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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중독 0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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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숙경 Aug 12. 2023

5 유지와 나

  유지는 소파에 누워 자고 있다. 나도 두세 시간 잠을 잘 생각이다. 소파 위에 몸을 누인다. 유지의 돌아누운 등 뒤로 몸을 밀착시켜 세로로 눕는다. 유지의 몸이 약간 움찔한다. 그녀의 어깨를 보듬고 좁은 공간에서 함께 누워 잔다. 어떨 땐 불붙듯이 서로에게 감겨드는 일도 있지만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다. 이미 서로를 탐닉하고 알아버려 새로울 것이 없는 것이기도 했다. 유지는 브래지어를 하지 않았다. 가슴도 브이자형 니트를 입고 있다. 종환이 기웃거리던 것이 생각나서 앞쪽의 그녀가 어떻게 보였을까 궁금해졌다. 몸을 일으켜 세워 앞으로 몸을 기울자 가슴의 굴곡이 선명하게 드러나 보였다. 왜 그래? 그녀는 졸린 저음의 목소리로 묻는다. 좁아서 그래. 너 요즈음 왜 그렇게 살이 찌냐. 전에는 안 그랬는데 좁아서 둘이 못 눕겠다야. 뭐야? 그러는 너는 뭣 때문에 점점 말라가는 거야? 내가 찌고 너는 마르는데 좁아질 까닭이 없잖아. 그녀는 시큰둥하게 대답하고는 눈을 감았다.  

  철갑상어 인형이 그녀의 품에서 비죽이 나와 있다. 철갑상어는 캐비아 때문에 멸종위기에 있다고 한다. 알아보니 카스피해에서 올라온 벨루가는 캐비아 값이 어마어마했다. 난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캐비아를 누가 먹는지 알 수 없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캐비아를 먹는 것은 연인과 사랑 행위를 하는 것과 같은 의미라는군.  우리가 사랑을 할 때 캐비아 맛이 이럴 거라고 생각하면 돼.” 내가 말하자 유지가 코웃음을 웃었다. “철갑상어는 일억 삼천만 년 전부터 존재하고 있었다는데 거의 진화하지 않은 그대로래. 눈은 아마 퇴화했을 거야. 앞이 보이지 않으니까. 너도 봤듯이 이빨이 없어. 상어란 이름이 왜 붙었을까 몰라 상어도 아닌데 말이야. 유지가 흥미롭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몸은 철갑처럼 단단한 껍질로 되어 있어서 잘못 맞았다가는 작살이 날 수도 있대. 그리고 플랑크톤이나 작은 물고기 따위를 먹는다는데 힘이 장사야. 괴물 같지 않니? 나는 그녀가 자지 않고 깨어있다는 것을 알고 계속 지껄였다. 너 철갑상어가 소리를 내는 거는 아니? 유지는 대답을 하지 않는다. 그 소리가 깊은 바닷속까지 울려서 작은 물고기들이 기절하는데 철갑상어는 그걸 잡아먹는다는군. 내가 지어낸 말에 유지가 놀랍다는 듯 눈을 한번 떴다 감았다.  

  유지는 정직원이 되면 월급이 배로 오른다고 했다. 그럼 여행을 떠나 새로운 것들을 찾아보자. 나는 유지의 다리 사이로 손을 밀어 넣었다. 새로운 것 따윈 필요 없다. 가장 익숙한 것 가장 내 몸과 밀착되어 있는 지금 이 순간이 내게는 새로운 세계다. 여자의 몸을 열고 버튼처럼 꾹꾹 눌러 잠금장치를 해제하고 깊숙한 곳으로 나를 밀어 넣으면 매번 새롭게 변화하는 풍경과 마주 대할 수 있다. 나는 유지가 지르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소리를 끌어 모아 내 안에 잠자는 다른 소리들과 연결시켜주고 싶었다.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유지는 소리가 잘 나지 않았다. 안으로 돌돌 말아서 삼켜 버렸다. 삼켜진 소리는 어디로 간 걸까. 철갑상어의 소리는 어디로 간 걸까. 나는 철갑상어의 소리가 사라진 곳을 찾아 아득한 눈길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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