. 그는 내가 대단한 인물인 줄 알고 있다가 하루아침에 바닥에 떨어져 버리자 친구라는 것을 새삼 강조한다. 친구가 좋다는 게 뭐냐, 이럴 때 위로가 필요한 거지. 나도 아무런 감각도 없이 그것을 받아들인다. 

  중학생은 얼굴이 더 창백해졌다. 일이 끝나는 새벽에 술을 마시고 잠이 들면 곧 오후가 되어 일을 나왔다. 나이트클럽엔 사람들이 서로 부둥켜안고 블루스를 추고 있다. ‘카사블랑카’가 흐른다. 중학생이 여자를 부킹해 주겠다고 하는 것을 그만두라고 했다. 아직 사람들이 몰려들기에 이른 시간이다. 어둠이 눈에 익자 블루스를 추는 몇몇의 남녀가 눈에 보인다. 그때 긴 생머리의 여자가 고개를 남자에게 기대고 춤을 추는 것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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