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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중독 0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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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숙경 Aug 12. 2023

6 게임과 소리

  종환의 표정이 썩 좋지 않다. 학교에서 심하게 꾸중을 들었다고 했다. 계속 수업을 빼먹으면 유급될 수 있다고 선생이 녀석의 엄마에게 말했다고 했다. “내 재능을 너무 무시하는 것 아냐? 사람마다 잘하는 것이 다 다른데 그것을 살려주지는 못하고 학교에서는 획일적인 교육만 시키고 있어” 녀석은 유지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쪽방 문을 살짝 열어본 후에 다시 자리로 와서 게임을 시작한다. 

  나는 새로운 아이템을 구하기 위해 장터로 갔다. 그 아이템을 사지 않으면 레벨은 오르기 힘들다. 접선을 시도한 지 십 분도 안 되어 놀랍게도 철갑상어라는 아이디를 가진 자가 나타나 팔겠다고 했다. 나의 왕국은 건설된다. 내가 존재하는 이 세계는 점차로 나로 인해 빛을 더하며 살찌워져 간다. 헛됨이 없는 건설. 한 순간에 흥망 하는 인간 세계와 다르다. 내가 꿈꾸던 세계가 그대로 반영하면서 나는 이 게임의 세계로 빨려 들어간다.  

  마을에서 사냥을 하러 거리로 나선다. 낯익은 거리와 돌담을 지나고 황량한 초원 위에서 사방에 포진해 있는 적들을 공격하기 위해 저벅저벅 걷는다. 갑자기 알폰이 튀어나온다. 귀여운 먹이이다. 녀석에게 몇 방의 포를 발사하면 끄악, 하는 소리를 지르며 넘어진다. 소리는 여러 가지를 합성해서 만든 것 같다. 으악, 악, 끅, 사람의 소리와 신시사이저의 길고 높은 또는 저음의 공포를 뭉뚱그려서 전투의 의지를 갖게 한다. 어딘가에서 신음소리가 들린다. 나는 그곳으로 발을 옮긴다. 다른 몬스터들의 그림자가 스쳐 지나간다. 끄응, 하는 저 지하로부터 끌어올려진 것 같은 기괴한 소리를 따라 바닷속을 헤엄치듯이 느릿하게 움직인다. 괴물이 내 앞을 가로막는다. 내 심장에서, 팔에서, 손에 쥔 칼에서, 놈을 향한 맹렬한 공격이 시작된다. 아버지는 귀가 들리지 않았다. 내가 문을 열고 들어가도 뒤를 돌아보는 법이 없었다.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바로 옆에서 욕을 퍼부어도 소용이 없었다. 막막한 고요가 그를 삼킨 것 같았다. 그날 술로 날을 지새우다가 새벽 찻길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 새들이 하얀 점처럼 떠다닌다. 나의 전리품은 곧바로 창고로 가져간다. 이렇게 차곡차곡 쌓인 경험치가 곧 레벨이 된다.

  모니터에서 눈을 떼자 망막에 어떤 물체도 잡히지 않는다. 갑자기 눈앞이 어두워지면서 사물의 경계를 분별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한다. 숨을 몰아쉬면서 천천히 주위를 둘러본다. 천장의 조명이 흐릿하게 내리비친다. 주홍색 블라인드가 내려진 창들은 빛을 잘 차단시켜주고 있다. 좁은 통로를 사이에 두고 사람들이 나란히 앉아 게임을 하고 있다. 

  왼쪽에 있는 사람들은 주식시황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화면에는 그래프가 깊은 포물선을 그리고 있다.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우량주를 찾아야 된다느니 신규수주를 공시한 회사들의 활동을 잘 관찰해야 한다느니 하는 말들을 한다. 그들은 자동차 영업사원들이다. 회사에 출근해서 출근도장을 찍고 나와서는 이곳으로 직행한다. 몇 시간 동안 게임이나 주식 관련 페이지를 클릭하면서 전화로 영업을 한다. 그들의 흰 와이셔츠와 넥타이가 흐릿한 조명아래서 도드라져 보인다. 

  단골손님 몇은 기지개를 켜면서 오늘 점심을 뭘 먹을까 서로 묻고 있다. 가운데 있는 사람은 24시간 대기 중인 실업자이다. 그는 이곳에서 먹고 그 자리에서 고개를 뒤로 젖힌 채 잠을 잔다. 몇 시간은 사우나를 하기 위해 또 몇 시간 동안은 산책을 하러 나갈 뿐 이곳에서 진을 치고 살고 있다 해도 무방하다. 새로 들어온 사람의 컴퓨터를 부팅시키는 동안 점심이 배달되었다. 종환과 나는 된장찌개를 시켰고 몇은 밖으로 나갔다. 볼일 좀 보고 올 테니 가게 좀 봐. 종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장님 오시면 은행에 갔다가 온다고 하고, 청소도 좀 해줘. 종환이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위아래로 흔든다. 알았으니까 갔다 와,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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